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기자 Pick]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를 만난다는 건
뉴스| 2018-01-03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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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용서의 나라' 책표지)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문다영 기자] 조두순은 전국민이 치를 떠는 대상이다. 조두순의 출소가 2020년이라는 사실에 국민청원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차마 말로 옮겨담기도 힘들 정도로 극악무도하게 어린 여자 아이를 짓밟은 조두순은 줄곧 억울함을 주장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조두순과 함께 구치소에 있었던 최모 씨는 조두순이 보내온 편지를 공개했다. 조두순은 편지에서 “술 때문에 전혀 기억이 없다”면서 “검사가 내가 전과자라는 사실 때문에 고압적으로 부당하게 대했다”고 주장했다. 구치소에서도 “내가 만약 어린아이에게 그런 짓을 했다면 내가 이 자리에서 죽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그러나 사람들은 안다. 범행을 저지른 건 다름아닌 조두순이라는 걸. 그리고 또 한가지, 조두순을 비롯한 대부분의 성범죄자들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형량을 줄이기 위해 고군분투할 뿐이다. 물론 진심어린 사과도 없다.

그런데 2016년 10월, 샌프란시스코 테드 강연장에서는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강연 주제는 ‘강간과 화해에 관한 우리의 이야기(Our story of rape and reconciliation)’, 성폭력 생존자 여성과 가해자 남성이 함께 단상에 오른 유례없는 날이었다.

두 사람은 차분한 어조로 16년간 그들 사이에 벌어진 사건, 즉 강간부터 회피와 부인, 참회와 용서까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사연을 고백했고 동시에 전 세계에서 매일, 매시간 벌어지는 성범죄의 위험성을 알렸다. 특히 성폭력을 여성의 이슈로만 한정지을 것이 아니라 대다수 성폭력의 당사자인 ‘남성’이 함께 참여할 때라고 호소했다. 아이슬란드 작가 토르디스 엘바와 호주의 청소년지도사 톰 스트레인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지난 1년간 415만이라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전 세계 22개 언어로 전파됐고 ‘용서의 나라(South of Forgiveness)’라는 책으로 출간됐다.

1996년 겨울, 열여섯 소녀가 교환학생 자격으로 아이슬란드에 유학 온 열여덟 살 호주 소년에게 강간당하고 버림받는다. 사건 후 9년 동안 섭식 장애, 알코올 의존, 자해 등 삶의 벼랑에서 몸부림치던 여자는 마지막 절규인 양 고국으로 돌아간 가해자에게 편지를 보낸다. 놀랍게도 절절한 후회와 진솔한 참회로 가득한 답장이 도착한다. 여자와 남자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기 위해 이후 8년간 300통의 서신을 주고받는다.

그렇게 두 사람은 2013년, 각자 살고 있던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와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의 중간 지점인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일주일간 재회하게 된다.

‘용서의 나라’는 성폭력 생존자와 가해자가 함께 사건의 진실을 밝히며, 폭력과 증오의 기억을 용서와 치유의 시간으로 변모시킨 여정을 기록한 실화 논픽션이다. 성범죄 역사에서 생존자와 가해자가 자발적 의지와 노력으로 16년에 걸쳐 소통하고 대화한 사례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무엇보다 가해자의 ‘진정한 참회’와 생존자의 ‘온전한 용서’가 함께 이뤄진 사례는 가해자의 진심어린 반성이 있기에 가능했다. 결코 보편적일 수 없는 두 사람의 이야기이지만 독자들로 하여금 성범죄의 치명성과 당사자들의 대처방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토르디스 엘바 , 톰 스트레인저 지음 |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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