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일반
부유층과 중산층의 ‘탄탄대로 성장기’…해리스·트럼프 일대기 비교해보니 [美대선 D-2]
뉴스종합| 2024-11-03 17:32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왼쪽)과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로이터]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올해 미국 대선을 이틀 앞두면서 대선 주자로 나선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성장배경이 주목되고 있다. 백만장자와 중산층의 인생이라는 점에서 차이는 있지만, 오늘날 대선 후보가 되기까지 성공적인 이력을 쌓았다는 점에선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더 큰 부자로…2016년 대선서 당선

뉴욕군사학교 재학 시절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인터넷 캡처]

1946년생인 트럼프는 미국 뉴욕 퀸스에서 독일계 이민 2세 가정의 3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프레드 트럼프는 2차 대전 후 뉴욕에서 아파트 임대업으로 성공한 사업가였다.

트럼프는 어린 시절부터 공격적인 성향을 보였다. 그는 13살이 되던 해 학교 음악 교사에게 주먹을 휘두르기도 했다. 이런 공격적인 성향을 고치고자 프레드 트럼프는 아들을 뉴욕군사학교에 강제 입학시켰다. 트럼프는 옛 군대의 낡은 폭력성이 난무하는 학교에서 잘 적응하고, 경쟁심도 길렀다.

군사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포덤대 경영학과를 거쳐 아이비리그로 꼽히는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제학 학사를 졸업했다.

트럼프는 대학 시절부터 후계자 교육을 받았다. 아버지와 공통점이 있다면 타고난 사업가 기질이 있었다. 그는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집념을 늘 갖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부터 아버지의 부동산 회사에서 일했으며, 1971년에 회사를 승계받고 사명을 트럼프 기업으로 바꿨다.

트럼프는 재개발 사업에서 크게 성공하는 등 조금씩 ‘트럼프 제국’을 만들어나갔다. 그는 1978년에 맨해튼 그랜드센트럴역 인근 코모도호텔 재개발에 뛰어들어 크게 성공했다. 재개발 사업에 이어 트럼프는 1983년에 센트럴파크가 보이는 곳에 58층짜리 호화 주상복합건물 트럼프타워를 지었다.

부동산 사업 외 여러 분야의 사업에도 손을 뻗쳤다. 트럼프가 투자한 호텔, 카지노, 골프장 등 투자한 사업들은 성공을 거뒀다. 1996년 미스 유니버스 조직위를 인수해 2015년까지 미인 대회를 열었다. 2004년부터 10년간 NBC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견습생)’ 진행을 맡으며 일약 스타덤에 오르기도 했다. 해당 프로그램에서 트럼프의 말한 “넌 해고야(You're fired)”라는 발언은 유행어가 됐다.

그 결과 트럼프는 아버지 프레드보다 더 많은 부를 축적했다. 그의 아버지가 사망할 당시 남긴 재산이 3억달러였지만, 그 보다 더 많은 재산을 모았다.

사업에서 성공한 트럼프는 대선에도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트럼프는 1988년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대권에 도전하려 했지만 결국 이루지 못했다. 2000년 대선에서도 개혁당 소속으로 출마했으나 경선 탈락했다. 이후 그는 2001년부터 8년간 민주당원으로 있다가 2008년 대선에서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를 지지하면서 공화당원이 됐다.

그러던 중 2015년 7월 그가 공화당 대선 후보로 출마하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당시 많은 이들이 트럼프의 탈락을 예상했지만 경선에서 1400만 가까운 표를 얻고 공화당 역사상 최다 득표의 지지를 받았고, 201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돼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졌다.

1979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의 모습. [인터넷 캡처]
어디든 따라붙는 ‘최초’ 수식어…흑인 여성의 아이콘

해리스에게 늘 따라오는 수식어는 ‘최초’다. 샌프란시스코 지방검사장부터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 연방 상원의원, 부통령까지. 흑인 여성으로선 ‘최초’라는 수식어가 모두 붙는다. 오는 5일(현지시간) 치러지는 대선에서 당선된다면, 처음으로 흑인 여성이 미국 대통령이 되는 역사가 쓰여진다.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출생인 해리스는 1964년생으로, 이민 1세대 아프리카계 자메이카 출신 아버지와 인도 이민자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두 딸 중 맏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스탠퍼드대학 경제학 교수였고 어머니는 캘리포니아대 버클리(UC버클리)에서 암을 연구한 과학자였다.

해리스는 초등학교 시절 미국 정부가 인종차별 철폐를 목적으로 한 ‘버싱(bushing)’ 정책에 따라 백인들이 주로 사는 부유한 동네의 초등학교로 등교했다. 그러나 1972년에 해리스의 부모가 이혼하면서, 4년 뒤인 1976년에 어머니를 따라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왔다.

이후 해리스는 워싱턴DC의 흑인 명문대학인 하워드대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흑인 혼혈 혈통을 지녔다는 점에서 ‘여자 오바마’라고 불리기도 한다.

해리스는 캘리포니아주립대 헤이스팅스 로스쿨을 졸업한 뒤 1990년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캘리포니아주 앨러미다 카운티의 지방 검사로 법조계에 진출, 14년 뒤인 2004년 흑인 여성으론 처음으로 샌프란시스코 지방검사장에 올랐다.

2011년에는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 겸 검찰총장 자리에 올랐다. 이후 재선을 거쳐 6년간 주 법무장관을 역임했다. 역대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 중 최초의 흑인 여성 장관이다.

해리스는 법조계 이력을 발판으로 2017년에는 캘리포니아주를 대표하는 연방 상원의원에 도전해 선출되면서 중앙 정치 무대에 진출했다. 흑인 여성이 연방 상원의원이 된 것 역시도 해리스가 최초다.

이후 해리스는 2020년에는 55세의 나이에 바이든 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 후보에 낙점된 뒤 대선 승리로 백악관에 입성, 최초의 흑인 여성 부통령이 됐다.

미국 흑인 명문대학인 하워드대 재학 당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모습. [카멀라 해리스 인스타그램 캡처]
yckim645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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