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젝트 듀오 노이스 인터뷰
작곡가 윤상·프로듀서 이준오 뭉쳐
까다로운 뮤지션들의 ‘사운드 실험’
심연 유영하는 듯 거대한 ‘우주 음악’
‘척하면 척’ 음악적 취향까지도 비슷
음반 곳곳 아련한 향수...’윤상 느낌’
“윤상 시그니처라는 말, 솔직히 민망”
노이스는 작곡가 겸 프로듀서 윤상(오른쪽)과 프로듀서 이준오가 2022년 새로운 사운드 실험을 위해 결성한 인스트루멘탈 팀이다. 첫 정규 앨범 ‘에식(ethic)’은 ‘소리로 만든 사색의 시공간’이라는 콘셉트로 공간감, 질감, 색깔, 온도, 정서까지 느낄 수 있도록 정교하게 시퀀싱됐다. [서울문화재단 제공] |
누군가에게는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가 어떤 이에게는 귓가에 계속 맴돌 정도로 거슬린다. 때론 꼭두새벽에도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의 진원지’를 찾으려 눈을 뜬다.
“사실 오늘도 새벽 5시 30분에 (컴퓨터 냉각) 팬 돌아가는 소리에 잠을 깼어요.”(윤상)
아침이슬을 맞으며 게임의 세계를 탐험하는 이름 모를 이웃은 이날도 작곡가 겸 프로듀서 윤상의 귀를 깨웠다. 사실을 부인하듯 “소리에 둔감하다”고 농을 던지나, 그 얘기에 옆에 있던 프로듀서 이준오(캐스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까다로운 청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두 사람이 만났다. 바로 ‘뮤지션의 뮤지션’이면서 이젠 K-팝 그룹 라이즈 멤버 앤톤을 아들로 둔 덕에 ‘윤버지(윤상 시아버지)’로 더 많이 오르내리는 윤상(56)과 ‘윤상 덕후’로 유명했고, ‘포스트 윤상’이라 불리며 견고한 음악세계를 다져온 이준오(49)가 의기투합 해 만든 그룹 노이스(Nohys)다.
최근 서울 강남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두 사람은 “모든 면에서 취향은 닮았지만, 작업 방식마저 닮은 것은 아니다”며 “완벽주의자이나 내일 일은 내일 하자며 마지막까지 미루는 INTP(윤상)와 계획대로 착착 진행해야 직성이 풀리는 INTJ(이준오)가 만나 ‘J(계획형)’가 피를 철철 흘렸다”며 웃었다.
우주 된 음악...노이스라는 ‘미지 세계’
하나의 음이 새까만 하늘을 수놓는 은하수처럼 번져 먼 곳으로 뻗어나간다. 소리로 숨을 불어넣듯, 전자음들은 블랙홀처럼 무언가를 빨아들인다. 끝없는 우주처럼 음악은 수백 개의 운석이 부딪혀 쪼개지고, 뿔뿔이 흩어졌다 다시 모여 소용돌이 같은 먼지 바람을 일으킨다.
노이스는 ‘미지의 세계’다. 닿을 수 없는 이상이었고, 한없이 궁금한 거대한 우주였다. 윤상과 ‘제2의 윤상’으로 불린 이준오가 만나자 벌어진 일이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2009년 9월. 이준오는 그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에게 윤상은 ‘음악적 지향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함께 작업을 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다. 이준오는 “첫 만남 이후 둘의 행보가 달랐기에 같이 무언가를 시도하기까진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2010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윤상은 K-팝 작곡가로 활발히 활동했고, 이준오는 일렉트로니카 그룹 캐스커 활동과 영화음악 작업을 병행했다.
노이스는 일종의 ‘음악 실험’이었지만, 사실 윤상에겐 그리 낯선 작업은 아니었다. 그는 신해철과 함께 한 프로젝트 그룹 노댄스(1996)를 결성하기도 했고 유닛 모텟(2008), 프로듀싱 팀 원피스(2014) 등 시기마다 음악적 실험을 위한 ‘똘끼’를 발산했다.
