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대기자금’ 예탁금도 50조원선 무너져
미국 주식 등 트럼프 트레이드에 베팅한듯
“투자 심리 강화” 당분간 흐름 유지 전망
이달 들어 주요 은행의 대기성 자금인 요구불예금에서 6조원 넘는 뭉칫돈이 빠져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당선 확정으로 미국 대선 관련 불확실성이 일부 해소되자, 투자처를 찾기 위한 ‘머니 무브’가 발빠르게 이뤄진 것으로 분석된다.
앞으로도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 수혜가 예상되는 자산에 베팅하는 ‘트럼프 트레이드’가 본격화되면서 대기성 자금이 대거 이동할 가능성이 큰 만큼, 연말 이동할 자금의 향방에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9월 말 이후 45조 빠진 요구불예금…예탁금도 50조원선 무너져=12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수시입출금식예금(MMDA)을 포함한 요구불예금 잔액이 8일 기준 591조1338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달 말에 비해 6조6306억원 감소한 수치다.
이들 은행의 요구불예금은 7월 말 626조1997억원에서 8월 말 632조5000억원, 9월 636조7175억원으로 증가하다가 10월 말에 597조7644억원으로 꺾인 뒤 이달에도 감소세가 이어지는 모습이다. 9월 말 대비로는 무려 45조5837억원 줄었다.
요구불예금은 정기예금이나 적금과 달리 언제든지 돈을 넣고 뺄 수 있는 예금으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했을 때 자금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돼 대표적인 대기성 자금으로 꼽힌다.
요구불예금 잔액이 줄었다는 것은 금융소비자들이 투자처를 찾아 적극 이동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주식시장의 대기성 자금인 투자자 예탁금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8일 현재 국내 투자자 예탁금은 49조9023억원으로, 전월 말에 비해 6843억원 감소했다. 9월 말과 비교해선 6조9306억원 줄었다. 투자자 예탁금은 지난달 30일 49조5973억원을 기록하며 올 1월 26일(49조649억원) 이후 처음 50조원 선이 깨진 바 있다.
투자자 예탁금은 투자자가 주식이나 채권 등 금융상품을 거래하기 위해 증권사 계좌에 예치한 자금이다. 투자자 예탁금 감소는 국내 증시에 대한 투자심리가 약화됐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다.
▶대기성 자금, 美주식 등 트럼프 트레이드에 베팅=최근 은행과 증시의 대기성 자금이 급감한 데는 미국 대선의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6일(현지시간)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이 빠르게 확정되며 미국 대선 관련 불확실성이 사그라지자, 은행 요구불예금이나 증권사 예탁금에 임시로 넣어놨던 돈을 투자처로 옮기려는 움직임이 뚜렷해졌다는 것이다.
원전 등 에너지·방산·금융 등의 업종을 위시한 미국 주식, 달러화, 금, 가상자산 등 트럼프 당선인 집권시 수혜가 예상되는 자산에 투자하는 이른바 트럼프 트레이드가 대표적이다.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들은 이미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에 따르면, 미국 주식 보관금액은 7일(결제일 기준) 1013억6571만달러(약 141조원)를 기록했다. 예탁원이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11년 1월 이후 최대치다. 10월 말(910억6587만달러) 이후 일주일 만에 102억9984만달러(약 14조원)에 달하는 국내 자금이 미국 증시로 흘러들어간 셈이다.
미국 증시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승리 이후 역대 최고 수준으로 상승하는 ‘트럼프 랠리’를 보이면서 이러한 흐름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최근 단행한 0.25%포인트 기준금리 인하도 시장의 예상에 부합하는 결정이어서미국 증시엔 호재로 작용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미국 대선 관련 불확실성이 사라지고 투자심리가 강화되면서 대기성 자금이 줄어든 것 같다”며 “시중금리 하락 등 여파로 예전처럼 고금리 예·적금 상품 특판도 나오지 않고 있는 것도 은행 대기성 자금이 미국 주식 등으로 이동하는 데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승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