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튀르키예 에스키셰히르)=함영훈 기자] 시브리히사르(Sivrihisar)는 튀르키예 국토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아나톨리아 소도시 중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이다.
예쁘게 꾸며놓은 시브리히사르 마을 |
마을 집집 마다 창의적인 무늬로 외관을 디자인했고, 원색에 가까운 색감을 저 마다 달리 입혔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5개 목조 사원 중 가장 아름답고 의미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울루 이슬람 자미(모스크)가 이곳에 있고, 아르메니아 정교회 등 다른 민족, 다른 종교 시설이 공존하며 서로 존중해주는 곳이다.
▶뾰족하게 확실히 지킨다, 시브리는 소중하니까= 마을 뒷산 기슭에는 아나톨리아, 프리기아, 시브리히사르와 관련된 영웅, 추억, 사건을 기억하게 하는 조각공원이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고, 산꼭대기 전망대는 아래에서 위를 보아도, 위에서 아래를 보아도 멋드러진, ‘첨탑 같은 요새’이다. 시브리히사르라는 도시명은 ‘뾰족한 성’이라는 뜻으로, 이 요새에서 나왔다.
시브리히사르 산꼭대기 뾰족 요새. |
당나귀를 거꾸로 타고 다니는, 동심 품은 ‘호자’ 선생님의 교훈적이면서도 매우 재미있는 얘기들이 넘치고, 전쟁으로 헤어졌다 재회한 아내와 남편의 꿀 떨어지는 사랑 이야기도 있다.
시브리히사르는 앙카라와 아피온 딱 중간에 있는 소도시이다. 한국 탐방단이 아나톨리아 지역 4개 광역단체 70여개 지자체를 훑어가는 동안 최고의 소도시라고 입을 모았다.
시브리히사르는 행정구역상 아피온 북서쪽 대도시이자 광역단체인 에스키셰히르 지방에서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하며 남동쪽 끝에 있다.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에서 120㎞, 에스키셰히르 도심에서 90㎞ 떨어져 있다.
현재 튀르키예 제2도시 앙카라(수도), 제3도시 이즈미르, 지역거점도시 에스키셰히르행 고속도로가 모두 이곳에서 교차한다. 면적은 서울의 4배나 되지만, 인구는 2만명 가량이다.
호자의 동상 |
▶성자가 된 마을 이야기선생님 ‘호자’= 시브리히사르는 나스레딘 호자(Nasreddin Hodja), 유누스 엠레(Yunus Emre), 아지즈 마흐무트 휘다이(Aziz Mahmut Hüdai), 히지르 베이(Hızır Bey) 등 중세이후 근대까지 튀르키예의 정신적 지주가 된 성자들을 많이 배출했다.
나스렛딘 호자는 사제이면서도 교육자이자 제관이기도 했다. 그가 당나귀를 거꾸로 타는 이유는 사랑하는 마을 아이들이 자꾸 뒤에서 “선생님”,“선생님”하고 불러서 그랬다고 한다. 벌써 이 말 속에도 눈높이를 맞추면서 동고동락하고 이타심을 가지면서 인기가 높아졌다는 점을 발견했을 것이다.
호자는 이슬람의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영면한 뒤 영묘는 이슬람 순수 신앙 신비주의의 거점인 콘야 매블라나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다음은 튀르키예 최고 스승인 호자의 바른생활 이야기 두 편. 위대한 교육가이고, 종교적 성자인데, 거창하지 않아 놀랍고, 이웃집 아재 같아서도 놀랍다.
#어느날 누군가 호자의 당나귀를 훔쳐갔다. 호자는 아침이 되어서야 당나귀가 사라졌음을 깨닫고, 이웃을 찾아다니며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이웃이 물었다. “왜 그렇게 깊이 주무셨어요, 호자?”,“마구간을 잠그지 않으셨어요?”, “어떻게 그 커다른 당나귀가 사라지는 동안 마구간에서 나는 소리를 하나도 듣지 못하셨어요?” 이웃들이 자신을 위로할 것이라 생각했던 호자는 쏟아지는 질문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자네는 내 편이오, 아니면 도둑 편이요? 도둑은 죄가 없단 말이요?”
