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내려도 이자수익 더 늘어
금융위원장 “혁신은 없어” 비판
은행들 ‘자금융통’ 책무에 미흡
금리가 오르며 서민들이 이자부담에 허덕이는 사이 은행들은 ‘이자장사’로 배를 불린 것으로 확인됐다. 주요 시중은행은 지난 10년간 꾸준히 이익이 늘었고 특히 이 중 이자이익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관련기사 4면
심지어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된 올해도 은행들은 시장 기조를 거스르고 역대급 이자이익을 거둬들이고 있다.
가계대출 관리를 명목으로 대출금리를 끌어올린 영향이다. 특히 치솟는 대출금리와 달리 예금금리를 기준금리 변동에 따라 즉각 인하하며, 소비자를 고려한 사회적 역할보다는 수익성 확보에 몰두하고 있다.
14일 헤럴드경제가 주요 시중은행의 10개년 실적발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이 거둔 이자이익은 33조6264억원으로 지난 2015년(17조4186억원)과 비교해 16조2078억원(93%)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10년도 채 되지 않아 예대금리차를 통해 벌어들인 이자이익이 두 배가량 불어난 셈이다.
이자이익은 매년 단 한 차례도 줄어들지 않았다. 통상 은행업은 기준금리가 상승하는 기간에 이익이 늘어나고 하락하는 기간에 이익이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 10년간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최저 0.5%에서 최대 3.5%로 등락을 지속하는 동안, 이자이익은 매년 최소 4%에서 최대 23%에 달하는 증가율을 보였다. 이 기간 쌓은 이자이익만 234조원에 달한다.
이는 단순히 대출금이 늘어난 영향은 아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4대 은행의 원화대출금 규모는 1203조8022억원으로 지난 2015년 말(738조2526억원)과 비교해 465조5496억원(63.1%)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같은 기간 4대 은행의 이자이익은 93%가량 증가했다.
대출금 증가 규모보다 약 30% 포인트 많은 이자이익을 수취해 온 셈이다.
전체 순이익 중 이자이익 비중도 나날이 높아졌다. 지난 2015년 기준 4대 은행의 총 영업이익(20조8414억원) 중 이자이익(18조582억원) 비중은 81.7% 수준이었다. 하지만 2023년 기준 총 영업이익(36조3040억원) 중 이자이익(33조6264억원) 비중은 92.6%로 10%포인트 이상 늘었다.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오른 지난 2022년에는 이자이익 비중이 94.7%까지 치솟았다.
은행들은 비이자이익의 성장 없이 이자이익 확대만으로 순이익을 크게 늘렸다. 혁신사업 없이 예대마진에 기대 돈을 번 것이다. 4대 은행의 2023년 누적 순이익은 12조3114억원으로 지난 2015년(4조770억원)과 비교해 8조2343억원(201%) 증가했다. 불과 10년도 채 되지 않아 순이익이 세 배가량 늘어났다. 같은 기간 비이자이익은 4조473억원에서 3조2581억원으로 8000억원가량 줄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도 최근 은행 이자이익과 관련해 “은행이 혁신을 통해 거둔 이익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삼성전자처럼 수출을 많이 하는 제조업의 경우 해외 시장에서 경쟁하고 살아남기 위해 혁신한 결과로 이익을 거뒀지만, 은행은 혁신이 있었냐는 문제의식이 있다”고 전했다.
은행들은 가계대출 관리를 요구하는 정부 기조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금리 인상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기존 차주 등 다수 소비자를 위한 이익 환원 정책 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주요 은행들은 기준금리 인하를 틈타 예·적금 금리를 즉각 인하하며 수익 확대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고객들이 은행을 통해 얻는 이익은 줄이고, 지급해야 하는 비용만 늘리고 있는 셈이다.
국내 은행업은 해외와 비교해 수수료이익 비중을 크게 늘리지 못하는 구조적 특성이 있다.
계좌 유지 수수료 등 은행 업무와 관련된 수수료 이익 비중이 적은 데다, 중도상환수수료 감면 등 혜택도 확대 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권은 ‘이자장사’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디지털혁신이나 해외진출 등을 이뤄 비이자이익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자이익만 콕 집어 늘린 현실을 고려하면, 실질적 노력 없이 ‘공수표’만 남발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든 상황이다.
일례로 ‘이자장사’ 해결 방안 중 하나로 제시된 해외법인 실적 또한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올 상반기 4대 은행의 순이익 중 해외법인 실적 비중은 4.8%에 불과해, 2014년 전체 해외법인 실적 비중(10.2%)과 비교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국내은행의 해외 점포 수 또한 지난해 말 기준 202개로, 외환 위기 이전인 1997년(257개)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은행들이 국내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손쉬운 이익 창출에만 치중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은행의 사회적 책임은 자금이 부족한 이들에게 돈을 옮겨주고 그 과정에서 금리를 결정하는 사회적 생물의 역할을 의미한다”며 “하지만 독과점 구조를 형성하고 ‘자금의 융통’이라는 기본적 책무를 잘 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올 상반기 30조원에 달하는 은행의 영업이익은 혁신을 잘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돈을 잘 빨아들였기 때문”이라며 “독과점 사업 형태를 띄는 금융 산업에서 은행간 경쟁이 약화되며 자원 배분 왜곡도 심해졌다”고 지적했다. 김광우·강승연 기자wo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