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OCN 방송화면)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손예지 기자] 천생(天生). 하늘로부터 타고났다는 뜻이다. 노력으로 성취하는 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준 아역배우에게 ‘천생 연기자’라는 표현을 붙이고 싶다. tvN ‘마더’가 발견하고 OCN ‘손 the guest’가 증명한 10살 소녀 허율의 얘기다.
한국형 엑소시즘을 표방하는 ‘손 the guest’는 영매(靈媒) 윤화평(김동욱)과 사제 최윤(김재욱) 형사 강길영(정은채)이 ‘손’ 박일도를 쫓는 이야기다. 이에 따라 ‘손 the guest’는 에피소드마다 ‘손’에 빙의된 서로 다른 캐릭터들이 주인공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런 가운데 8회에서는 ‘손’에 몸을 내어줄 위기에 처한 열 살 소녀 정서윤 역으로 허율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허율이 연기한 서윤은 영매의 운명을 타고난 소녀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빠(김형민)에게서 악귀를 봤다. 아빠가 뺑소니 사고로 사람을 죽인 탓이다. 서윤은 자신을 괴롭히는 귀신을 없애려고 돌을 던졌고, 결국 아빠가 목숨을 잃었다. 이 사고 이후 엄마(심이영)는 서윤에 대해 “내 딸이지만 무섭고 소름끼친다”고 토로했다. 가족을 위해 본능적으로 빙의를 거부했던 서윤은 엄마의 고백을 듣고 스스로 악귀에게 몸을 내어주는 선택을 했다.
(사진=OCN 방송화면)
이렇듯 서윤은 연기적으로 상당한 기술을 요하는 캐릭터였다. 부모의 갈등 때문에 기죽어 있는 모습부터 귀신을 보며 겁에 질려하는 모습은 기본이고, 빙의된 이후에는 눈빛부터 돌변하며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성인 연기자가 맡았어도 쉽지 않았을 표현인데 허율이 해냈다.
겁에 질린 모습은 애처로웠고 귀신에 씌인 모습은 소름돋게 했다. 각 상황마다의 온도차가 극명해 충격이 배가됐다. 특히 최윤이 구마의식을 하자 성인 남자의 손을 뿌리치며 “더러운 손 치워라, 사제놈아”라고 외치는 장면에서 느껴진 살벌한 독기는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엄마와 할머니(이주실)에게 “귀신을 없애겠다”고 나섰을 때도 마찬가지다. 책가방에 숨겨온 커다란 돌덩이를 들어 올리면서 “내가 없앨 수 있다”고 소리치는 그는 정신이 반쯤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가 하면 ‘무섭고 소름끼친다’는 엄마의 말을 들은 이후, 귀신을 받아들일 때 허율의 표정은 처연하기 그지 없어 시청자들의 공포를 자극하는 동시에 연민을 불렀다.
‘손 the guest’ 속 허율의 연기는 전작에서의 활약과 맞물려 더욱 감탄스럽게 느껴진다. 올해 초 출연한 데뷔작 ‘마더’에서 허율은 가정폭력 피해아동 혜나(윤복)를 연기했다. 당시 400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아역으로 화제를 모았다. 과연 치열한 경쟁 끝에 선택받은 배우다웠다. 허율이 연기한 혜나는 일본 원작 드라마 ‘마더’의 아역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시청자들에게 울림을 선사했다. 버림받을까 두려운 마음에 친엄마 자영(고성희)의 폭력을 숨기던 어른스러운 모습과 가짜 엄마 수진(이보영)에게 마음을 열고 의지하던 천진한 모습을 탁월하게 그려내 호평을 얻었다. 첫 연기라고는 믿기 힘든 소화력이었다. 덕분에 ‘제54회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받으며 역대 최연수 수상자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사진=tvN)
“허율은 배우를 해야만 하는 아이입니다” 지난 3월, ‘마더’를 마치고 만난 이보영은 이렇게 말했었다. 나이를 떠나서, 갓 연기에 첫 발을 뗀 신인이 경력 16년 차의 베테랑으로부터 ‘천생 배우’라는 평가를 듣는 것은 쉽지 않다. 허율은 여기에 ‘손 the guest’로 한층 폭넓은 표현력을 보여주며 선배의 찬사를 다시금 증명했다. 이제 고작 두 편의 드라마에 출연한 10살 소녀가 기성 배우들 못잖은 존재감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단언컨대 2018년 최고의 신인이라 부를 만한 허율의 성장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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