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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뷰] 故 전미선을 사랑한 '나랏말싸미'의 동료들
뉴스| 2019-07-16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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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헤럴드경제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 함상범 기자] 故 전미선과 관련된 질문이 나오자마자 영화 ‘나랏말싸미’의 조철현 감독은 크게 흔들렸다.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故 전미선에 대한 감정을 묻는 질문이 나오자 마자 그는 요동친 듯 보였다. 순간적으로 목이 막힌 듯 소리를 잘 내지 못했고, 붉어진 눈가에서 눈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하는 듯이 보였다.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나랏말싸미’ 언론시사회에 조 감독과 함께 참석한 송강호와 박해일의 표정도 상기돼 있었다. 고인을 추모하듯 송강호는 검은색 정장과 넥타이를 입고 이 자리에 섰다. 송강호는 이런 뜻밖의 상황을 두고 ‘슬픈 운명’이라고 했다. 그는 이 영화를 찍으면서 겪었던 슬픈 사연 하나를 전했다.

“너무나 안타깝고 슲픈 과정이 있었죠. 모든 스태프들이 슬픔 속에 있다”고 운을 뗀 송강호는 “천도제 장면을 찍을 때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하필이면 그랬다. 그 촬영을 빨리 끝내고 서울로 올라온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그이어 “영화 촬영이 끝나고 이런 결과가 되니까. 착잡함이 있었던 것 같다. 의도치 않았지만, 이 영화의 슬픈 운명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 영화가 관객분들에게 슬픈 영화가 아니라 슬픔을 딛고 아름다운 영화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마무리했다.

박해일은 ‘영광’이라는 단어로 전미선을 추모했다. 그는 “기억이 생생하다. 각자 배우들이 치열하게 연기를 준비해오고 그날 촬영을 마치면 맛있는 식사를 하면서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던 그런 시기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충격이 가시지 않은 것 같다. 무엇보다 고인이 이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해서 너무 안타깝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선배님의 마지막 작품을 함께 해서 너무나 영광이었다. 보시는 분들도 저희 작품을 따뜻한 온기로 품어주시리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 영화는 문자와 한자를 권력으로 사용한 사대부 신하들의 모진 반대에도 불구하고 애민정신으로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심정과 과정이 담긴 작품이다. 故 전미선은 이 영화에서 소헌왕후를 맡았다. 어린 나이에 아무것도 모르고 세자비가 됐다가, 외척의 정치력을 반대한 태종으로 인해 가족이 몰살당한 경험이 있는 여인이다. 역적의 딸로서 세종을 믿고 의지하며, 때로는 기대게 만드는 인물이다. 세종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지만 세종이 더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내조하는 여인이다. 공교롭게도 세종대왕(송강호 분)과 신미 스님(박해일 분)은 죽음을 맞이한 소헌왕후의 천도제를 지낸다.

두 배우에 이어 마이크를 잡은 조 감독은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30여년 영화판에서 다양한 작품을 제작해오다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은 그에겐 커다란 시련이 아닐 수 없었을 테다. 검증되지 않은 자신의 연출력을 믿어준 배우에게도 고마움이 컸었던 것 같다. 그는 소헌왕후를 대장부, 세종대왕과 신미 스님을 졸장부라고 생각하며 대본을 썼다고 밝혔다. 힘들게 말을 잇는 와중에 전미선의 선물이 있다고 공개했다.

그는 “영화에서 소헌왕후가 한글 창제에 주춤한 세종대왕에게 ‘백성들은 더 이상 당신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라고 한 말이 있다”며 “도저히 만들어지지 않는 대사였는데 전미선이 직접 만들어줬다. 세상의 모든 지도자들에게 여성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24일 개봉하는 ‘나랏말싸미’는 故 전미선의 유작이다. 전미선은 누구보다도 강인하고 올바르며, 강인한 여성을 연기했다. 매 장면마다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 엿보였으며, 약 30여년 간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해온 내공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더 이상 그녀를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슬픔이 잔재가 많이 남는 작품이다.

‘나랏말싸미’ 제작진은 영화의 엔딩 크레딧 맨 마지막과 안내 책자 등에 “아름다운 배우, 고 전미선님을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자막으로 그를 추모했으며, GV나 쇼케이스, 인터뷰 등 각종 홍보를 최대한 자제하며 그를 추모하는 마음을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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