“음악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고민을 제쳐둔 채 음악만 했어요. (신)해철이와 함께한 노댄스 이후 상업적 기대치가 높으면 그 이후가 힘들어진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음악가에게 앨범은 작가가 책을 쓰는 것과 같아요. 하나의 형식물을 만들어 발표한다는 것이 숙명이기도 한데, 어찌 보면 그때의 나와 음악을 기억할 수 있는 뭔가를 만든다는 것은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윤상)
“그간 갈고 닦은 윤상 스타일 마음껏 실현”
세익스피어는 “성격은 운명”이라고 했지만, 이들에겐 ‘성격이 음악’이었다. 노이스는 두 사람의 성격이 쌓여 음악으로 빚어진 결정체다.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으로 다듬어낸 사운드, 그 위에 실리는 감정의 파고는 전자 음악의 색채을 바꾼다. 노이스의 음악은 두 사람의 색을 절반씩 담고 있다.
이준오는 ‘음악의 길’을 걷기까지 윤상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윤상 스타일의 음악에 이유 없이 끌리다 10대 시절 윤상의 3집 ‘클리셰’를 만나고 삶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그는 “지금도 이 음반은 마스터피스라고 생각한다”며 “영미권의 전자음악과 접점이 있었고, 그때부터 윤상의 음악이 나의 세계에 깊게 반영됐다”고 돌아봤다.
윤상은 이준오를 보며 불모지에 가까운 한국 전자음악 신(scene)에서 ‘흙 속의 진주’라 생각했다. 그는 “굉장한 완성도와 세계관이 느껴지는 음악이기에 리스펙트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로의 음악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음악적 취향을 공유하는 두 사람은 ‘척 하면 척’이다. 이준오가 “1991년 결성한 영국 밴드 포티스헤드(Portishead)를 보며 프로듀서 1명과 보컬 1명으로 구성한 2인 밴드를 꿈꿔 캐스커로 이어졌다”고 하자, 윤상이 배경 음악처럼 포티스헤드의 음악을 틀어주는 식이다. 이준오는 “이렇게까지 음악적 취향이 비슷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내가 형의 음악을 좋아해 비슷한 취향을 가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2022년 결성한 노이스는 지난해 첫 정규앨범 ‘에식(ethic)’을 냈고, 올 여름에는 라이브 공연으로 관객도 만났다. 이날 공연은 순식간에 매진 사례를 기록했다. 윤상과 이준오는 “‘돈 벌자’는 스트레스 없이 음악만 하자는 시도였는데 일이 커졌다”며 웃었다. 서울문화재단이 두 사람의 공연을 ‘2024 쿼드여름페스타’무대에 올리려고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음반은 9개의 음악으로 꽉 채웠지만, 상업적 목적이 없었기에 LP(레코드판)로만 딱 1000장을 찍었다.
윤상은 팬데믹 때 만든 첫 앨범에 대해 “끝이 보이지 않던 시기 만든 음악이라 그런지 어둡고 우울하다”고 돌아봤다. 노래 하나하나가 독립된 개체로 존재하면서도 연결성을 갖는다. 음악은 심연을 유영한다. 어떤 곡에선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이준오는 “조금은 덜 화려해도 미니멀한 편성으로 하나하나의 음악으로 자리하게 했다”며 “최대한 적은 레이어를 사용하되 각각의 소리가 정체성을 가지면서도 어떤 악기와 샘플을 사용했는지 인지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 이번 앨범의 독창성”이라고 귀띔했다.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사운드 미학은 세련된 감각에 아련한 향수가 더해진다. 파도 소리나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처럼 마음이 정화되는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매력적인 소리를 찾아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듯 소리를 다듬고 직조하고 재단한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다. ‘전자음악은 차갑다’는 보편적 정의를 전복한다. 차갑다기 보다 오히려 따뜻하다.
