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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이’ 안타고니스트 허영서 캐릭터의 주체성[서병기 연예톡톡]
라이프| 2024-11-07 18:28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나는 네가 최고의 상태일 때 싸워서 실력으로 이길 것이다.”

tvN 토일드라마 '정년이'에서 김태리(정년)가 오디션을 앞두고 동굴에 들어가 무리하게 득음 연습하다 목소리 뿐만 아니라 몸 컨디션까지 위태로운 상황에 이르자 신예은(영서)이 한 말이다.

허영서는 정년이의 경쟁과 성장에서 라이벌이자 '빌런'이다. 정년이가 '프로타고니스트'(주인공)라면 영서는 '안타고니스트'(주인공에 대립적이거나 적대적인 인물)다.

요즘은 빌런이 단순 빌런이 아니다. 실력과 전략을 갖췄다. '정년이'에서의 안타고니스트 허영서는 여기서 한단계 더 나아간다. 동굴에서 정년이가 영서에게 “내가 무대에 못 서믄 너는 오히려 경쟁자 하나 더 치워 불고 좋은 것 아니여?”라고 하자 영서는 "네가 최고의 상태일 때 싸워서 실력으로 이길 것”이라고 정당한 방식의 승부를 원했다.

허영서 캐릭터는 가난하고 '빽' 없는 정년과 달리 '성골 중의 성골'이다. 하지만 알고보니 그 또한 엄마인 유명 소프라노 한기주(장혜진)로부터 구박받고 차별당하는 '콩쥐'과였다. 상처가 있는 빌런이다. 유명 소프라노이자 영서의 언니인 허영인(민경아)에 비해 영서는 집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 이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인식 차이를 반영하는 당시 세태와도 맥을 같이 한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7일 아모레퍼시픽 본사 2층 아모레홀에서 열린 'K-컬처 트렌드 포럼'에서 2024 드라마 트렌드 발제를 통해 캐릭터 변화의 하나로 '여성들의 유대와 연대'를 꼽았다. 예컨대 '굿파트너'의 차은경(장나라)과 한유리(남지현), '정년이'의 윤정년(김태리)와 허영서(신예은)·문옥경(정은채), '정숙한 세일즈'의 한정숙(김소연)·오금희(김성령)·서영복(김선영)·이주리(이세희)다.

차은경과 한유리는 대결 구도는 아니다. 회사의 부장과 신입사원은 경쟁관계는 아니다. 스타일이 다른 두 변호사가 결국 서로 공감한다는 얘기다. 그 과정에서 서로 연대하고 돕는다. 차은경이 강성 같지만 딸 문제에 봉착하면 무너졌다. 한유리는 그 지점을 포용한다.

진짜 경쟁관계는 정년과 영서다. 둘 다 매란국극단 연구생이다. 정년은 흑수저, 영서는 금수저다. 그런데 알고보면 정년은 흑수저가 아니었다. 정년의 엄마가 과거 천재 소리꾼 공선(문소리)이다. 엄마로부터 '소리 DNA'를 받고 나온 게 최고의 자산이다.

드라마 '정년이'는 건강하게 경쟁하면서 서로 성장할 수 있는 장치들이 있다. 영서가 엄마에게 철저히 무시당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로 자랐지만, 영서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조금씩 엄마에게 인정받아가고 있다. 그래서 이 빌런에게는 짠한 감정도 느껴진다.

영서는 자신의 상처가 있기에 오히려 타인을 깎아내리지 않고, 타인을 인정할 줄 안다. 노력을 많이 하는데도 정년이의 천재성을 확인하는 순간, 그것을 인정해주기는 쉬운 일이 아닌데, 그래도 공정한 경쟁을 하려고 한다.

영서가 초반 신들린 방자 연기를 펼치고 정년에게 "자신 없으면 지금이라도 나가면 돼”라고 말할 때, 시청자들은 단숨에 극에 몰입됐다. 도도한 캐릭터가 촐싹거리는 방자 역할을 완전히 자신의 것처럼 해버리는 반전 때문이었다.

'에이틴'에서 도하나 역할, '더 글로리'에서는 박연진(임지연)의 아역으로 나왔던 배우 신예은은 1950년대 부잣집 딸 허영서 캐릭터를 잘 표현해내고 있다.

이렇게 젊은 세대들이 공정하게 경쟁하고 유대하면서 성장하는데, 그 판을 잘 유지시켜줘야 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몫이다. 매란국극단 강소복 단장(라미란)은 '자명고' 오디션에서 '고미걸' 가다끼(여성 국극에서 남자 악역을 뜻하는 은어) 역할에 지금까지 잘 해오던 자신의 조카인 도앵(이세영) 대신 영서를 뽑는 것을 보면서, 참 괜찮은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석진 교수는 "안타고니스트 허영서는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서로 유대할 수 있는 캐릭터의 변화를 보여준다"면서 "이는 예능에서 착한 대결(서바이벌)과도 연관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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