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1기 때 문화·예술 분야 지원 대폭 삭감
1.5억불 규모 예술·인문학기금 예산 없어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AP] |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모든 것을 구할 수 없다고 해서 아무것도 구할 수 없는 건 아닙니다. 구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구할 가치가 있습니다. 당신도 포기하지 않고, 나도 마찬가지예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당선 직후 미국 작가이자 인권 운동가인 레베카 솔닛이 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절망스러운 감정이 피부로 느껴진다. 그가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기고한 칼럼의 제목도 “이 나라가 실제보다 더 나은 곳이라고 착각했던 것이 실수였다”다. 올해 미국 대선이 트럼프의 승리로 끝나면서 앞으로 전망이 밝지 않다는 우려가 미국 예술계 내부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11일 세계적 미술잡지 아트뉴스(ARTnews)는 “지난 2016년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에 취임했던 트럼프 당선인은 예술기금, 다양성, 교육 등에 재앙과도 같은 영향을 끼쳤다”며 “기존 사례를 기준으로 보면, 가까운 미래는 암울해 보인다”고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에서 대선 승리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 |
첫 대통령 임기 때 트럼프 당선인은 무슬림 국가 7곳을 대상으로 여행 금지령을 내렸다. 이로 인해 예술가와 관련 전문가들의 미국행이 차단됐고, 박물관과 대학이 반발했다. 학술연구, 문화·예술 분야 지원 예산과 박물관·도서관 지원 예산, 저소득층 난방 지원 예산 등은 대폭 줄어들었다. 지난 2018년, 2021년에는 매년 1억5000만달러 이상의 예산이 배정됐던 국립예술기금(NEA)과 국립인문학기금(NEH)이 정부로부터 한 푼도 지원받지 못했다. 공영 라디오 NPR와 공영TV PBS에 대한 자금 지원을 담당하는 공영방송공사(CPB) 예산도 깎였다.
비평가인 싯다르타 미터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45년간 무분별하게 이어져 온 레이거니즘이 마침내 끝났지만, 그 자리를 인간적인 무언가가 대체한 게 아니다. 더 사악한 무언가가 대신하게 됐다”고 게재했다.
제프 쿤스가 기부한 작품 ‘American Flagpole(Gazing Balls)’(2024). [제프 쿤스] |
이번 선거에서 예술계 스타들은 민주당 미국 대통령 후보 카멀라 해리스를 대거 지지했다. 제프 쿤스, 제니 홀저, 시몬 리 등 200여 명에 달하는 영향력 있는 예술가들이 작품 등을 기부하며 모금 경매를 열었고, 150만 달러(약 21억 원) 이상의 수익을 창출했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에도 해리스 대통령 후보는 끝내 백악관 입성에 실패했다.
미국의 주요 문화기관 가운데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한 곳은 거의 없다. 다만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현대미술관(MOCA)은 작가 바바라 크루거의 1989~1990년 작품 ‘무제(질문들)’가 걸린 ‘임시 현대미술관’ 남쪽 벽의 아카이브 이미지를 게시했다. 작품은 “누가 법을 초월하는가? 누가 사고 팔리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LA에서 작업을 하는 흑인 작가 헨리 테일러는 “문제는 선거 결과가 아니다. 문제는 노예 제도와 대량 학살 위에 세워지고 착취와 억압에 기반한 제국 운영을 위한 최선의 방안에 투표했다는 것”이라는 작가 드레드 스콧의 SNS 메시지를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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