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P·회사채 줄줄이 상환 의무 발생, 선택지 차환뿐?
연간 돌발 금융비용 1500억, 주주환원 확대 미지수
MBK·영풍 측도 인수 비용 증가로 인한 부담
[헤럴드경제=심아란 기자] MBK파트너스-영풍 연합, 최윤범 회장이 고려아연 경영권을 두고 한치의 양보 없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양측 모두 주주환원 확대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최 회장이 일으킨 3조원에 달하는 고려아연 차입금에 대한 청구서는 조만간 회사로 날아들 예정이다. 경영 활동과 무관한 돌발적인 금융비용 탓에 주주환원을 확대할 여력이 있을지 주목된다.
1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이 자사주 공개매수를 위해 외부에서 조달한 자금은 총 2조7000억원이다. 구체적으로 기업어음(CP) 4000억원, 사모 회사채 1조원, 금융기관 대출 1조3000억원이다. 당초 금융기관 대출은 최대 2조1000억원까지 계획했으나 예상보다 공개매수 청약 참여율이 낮아 실제 차입금도 줄었다.
고려아연은 재무전략상 자본시장이나 금융기관에서 활발히 자금을 조달하던 곳은 아니다. 지난달 최 회장이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자사주 공개매수를 추진하면서 20여년 만에 장·단기신용등급을 평정 받고 시장에 손을 벌렸다.
급하게 빌린 자금인만큼 조건 역시 투자자에 유리한 모습이다. 고려아연 신용도는 최상위 수준이지만 금리는 5~6%대에 책정됐다. 동일 등급 발행사의 조달 금리 대비 300bp 가까운 웃돈을 지급했다.
만기도 빠르게 돌아온다. 메리츠증권을 대상으로 발행한 1조원 회사채의 경우 내년 4월쯤 콜옵션 행사 여부에 주목된다. 발행사가 선택하는 중도상환권이지만 메리츠증권이 금리 조건 상향 등을 통해 상환 강제성을 부여했을 가능성이 언급된다. 해당 회사채는 무보증 조건이었던 만큼 메리츠증권 측에서 투자 리스크를 보완할 장치를 마련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로 최 회장은 전체 차입금 2조3000억원을 내년 1분기에 갚으려는 계획을 세웠다. 상환 계획에 포함되지 않았던 4000억원의 CP는 시장에서 빌린 만큼 차환을 통해 현금 소진을 최소화할 수 있어도 나머지 2조3000억원 차입금은 ‘급전’ 특성상 상환 의무가 촘촘하게 부과됐을 가능성이 언급된다.
그러나 2조5000억원 규모 일반공모 유상증자로 차입금 상환 재원을 마련하려던 계획은 불발됐다.
따라서 지속적인 차환 외에 뾰족한 대안은 없다는 평가다. 재무구조 개선 차원에서 회사 유보금을 동원해 차입금을 갚는 것도 어려운 측면이 있다. 고려아연은 신사업 투자 계획을 세우고 있는 만큼 현금을 모두 써버릴 수는 없는 상황이다.
차입금을 일시에 갚을 만큼 넉넉한 현금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올 9월 말 연결기준 고려아연의 현금성자산, 유동성금융상풍을 모두 끌어와도 2조1475억원으로 차입금에 미달한다.
유상증자 철회로 인한 재무구조 개선 방안 부재, 급증한 부채, 경영권 분쟁이라는 특수성 등으로 신용도 하방 압력도 커진 만큼 조달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최 회장과 경쟁을 벌이는 MBK 측에도 해당 차입금은 골칫거리다. 고려아연 경영 주도권을 가져와도 인수 추진 당시 예상하지 못했던 금융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MBK 역시 분쟁 과정에서 고려아연 인수 비용이 높아진 만큼 투자 기간 동안 배당 등을 통한 현금 창출이 필요하다. 다만 이자비용을 고려하면 당초 계획한 만큼 고려아연의 주주환원을 실행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최 회장은 불리해진 상황 속에서 분기배당을 통한 주주환원 확대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인 배당성향 목표 등 주주들이 수익을 가늠해볼 수 있는 수치를 제공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주주 입장에서 배당의 예측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은 아니다.
뜻밖의 이자비용 탓에 주주환원 확대를 실행할지도 물음표다. 이번 차입금으로 인한 고려아연의 연간 예상 이자비용은 약 1500억원이다. 이는 작년 고려아연의 현금배당액 3027억원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다.
최 회장은 MBK 측을 저지하기 위해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사외이사 중심의 이사회를 꾸려 지배구조를 개선한다고 했으나 허점은 보인다.
고려아연 이사회는 이미 사외이사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최 회장 경영권 방어 목적이던 ▷3조원대 자사주 공개매수 ▷2조5000억원 유상증자 등을 견제한 사외이사는 전무했다.
MBK는 “최윤범 회장은 ‘회장직’은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이사회 독립성 강화는커녕 의장이 될 사외이사 역시 거수기 역할에 불과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ar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