시브리히사르 요새 앞 전사의 동상 |
#어느 날, 나스레딘 호자는 그의 반지를 잃어버렸다. 구석구석 찾아보았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집으로 돌아와 집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의 아내가 궁금증을 못이겨 물었다. “호자, 무엇을 그렇게 찾으세요?”, “반지를 잃어버렸어요. 아직 찾는 중이예요”, “어디서 잃어버리셨는데요?”, “헛간에서요”, “그러면 왜 집안에서 찾고 계세요?”라는 질문에 대한 호자의 답은 이랬다. “응, 헛간이 어둡더라고.”
두 에피소드는 ‘전도된 진실’, ‘불안감이 초래한 거짓말과 임기응변의 허상’ 등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의 교육은 이런 식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동네 아재, 교장쌤 같은 호자를 열광적으로 좋아했고 당나귀를 타고 가면 그렇게 불러댔다고 한다. 우리 교육에도 본받을 점이 있어보인다.
콘야에 있는 호자 등 성인들의 영묘 |
▶꿀 떨어지는 풍경= 1074년 이후 투르크(돌궐) 민족(짧은 기간 몽골 일한국 지배)이 대세를 장악하던 튀르키예는 독일과의 오랜 우방관계 때문에 1차대전 후 나라의 상당부분을 그리스에 빼앗긴다. 그리고 빼앗긴지 4년만에 그리스를 격퇴하는데, 시브리히사르에 많은 이야기가 있다.
그리스 격퇴가 시간문제로 여겨지며 금방 끝날 것 같더니, 전투기가 부족하고 낙후돼 마지막 한 방을 날지 못했다는 얘기가 마을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물론 전투기를 구입할 무렵에는 이미 전쟁에서 승리를 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 주머니를 털고, 국민들을 설득하며 돈을 모아 최신식 전투기를 튀르키예 공군에 기증했다. 이 전투기 이름은 ‘시브리히사르’였고, 이곳엔 산꼭대기 전투기 모형 전망대, 활주로를 갖춘 비행전문가 훈련기지를 갖고 있다.
시브리히사르 피자 |
이 전쟁에 남편(erim)을 보낸 부인은 늘 그의 건강을 기도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에서는 전투기 살 돈을 모으는 와중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남편이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을 부리나케 전하며 현관문을 박차고 집으로 돌아왔다. 부인은 얼싸안고 재회의 기쁨을 나누지만, 잠시 후 남편 끼니가 걱정이다.
부인은 허기진 남편에게 급히 무언가를 먹이려고 준비를 하는데, 집안에 있는 것이라곤 빵조각과 우유 등 하루하루 겨우 연명할 식재료 밖에 없었다.
부인은 빵에 무염치즈를 바르고, 우유와 포도시럽, 설탕물을 부어, 우리식 표현으로 하면 ‘엄마손 쿠키에 꿀 바른 듯 흥건한 빵’을 건넸다.
남편이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보던 부인은 연신 애교스런 미소를 지으며, “좋지 않나요? 내 남편(Hoş mu? erim: 회스 무 에림)”이라고 거듭해서, 되풀이해서, 또또, 물어보았다고 한다. 이 예쁜 스토리 때문에 이 음식은 ‘회시메림’(Höşmerim)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회시메림 |
▶진정성이 최고의 음식으로 만든 회시메림= 한국으로 치면 남편을 너무도 사랑하는 아내가 맛있는 요리를 한 뒤 “괜찮아 자기?”라고 거듭 물어보는 풍경이다. 나아가 ‘괜찮아자기’라는 빵이 하나의 레시피로 정립돼 국민간식이 된 것이라 보면 되겠다.
이 음식은 제조과정의 가성비가 매우 높고, 지나칠 만큼 달콤한데, 오랜만에 재회한 남편의 허기도 채우고, 기분 전환도 시켜주기 위한 아내의 배려도 담겨 있다.
회쉬메림은 이처럼 사랑의 디저트로서 튀르키예 전역에서 사랑받는 식품이다. 요즘은 계란이 기본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너무 달아서 그런지, 견과류를 얹어 먹기도 한다. 상업용 제품으로 나온 것은 70년 가량 됐다.
세계유산 사원중 가장 높이 평가받는 시브리히사르 목조 울루 모스크 |
사랑하는 남편을 뜻하는 에림이라는 단어가 붙었다는 얘기가 정설도 떠돌고 있지만, 달콤하다는 뜻의 ‘maram’이라고 냉정하게 분석하면서, 그리고 그 부부 재회 장면 봤나면서, 마음 푸근해지자고 한 얘기,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 러브스토리를 ‘다큐’로 세게 받는 극T형 언어학자가 이곳에도 있다
abc@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