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소희의 B레이더] 그리즐리, 열린 음악으로 여러 명의 ‘나’를 비추다
뉴스| 2018-09-06 11:17
저 멀리서 보았을 때는 그토록 어렵게 느껴집니다. 막상 다가서니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음악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낯선 가수였는데 그들에게 다가설수록 오히려 ‘알게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죠. [B레이더]는 놓치기 아까운 이들과 거리를 조금씩 좁혀나갑니다. -편집자주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이소희 기자] #46. 금주의 가수는 그리즐리(Grizzly)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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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EGO엔터테인먼트 제공)



■ 100m 앞: ‘곰’ 아니고 가수

그리즐리는 2014년 9월 싱글 ‘달세뇨’로 데뷔했다. 해외에서 유명한 곰 그리즐리와 이름이 같아 그의 이미지가 전혀 짐작이 안 가지만, 음악을 들으면 가수 그리즐리로서의 매력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는 데뷔 이후 싱글 ‘위드유(WITHU)’ ‘그래서 그랬지’ ‘폴링 다운(Falling down)’ ‘불면증’ ‘미생’ ‘글라이더’ ‘시골길’과 함께 정규 1집 앨범 ‘아이(i)’, 미니앨범 ‘아일랜드(ISLAND)’ 등을 발표했다.

■ 70m 앞: 대표곡 ‘달라’

그리즐리가 지난해 9월 발표한 싱글의 두 번째 트랙. 남녀가 서로 다른 감수성을 깨닫는 과정을 담은 곡이다. 현실에 안주하려 하고 춤을 추기를 원하는 여자, 비를 함께 맞을 수 있는 낭만적인 삶과 천천히 걷기를 원하는 남자의 대비가 돋보인다.

특히 이 곡이 수록된 싱글 첫 번째 트랙 ‘투모로우(Tomorrow)’와 이어지는 흐름이 인상적이다. ‘투모로우’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랑하는 연인을 모습을 표현한 노래다. 싱글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흐름을 집어넣은 점에서 그리즐리의 섬세한 면을 엿볼 수 있다. 장르적으로도 대중적인 알앤비(R&B)의 색을 띄고 있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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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EGO엔터테인먼트 제공)



■ 40m 앞: 그리즐리, 음악 그 자체가 자신

그리즐리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사랑에 치우치지 않은 가수’라는 점이다. 지난해 1월 발표했던 싱글 ‘불면증’이 그 행보의 시작이었다. 그는 노래에 군대에 있던 시절 갑작스럽게 불면증이 찾아와 잠을 자도 자지 않은 것 같았던 경험을 녹여냈다. 이후 낸 싱글 ‘미생’이나 정규앨범 ‘아이’, 미니앨범 ‘아일랜드’ 역시 자전적인 성향이 강하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그리즐리가 데뷔했던 해부터 2016년까지 낸 곡들은 대부분 달콤한 가사와 밝은 멜로디를 강조한 모습이다. 그렇다면 그리즐리는 차별화를 위해 색깔을 달리한 것일까? 그것 또한 아니다.

그리즐리의 사랑 노래를 잘 들어보면 단순히 가사 속 화자의 이야기만 남지 않는다. 그리즐리가 어떤 사람인지 또한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대표곡 ‘달라’에서 나오는 낭만주의의 남자주인공 모습은 인터뷰 당시 마주했던 그리즐리의 취향, 성향과 비슷했다. 그리즐리가 ‘대중적인 사랑노래 아니면 나를 담아낸 노래’와 같은 좁은 틀로 음악을 구분하지 않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단지 그리즐리는 나의 여러 모습 중 사랑에 빠지거나 이별을 한 모습을 담아낼 뿐이다.

물론 개인의 영역을 끄집어내 모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건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 일상에서 경험하는 일들은 대개 비슷하지만, 그 안에서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그리즐리는 이런 틈을 음악적인 변화로써 채운다. 그의 노래는 장르나 사용하는 악기소리의 질감, 풍기는 분위기가 모두 다르다. 때로는 우아한 현악기가 돋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빈티지한 기타 소리로 알앤비와 포크를 넘나들기도 한다. 간혹 신스 사운드로 반짝이는 울림을 주기도 한다. 이것이 그리즐리가 개인의 감수성을 대중적으로 풀어내 음악을 넓은 의미로 확장하는 방식이다.

그러니 그리즐리가 다음에는 또 어떤 음악으로 나올지 종잡을 수 없다. 하지만 노래가 어떤 스타일을 취하고 있더라도 그리즐리 자신으로부터 나온, 온전한 그의 곡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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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EGO엔터테인먼트 제공)



■ 드디어 그리즐리, “넓은 예술의 세계, 갇힌 음악하고 싶지 않다”

▲ 데뷔 초부터 최근 앨범들을 보면 보컬부터 소리, 노래의 분위기까지 점점 변하고 있는 것 같아요. 본인이 생각하기에 그리즐리의 음악은 어떤 모습들로 쌓여가고 있나요?

“정규앨범 ‘아이(i)’를 냈을 당시의 나는 앨범명처럼 순수한 음악 하는 아이였다고 생각해요. 수록곡이 (보통의 정규앨범보다 트랙 수가 적은) 7곡이긴 하지만 이렇게 순수한 앨범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정규로 내기도 했고요. 그때에 비해 지금은 스스로 생각해도 톤이나 추구하는 방향성들이 더 다양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리즐리라는 사람의 본 모습을 최대한 솔직하게 보여주려고 항상 노력하는 건 여전하답니다”

▲ 장르로도 계속해서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는 것 같아요. 요즘 꽂힌 음악의 스타일은 무엇인가요?

“스스로 생각해도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는 편이에요. 음악이라는 넓은 영역의 예술에서 갇힌 음악을 하고 싶지 않아서예요. 요즘은 좀 더 편한, 자극적이지 않은 음악들에 꽂혔어요. 어쿠스틱하면서 듣기 좋은 음악들이요. 아무 생각 없이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음악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요”

▲ 최근 발표한 ‘아일랜드’ ‘시골길’ 등을 보면 조용하면서도 자연이 가까이 있는 풍경에 꽂힌 듯해요. 본인이 살고 싶은 공간이나 풍경, 환경이 음악에도 영향을 미쳤을까요?

“음, 아마 살아온 27년 인생 중 제주도에서 살았던 두 달여 간의 시간과 환경이 나를 가장 많이 바꾼 것 같아요. 그런 말 있잖아요. ‘자연의 소리는 귀를 방해하지 않는다’. 그런 것처럼 요즘에는 좀 더 자전적이고 쉬어갈 수 있는 음악들을 많이 냈어요. 살고 싶은 공간을 묘사한다면 그냥 제주도에 자그마한 집을 짓고 사는 게 꿈이에요”

▲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데 있어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나 자신이에요.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감정들을 메모하는 편이기도 하고, 요즘은 나 스스로한테 더 깊게 다가가려고 노력해요. 마음속의 나와 대화도 많이 하는 편이구요”

▲ 변화 속에서도 일관된 그리즐리만의 색깔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주변에 음악을 많이 들려주기도 하고 내 음악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의 피드백을 보기도 하는데요. 반응들을 통해 알 수 있던 건 ‘그리즐리의 음악은 편하게 듣기 좋아’라는 감상이었어요. 나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소모되는 음악이 너무 많아지는 요즘, 조금 더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요소들이 그리즐리만의 색을 만드는 것 같아요”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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