- 신주 발행가 67만원, MBK 공개매수 첫 제시가 수준
‘32조’였던 시총, 적정가치 ‘13조’ 인정한 셈
“기업 결정 몫 vs 부정거래” 평가 엇갈려
함용일 금융감독원 부원장이 지난달 31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고려아연 관련 현황에 브리핑 하는 모습. [연합] |
[헤럴드경제=심아란 기자] ‘1주당 67만원.’
고려아연 이사회가 자사주 공개매수 종료와 동시에 유상증자를 추진하면서 책정한 신주 발행가격이다. 유증 확정 직전 고려아연 종가 154만3000원 대비 57% 할인됐다.
공교롭게도 이는 MBK파트너스와 영풍 연합이 고려아연 공개매수를 처음 공표했을 당시 제시한 주당 매수가 66만원과 가깝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MBK를 저지하려다 MBK의 밸류를 인정하는 모순에 빠졌다는 평가다.
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직전 영업일 100만4000원에 장을 마쳤다. 지난달 30일 발행주식의 18% 비율 유증 소식을 전한 이후 35% 하락했다.
고려아연은 2조5009억원 규모 유증을 추진한다. 신주의 20%는 우리사주조합에 우선배정하고 나머지는 일반 공모로 소화할 계획이다. 모든 청약자는 발행예정주식의 3% 미만에 한해 매수할 수 있다. 이는 경영권 분쟁을 진행 중인 MBK와 영풍 연합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유상증자를 진행하면 약 20%의 우호지분을 확보하는 동시에 현재 38%대인 MBK 측의 지분율을 32%대로 희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신주의 주당 발행가가 67만원으로 책정된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는 MBK 측이 지난 9월 고려아연 공개매수를 개시했던 당시 처음 제시한 가격 66만원과 유사하다. 고려아연은 MBK를 저지하기 위해 주당 89만원에 자사주를 사고 MBK가 책정한 가격으로 신주를 찍는 아이러니가 연출되고 있다. 물론 MBK도 최 회장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두 차례 가격을 인상해 최종적으로는 주당 83만원에 공개매수를 마무리했다.
게다가 고려아연은 이번에 증자로 조달한 자금 중 2조3000억원은 차입금 상환에 투입한다고 밝혔다. 주주들은 회사가 시가보다 월등히 비싸게 산 주식을 다시 싸게 팔아서 빚을 갚겠다는 결정에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차입금, 자사주 공개매수, 유상증자 모두 ‘최 회장 구하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주주 저항감을 높이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고려아연은 이번 유증 전 밸류를 13조8712억원으로 책정했는데 유증 공시 직전 시가총액 31조9452억원과 괴리가 상당하다.
시장 내 의견도 분분하다. 우선 금융감독원은 부정거래 의혹을 제기했다. 고려아연 이사회는 3조1000억원 규모 차입금을 동원해 자사주 공개매수를 진행했는데 해당 절차가 종료된 동시에 대규모 유상증자 계획을 알린 것에 주목하고 있다.
[고려아연 공개매수 신고서] |
당국은 고려아연이 유상증자 계획을 수립하고도 공개매수 과정에서 고의로 누락했는지 살펴본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고려아연은 공개매수 신고서에 “회사 재무구조에 변경을 가져오는 장래계획은 수립하고 있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유상증자 신고서에 따르면 공개매수가 진행되던 10월 14일부터 기업실사를 진행했다고 기재했다.
이에 고려아연은 “14일부터 실사했다는 것은 착오였고 공개매수가 종료된 23일 이후부터 유상증자를 검토했다”고 해명했다.
MBK와 영풍도 고려아연에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 28일 고려아연 이사회에 신임 이사 14명 선임과 집행임원제 도입을 위한 임시 주총 소집을 요구한 데 이어 1일 법원에도 주총 소집 허가를 신청했다.
MBK는 “고려아연이 총회 소집의 절차를 밟지 않고 대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했다”라며 “유상증자가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기존 주주에 대한 피해는 물론 회사의 주주구성과 지배구조에 변화가 발생할 수 있어 법원에 신청하게 됐다”고 밝혔다.
물론 최 회장의 행보를 두고 대안이 없다고 보는 시각도 공존한다. 시장 관계자는 “기업이 하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고려아연 의사결정의 잘잘못에 대한 관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라며 “그러나 금감원의 의사결정에 따라 한 회사 지배구조가 바뀔 수 있는 상황인 것도 객관적으로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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