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윤식당' '효리네 민박' 보호 못하나? 규제 미흡이 만든 국가간 표절의 굴레
뉴스| 2017-08-2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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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tvN, SBS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한수진 기자] 중국에서의 한국 프로그램 베끼기가 심각한 수준으로 내몰리고 있다. 우리에게도 부끄러운 과거는 있다. 일본 프로그램 베끼기가 즐비했던 시절이 없지 않았다. 동아시아의 되풀이되는 표절 굴레에 탈출구는 없는 걸까.

최근 tvN ‘삼시세끼’ ‘윤식당’ ‘쇼미더머니’, JTBC ‘효리네 민박’, MBC ‘무한도전’, SBS ‘영재발굴단’ ‘판타스틱 듀오’ 등 무수히 많은 한국 예능프로그램 포멧이 중국에 도둑질 당했다.

‘윤식당’ 표절 의혹을 받은 후난위성TV의 ‘중찬청’은 배우 조미, 황효, 주동우, 장량 등 5명의 중국 내 톱스타가 출연해 보름 간 태국에서 중식당을 운영한다. 낯설지 않은 설정이다. ‘윤식당’의 설정, 촬영 구도, 자막, 식당 내부 인테리어까지 똑같다. 심지어 출연자들의 스타일링조차 비슷하다. 해당 프로그램은 중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며 시청률 1%를 넘어섰다. 이는 중국에서 높은 시청률 수치다.

이렇게 한국 예능프로그램 포멧을 그대로 카피해 인기를 얻고 있는 프로그램은 중국 내에 한 두 편이 아니다. 올해 들어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이는 지난해 7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확정 이후 중국 방송사에서 한한령(한류금지령)을 이유로 정식 판권을 사들이지 않고 베끼는 행태를 취하면서 문제는 심화됐다.

이제는 중국 내에서도 한국 프로그램 베끼기에 대한 경각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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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JTBC, SBS, MBC

■중국의 도 넘은 베끼기, 규제 방법 없을까?

그렇다면 법으로 저작권을 보호할 수는 없는 것일까. 어느 나라든 저작권법이 있다. 책, 영화, 드라마, 음악 등 향유할 수 있는 모든 문화적 행위에는 원작자의 권리가 있다. 이는 한국과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상황에서 포멧 베끼기를 규제할 수 있는 법은 없는 걸까.

법무법인 태승의 윤예림 변호사는 “지적재산권과 관련 사항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속지주의 또는 보호국법주의 원칙이 적용된다. 저작물과 관련한 사항을 판단할 때 저작물의 이용행위가 일어난 이용지를 통치하는 국가의 지적재산권법에 의해 판단된다. 관련 재판 또한 그 나라에서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외국인에 의한 외국에서의 저작권침해행위에 대해서는 외국에서 재판이 이뤄진다는 의미다. 최근 외국과의 지적재산권 분쟁에 있어 한국에서 재판이 열리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매우 제한적이며,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한국에서 한국법으로 의율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저작권에 대한 국가 간 뚜렷한 법적 제한이 없는 상황이라는 의미다. 표절 사례를 중재하는 세계저작권재산기구(WIPO)가 존재하긴 하지만 예능의 경우 포맷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판결하기가 어렵다. 더욱이 WIPO에서 표절 판결을 받아도 시정 행위에서 그치거나 재판 과정 중 증거물 채택 정도에 그친다. 눈 뜨고 코 베어 가는 걸 지켜 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공들여 만든 프로그램이 날로 베껴진 상황임에도 방송사들은 그저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국가 간의 문화적 협약이 더욱 절실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중국 내 한류 붐이 일었고, 상호간 판권을 사들이는 식의 정상적인 문화적 교류 흐름도 있었다. 국가 간 교섭과 중국 여론의 비판과 감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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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MBC,KBS, SBS

■ ‘부끄러운 과거’ 중국→한국→일본, 방송 베끼기의 굴레

사실 중국 표절을 문제 삼기 전 한국에서도 부끄러운 표절의 과거가 있다. 현재 중국처럼 과거 일본 방송 베끼기가 난무했던 시절이 존재했다.

한국 간판 예능인 ‘무한도전’은 지난 2015년 후지TV ‘톤네루즈노미나상노오카게데시타’의 코너 ‘모지모지군’에서 시도된 ‘인간 UFO 캐쳐’ 게임과 비슷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는 곧 표절 논란으로 이어졌고, ‘무한도전’ 측에선 해당 프로그램을 본 적도 없다고 부인했다.

‘인간 UFO 캐쳐’는 47도에 달하는 물 위에 떠 있는 물건을 집어 올리며 두 팀이 겨루는 게임이다. 한 명은 방향을 조정하고 다른 한 명은 와이어에 매달려 인간 집게 역할을 한다. 인간 집게가 선물을 들어 올리는 방식에서 ‘무한도전’에서 선보였던 ‘인간 선물 뽑기’와 유사성을 보였다.

SBS ‘런닝맨’도 지난 2015년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로스트 인 서울’ 편에 등장한 게임이 일본 후지TV ‘VS아라시’에 등장하는 게임과 똑같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런닝맨’에서 선보였던 핀볼 게임이 ‘VS아라시’에 자주 등장하는 게임 ‘고로고로 바이킹’과 규칙부터 경기까지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커지자 ‘런닝맨’ 임형택 PD는 표절을 인정하며 “앞으로 재발 방지를 위해 제작 과정을 개선하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사과했다.

예능뿐만이 아니다. 2008년 방송된 MBC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는 방영 내내 2006년 방송된 후지TV ‘노다메 칸다빌레’ 표절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2014년에야 정식 판권을 사들여 ‘내일도 칸타빌레’라는 제목으로 KBS에서 방영됐다.

한 방송 관계자는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일본 예능 베끼기가 즐비했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표절 여부를 파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인터넷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타국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이때 대중의 비판과 감시가 강화됐다. 그러면서 일본 예능 베끼기 관행이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베끼기의 굴레가 한국에서 중국으로 이어진 셈이다. 현재 한국 방송은 일본 방송 콘텐츠에 기대지 않아도 될 정도로 특유의 문화적 성장을 이뤘다. 특히 케이블TV와 종편 등에서 다양한 포맷의 프로그램이 제작되고 있다. ‘꽃보다 청춘’, ‘윤식당’이나 ‘효리네 민박’ 등이 대표적이다. ‘꽃보다 청춘’은 미국뿐 아니라 이탈리아와 터키까지 판권이 판매됐다. 중국에서도 한국 판권을 사들인 경우도 많았다. ‘런닝맨’을 비롯해 MBC ‘아빠 어디가’ ‘나는 가수다’, KBS ‘1박 2일’ 등의 판권을 정식으로 사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드 여파로 중국의 한국 판권 구매가 어려워졌고, 계속해서 한국 예능이 인기를 끌자 베끼기로 태세를 바꿨다. 이러한 행태에 중국 내에서도 비판 여론이 일었다.

한국에서도 일본 프로그램 표절에 대해 더욱 조심하게 된 이유는 대중의 비판과 감시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중국도 내부에서 표절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태다. 현재로선 여론의 감시에 기댈 수밖에 없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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