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 연애 시대] ①“실패 확률 낮추려고”… 데이팅앱 찾는 ‘N포세대’
뉴스| 2018-11-11 09:00
지난해 출간된 ‘연애정경’(박소정 저)은 요즘 젊은이들에게 연애가 하나의 전시 이벤트가 됐다고 말한다. 자기 PR 시대에 얼마나 멋진 연애를 즐기고 있는지 역시 곧 나를 증명하는 하나의 스펙이 된다는 것. 이를 위해 상대의 조건을 따지고, 더 나아가 나의 연애 과정을 타인과 공유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진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원하는 조건의 이성을 쉽게 만날 수 있는 데이팅앱이 성행하고 비연예인의 연애담을 그리는 관찰 예능도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 한편 밝은 이면에는 그늘이 지게 마련이다. 조건을 중요시 여기는 연애의 경향이 미디어의 유행과 맞물리면서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연애 전시 시대’의 명과 암을 들여다 본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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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손예지 기자] “상대에 대한 정보를 미리 파악하면 실패할 확률도 줄지 않을까요?”

최근 데이팅앱에 가입했다는 프리랜서 디자이너 강은아(28.여) 씨는 이렇게 말했다.

강 씨는 마지막 연애 이후 약 1년간 지인을 통해 몇 차례 소개팅에 나섰지만 연인 사이로 발전한 경우는 전무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애초에 사진으로 확인한 상대의 외모가 이상형과 전혀 달랐는데도 주선자의 성의를 거절하는 게 미안해 억지로 만남을 가진 적도 있다. 외모는 괜찮았으나 직접 만나보니 성격이나 가치관이 정반대라 대화 자체가 힘든 때도 적잖았다. 이같은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평일 저녁이나 주말 등 소중한 휴식 시간을 쪼개 소개팅을 하는 게 비효율적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에 강 씨는 원하는 조건의 상대를 보다 간편히 만나기 위해 데이팅앱에 가입했다고 설명했다.

강 씨의 사례는 현대사회 ‘N포세대’가 인연을 찾기 위해 데이팅앱을 찾는 이유를 분명히 보여준다.

취업시장이 어려워지면서 만들어진 신조어 ‘N포세대’는 ‘N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세대’의 줄임말이다. 해마다 포기해야 할 것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변하지 않는 3가지가 있다. 바로 연애·결혼·출산이다. 모두 시간과 돈을 필요로 하므로 스펙쌓기와 열정페이에 시달리는 취업준비생과 직장인에게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이렇듯 사는 게 바빠 쌓지 못한 연애 경험은 또 다른 악순환을 부른다. 지난 4월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미혼남녀 10명 중 7명이 연애 경험이 있는 상대와의 만남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가 모태솔로인 경우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줘야 할 것 같다’ ‘부담스럽다’ ‘답답할 것 같다’ 등의 이유로 만나기가 꺼려진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해 북저널리즘 시리즈 ‘연애정경’(스체리어스)의 저자 박소정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보조연구원은 “학교에서, 회사에서, 사회에서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요구받는 청년들에게는 연애도 자기계발과 같이 잘 가꾸어 나가야 하는 영역이 되어가고 있다”며 ‘연애의 스펙화’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어떤 연인을 만나는지가 곧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자 생애 계획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일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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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엠브레인트렌드미디어)



비교적 빠른 시간에 연애 상대에 관한 맞춤형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데이팅앱이 성행하게 된 배경이다. 데이팅앱에서는 상대의 얼굴과 나이는 물론, 거주지·직업·학력 등의 기본적인 신상정보를 미리 확인할 수 있다. 앱마다 다르지만 키와 몸매 유형·혈액형·취미·특기 등을 알려주는 곳도 있다. 이용자는 이를 토대로 원하는 조건의 상대를 직접 선택할 수 있다. 본인과 상대의 선택이 일치해 매칭에 성공하면 앱 내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게 된다. 온라인 채팅이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으로 이어지는 것은 개인의 선택에 맡기는 식이다.

주목할 점은 데이팅앱마다 초점을 맞추는 정보의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누적 가입자 수 400만 명을 돌파한 ‘아만다(아무나 만나지 않는다)’가 중요시 여기는 정보는 외모다. 이에 따라 ‘아만다’에 가입하려면 먼저 얼굴 사진을 제출하고 기존 가입자들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서울대생이 만들었다는 ‘스카이피플’은 학력과 직업에 기준을 두고 이를 충족한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최근에는 ASMR 등 청각적 콘텐츠의 유행에 따라 목소리 정보로 상대를 파악하는 ‘인공지능 소개팅 애나’도 출시됐다. 글로벌 데이팅앱 ‘틴더’는 본인의 성(性)적 취향에 따라 동성과의 매칭이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외에 ‘크리스천 데이트’ ‘펫앤러버’ ‘1km’ ‘꽃중년닷컴’ 등이 각각 종교·반려동물·거주지·연령 정보를 중심으로 만남을 주선한다.

이에 데이팅앱 시장의 성장세가 심상찮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트렌드모니터는 지난해 국내에서 데이팅앱을 사용한 20~30대 비율이 2015년 대비 2배 가량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모바일앱 플랫폼 분석업체 앱애니가 2018년 8월까지 지난 10년간 국내 구글플레이 스토어의 누적 소비자 지출액을 조사한 보고서에서 따르면 게임을 제외한 상위 10개앱 중 절반이 데이팅앱이었다. 실제로 현재 국내에는 200여 개의 데이팅앱이 개발됐으며, 그중 상위 20개앱의 지난해 매출액이 1000억원을 기록했다.

급격한 확장에는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데이팅앱 역시 마찬가지다. 일단 데이팅앱이 제공하는 정보가 ‘연애의 스펙화’를 더 심화시킨다는 지적이다. 이를 테면 ‘아만다’의 가입 절차나 ‘스카이피플’의 가입 기준은 지나친 외모지상주의와 스펙지상주의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는다. 또 이로 인해 이용자가 허위 정보를 입력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기도 한다. 한국소비자원은 2015년 데이팅앱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소비자의 38.4%가 프로필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외모·직업·성격·취향·학력 등 프로필 정보를 허위로 입력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부 업체가 실명·성별·나이의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본인인증을 선택사항으로 채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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