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로이터] |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제47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전세계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 기로에 섰다.
기후변화 대응의 핵심은 온실가스 감축 약속을 실천하고, 배출 책임이 큰 국가가 피해국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역사 상 가장 많이 온실가스를 배출한 나라 중 하나인 미국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다.
환경 분야에서 국내 정부와 기업 역시 트럼프의 기후 정책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정책 분야는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기후공시 의무화 등이다.
6일(현지시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이 플로리다주 웨스트 팜비치 컨벤션센터에서 대선 승리를 선언하고 있다. [로이터] |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는 미국이 파리기후협정(제21회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 탈퇴 여부가 가장 큰 변수다.
미국이 파리기후협정을 탈퇴한다면 새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를 제출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다른 국가들도 소극적인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를 제시할 수 있다. 미국은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18%를 배출하고 있다. 미국이 감축 노력을 중단하면, 다른 국가들도 애써 온실가스를 줄일 유인이 없게 된다.
파리기후협정이 가장 의미 있는 국제기후협약으로 꼽힌다.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많아도 2도 이상 오르지 않도록 하고자 모든 당사국들이 온실가스를 줄이기로 약속한 협약이다.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열리는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회의장에서 한 참석자가 '기온 상승을 섭씨 1.5도 내로 묶는데 모두 합심하자'는 내용의 슬로건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 |
한국을 포함한 당사국들은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를 5년 단위로 수립하고 이를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에 제출해야 한다. 내년 2월은 2035년까지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제출 기한이다. 기존의 2030년까지의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보다 높은 수치를 내놓아야 한다.
특히, 지금은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를 시급히 잡아야 할 시기다. 일시적 현상이라고는 하나 처음으로 지구 평균 기온이 1.5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WMO에 따르면 지난 1∼9월 전 지구 평균기온은 1850∼1900년 대비 약 1.54도 높았다.
IRA도 트럼프 당선인이 뒤집을 대표적인 기후변화 대응 정책으로 꼽힌다. IRA는 전기차 전환과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전환 등 산업을 육성하고자 수백억 달러 단위의 보조금 등으로 지급하는 정책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후보 시절 유세 과정에서 바이든 정부의 ‘그린 뉴딜’(Green New Deal)을 ‘그린 뉴 스캠’(Green New Scam·녹색 신종 사기)라고 비난해왔다.
블룸버그 통신 산하 연구기관인 블룸버그 인텔리전스(BI)는 보조금, 대출 지원, 세금 인센티브 등 형태의 IRA 지원 4330억달러 가운데 3690억달러가 위협을 받을 수 있다고 추산했다.
IRA 수혜를 노리고 미국 내 투자를 늘려왔던 한국 기업들의 타격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IRA가 시행된 이후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한 금액은 1000억 달러 이상으로 알려졌다. 한국기업평가는 “행정 명령 등을 활용한 지원 규모 축소가 예상돼 인센티브 감소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 8월16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한 뒤 사용한 펜을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에게 건네고 있다. [연합] |
기후공시 의무화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기후공시란 기업들이 재무정보뿐 아니라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 등도 반드시 공시하도록 하는 제도다. 유럽연합(EU)는 2023년, 미국도 지난 3월 기후공시 의무화 계획을 내놨다.
이르면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하는 내년 1월부터 기후공시 규정이 취소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기후공시 규칙을 만든 증권거래위원회(SEC) 역시 트럼프의 교체 대상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 트럼프 당선인은 유세 중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을 두고 “취임 첫 날 교체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미국의 기후공시 의무화가 늦춰지면 한국 기업들의 기후공시 부담도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국내 기후공시 의무화는 2026년 이후에 도입 예정이라고 하나, 구체적인 일정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4월 23일에는 ESG 공시 의무화 시기가 확정된 바 없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삼정 KPMG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과 국내산업 영향’ 보고서를 통해 “미국 내 사업을 영위하는 한국 기업의 탄소배출량 감축 의무 및 탄소배출권 구매부담, 상장사 대상 기후공시 의무 부담이 감소될 것”이라고 밝혔다.
존 포데스타 미국 기후특사가 지난 11일(현지시간)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에서 발언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
일각에선 트럼프 당선인이 기후변화 대응 정책의 속도를 늦출지언정 방향 자체를 바꾸진 못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한다. 전세계는 물론 미국 내에서도 지난 4년 간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 진행돼왔던 만큼, 각국과 주 단위로 이를 이어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조 바이든 현 미국 행정부의 존 포데스타 기후특사는 COP29 개막 연설에서 “트럼프 당선은 기후운동가들에게 실망스러운 결과”라며 사과했다.
이어 “차기 행정부가 기후 정책의 방향을 되돌리려 하겠지만 미국의 도시와 주, 시민들이 그 빈자리를 채울 것”이라며 “안전한 지구를 위한 우리의 싸움은 끝이 아니다. 이 싸움은 한 국가의 정치 주기를 넘는 더 큰 싸움”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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