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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승 골프칼럼] (69) 윤이나를 구하는 길
뉴스| 2023-10-25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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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나. [사진=KLPGA]


태어난 장타자
필자는 베어즈베스트 청라CC에서 열렸던 한국여자오픈의 레프리로서 13, 14번 홀을 담당하고 있었다. 가장 어렵게 플레이 되는 13번 홀은 티샷도 어렵고 물가의 그린을 향한 어프로치 샷도 어려운 홀이다. 페어웨이 왼쪽에 큰 벙커가 있는데 장타를 노리는 많은 선수들의 볼이 벙커로 들어간다. 필자는 그 벙커를 훨씬 지나서 페어웨이 가운데에 멈춘 장타를 발견하고 놀라서 티잉구역 쪽을 돌아보았다.

선수 세 명이 걸어오는 모습을 보며 그 볼이 티샷을 한 볼 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구지? 그 볼의 주인은 아마추어 국가대표 윤이나였다. 다음날에도 윤이나가 장타를 치는지 확인하려고 출발 시간표를 체크하며 기다렸다. 놀랍게도 윤이나의 티샷은 전 날의 위치와 거의 같은 곳에 멈췄다. 필자는 윤이나를 따라오고 있는 코치를 찾아 짧은 대화를 했다. “윤이나의 장타는 코치께서 가르친 겁니까? 아니면 태어난 장타입니까?” 코치는 즉시 대답했다. “물론 장타자로 태어난 것이지요. 이나는 처음부터 딴 애들과 달랐습니다.” 장타자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라는 골프의 속설은 맞는 말이고, 윤이나는 장타의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틀림없다. 그 이후 필자는 윤이나를 지켜봐 왔다.

복귀의 순간은 한번 뿐
대한골프협회가 윤이나의 징계기간을 3년에서 1년 6개월로 경감한 결정을 보며 골프팬들은 찬성과 반대가 반으로 갈렸다. 반대를 하는 골프팬들은 윤이나의 복귀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복귀하는 절차와 방법이 불공정하다고 보는 것이고, 찬성을 하는 팬들은 기량이 녹슬기 전에 빨리 복귀해야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고 무엇보다도 호쾌한 장타를 보고 싶다는 것이다.

윤이나에게 복귀의 순간은 딱 한번 뿐이다. 복귀할 때 대부분의 골프팬들이 환영하고, 동료 선수들도 충분한 벌을 받았으니까 이제 함께 플레이하자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복귀하면서 꼼수에 의한 불공정한 절차라는 비난을 받는다면 윤이나의 선수 생활 내내 마음의 짐이 될 것이다. 치터라는 주홍글씨도 부담인데 그 위에 복귀과정까지 잡음이 난다면 어떻게 플레이에 집중할 수 있겠는가? 골프가 천재적인 재능이 있더라도 마음에 좌우되는 운동 임을 감안한다면 복귀하는 방법과 모습은 윤이나의 마음을 떳떳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순간이어야 한다.

3년 후라도 충분한 시간
3년의 징계기간을 채운 후 복귀한다면 2025년 9월에 복귀할 수 있는데 윤이나의 나이는 아직 스물 두 살이다. 복귀 후 15년 이상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다. 아니카 소렌스탐을 보라. 스물 두 살에 프로가 되어 LPGA에서 첫 우승을 한 것은 스물 다섯 살 때였고 서른 여덟 살에 은퇴 할 때까지 LPGA 72승을 쌓았다. 윤이나도 KLPGA 최다승인 신지애의 20승을 넘어 30승도 할 수 있는 재능을 가졌다. 치팅의 불명예를 KLPGA 최고의 업적으로 덮으며 살아날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남아있다.

어린 애가 아니다
윤이나를 살리는 길에 가장 큰 장해물은 기다릴 줄 모르는 주위 어른들의 욕심이다. 늦더라도 확실한 길을 가면 우승도 더 많이 하고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는데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징계 기간을 경감하도록 로비를 함으로써 나쁜 이미지를 만들고 안티 팬의 숫자를 늘린다. 부모와 코치, 에이전트, 열성팬 등 어른들이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은 윤이나의 복귀를 서두르다가 그 상처를 치료할 기회를 영영 놓치고 말 수도 있다. 이제 스무 살이 넘은 윤이나는 어린 애가 아니다. 어른들이 짜 놓은 각본대로 움직이면 후회할 수 있으므로 중요한 결정은 본인이 하고 그에 따르는 책임도 져야 한다. 세월이 흐른 후 그 어른들이 모두 사라졌을 때 모든 결과에는 윤이나의 이름만 남는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고, “살려고 하면 죽고 죽으려고 하면 산다”는 말도 곱씹어 보아야 한다.

윤이나를 살리는 길
윤이나를 살리는 길은 윤이나가 만들어야 한다. 조용히 기다리면 되는데 대한골프협회의 징계기간 경감 발표로 인해 골프팬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던 치팅 사건을 다시 기억하게 되었고 맑아 가던 물이 다시 혼탁해졌다. 윤이나는 직접 기자회견이나 SNS 메시지를 통해 동료 선수들에게 다시 한번 사과하고 징계기간 경감과 관계없이 3년의 자숙기간을 가지겠다고 발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발표로 인해 KLPGA는 윤이나의 징계 기간을 경감할 필요가 없게 되므로 자기의 평생 직장이 될 KLPGA를 구해줄 수 있다. 골프팬들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줘야 하며 윤이나가 떳떳하게 복귀하는 날 모두가 환영하고 응원해 주기 바란다.

*골프 대디였던 필자는 미국 유학을 거쳐 골프 역사가, 대한골프협회의 국제심판, 선수 후원자, 대학 교수 등을 경험했다. 골프 역사서를 2권 저술했고 “박노승의 골프 타임리프” 라는 칼럼을 73회 동안 인기리에 연재 한 바 있으며 현재 시즌2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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