음반 곳곳에는 윤상의 지문이 새겨져 있다. 흔히 ‘윤상 드럼’, ‘윤상 딜레이’, ‘윤상 코드’로 부르는 ‘윤상 시그니처’가 녹아있다. 정작 윤상은 “윤상 시그니처라고 말하는 것이 사실은 민망한 부분이다”며 “다만 영향을 받은 팝 음악에서 실현가능한 것을 찾아 만들다 보니 나온 이야기인 것 같다”고 했다. 그 덕에 윤상을 롤모델로 삼은 많은 후배 뮤지션들은 늘 ‘윤상 오마주’, ‘윤상 카피’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앨범에서 인상적인 곡 중 하나는 타이틀곡 ‘부서진’이다. ‘윤상의, 윤상에 의한, 윤상을 위한’음악이다. 편곡은 이준오가 맡았다. 그는 “지금껏 갈고 닦은 윤상 스타일과 윤상틱한 모든 것을 마음껏 실현했다”며 웃었다.
“자존심 지키지만, 부담은 뮤지션의 숙명”
두 사람의 음악은 시간을 쌓으면서도 언제나 오늘을 들려준다. 어제에 그치지 않고, 내일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1999년 데뷔한 이준오는 캐스커로는 물론 솔로활동, 영화음악 감독으로 전방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14년 개봉한 ‘더 테러 라이브’가 그의 첫 영화다. 스스로도 “캐스커에서 영화음악가로 넘어온 시점이 음악적 변곡점”이라고 한다. 한때는 ‘노래 빼고 다 하는’ 뮤지션으로 불렸지만 이젠 안 하는 게 없는 음악인이 됐다. 요즘엔 오케스트라 악보 공부에 한창이다.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흐름을 바꿨고, 새로운 사운드 미학을 완성한 윤상은 소위 말하는 히트곡 메이커이자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구현한 음악인이다. 강수지(보랏빛 향기, 흩어진 나날들)부터 아이유(나만 몰랐던 이야기), 러블리즈(아츄)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명곡을 냈다. 자신의 음악을 하되 ‘맞춤형 주문제작’에도 달인이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곡을 줄 땐 가수들의 개성에 맞게 맞춤 제작한다”고 웃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지만, 부담과 욕심은 늘 따라온다. 윤상은 “앨범에 대한 좋은 마음을 표현해주면 다음 작업에 엄청난 부담을 느끼곤 한다”며 “음악적으로 공감대를 주고 받아야 한다는 긴장감이 있다. 음악에 대한 책임감과 자존심을 잃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완벽주의자이자 ‘음악 장인’인 윤상은 요즘 본인의 이름 못지 않게 ‘앤톤 아빠’로 더 많이 불린다. 음악 커뮤니티 게시판에서는 “주옥같은 명곡도 주고 아들도 줬으니 음악계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고 평할 정도다.
라이즈로 탄탄한 팬덤을 쌓고 있는 앤톤은 요즘 자신의 음악 작업도 열심이다. 윤상은 “요즘 보면 이 친구가 나보다 세상을 보는 안목이 더 넓어 보인다”며 “지금은 자신의 음악을 하고 있진 않지만, 이 활동을 하며 충분히 자신과 세상을 보는 시선을 만든 후 자기 음악을 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 이준오는 “찬영(앤톤 본명)이가 보내온 음악을 들어보면 아빠 눈엔 못 미칠 수 있어도 굉장히 잘한다”고 귀띔했다. 윤상은 “가끔 데모를 들려주긴 하는데, 음악보다 건강이 더 걱정”이라고 했다.
“운이 좋았는지 외부의 변화로 인한 음악적 변곡점을 맞은 적은 없어요. 40년 가까이 하고 있는 걸 보니 이 일이 저한텐 천직인가 봐요.”(윤상)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