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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AG 그후] 한국복싱의 희망 함상명 '달달한 음료 실컷 먹었다'
뉴스| 2014-10-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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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복싱 밴텀급(52kg)금메달리스트 함상명. 링 위에서의 터프한 모습과 모르게 평상시의 모습은 순박하고 의젓하기만 하다.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복싱은 모처럼 경사를 맞이했다. 2002년 부산 대회 이후 무려 12년 만에 금메달을 획득한 것이다.

유력한 우승후보였던 신종훈(25 인천광역시, 라이트플라이급)의 금메달은 어느 정도 예상됐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금메달도 있었는데 바로 ‘무서운 10대 복서’ 함상명(19 용인대, 밴텀급)이다.

함상명은 매서운 눈빛으로 상대방에게 바짝 접근하여 화끈하게 제압하는 전형적인 인파이터 복서다. 저돌적인 스타일답게 링 위에서는 매우 날카로운 인상을 품긴다. 그러나 평상시의 함상명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항상 웃는 모습에 아직 만 19세가 채 되지 않은 대학 새내기답게 재기발랄하다. 예컨대 포털사이트 인물정보란에 제공한 프로필사진은 왼손으로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또 워낙 혹독한 훈련을 이겨낸 까닭인지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의젓함을 갖추고 있다. 아시아 최고의 복서가 됐으니 '내가 최고'라는 자만심에 빠질 수도 있는데, 평범한 대학 1학년생답게 주위에 인사하기 바쁜, 아주 싹싹한 학생이었다. 아시안게임 끝나고 가장 하고 싶은 것이 고작 음료수를 마시는 것이었다니 싱거운 느낌마저 들었다.

아시안게임 이후 언론의 관심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을 텐데, 그저 재밌는 일이 하나 생긴 것 외에는 특별한 게 없다고 말하는 함상명. 평범한 대학생의 오습으로 돌아간 그를 10월 23일 용인대학교 종합체육관에서 만났다.

Q. 아시안게임 때까지 어떻게 생활했는가?
-일단 태릉선수촌에서 4월 초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새벽 5시 반에 기상 후 런닝부터 했다. 그리고 오전에는 웨이트 트레이닝, 오후에는 본 훈련 그리고 마지막으로 야간에는 다시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 이렇게 4가지로 나눠서 매일 훈련했다. 9월까지 이러한 훈련을 반복하고 아시안게임에 들어갔다. 아시안게임 이후에는 오른쪽 손 뼈를 다쳤고, 눈도 찢어져서 그것을 치료하면서 지냈다. 그런데 지금은 전국체전을 대비해서 다시 훈련에 들어갔다.

Q. 평범한 대학생에서 한순간에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아시안게임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는가?
-축하를 많이 받았다. 나 자신도 금메달을 따서 기분이 좋았는데 가족과 친구, 교수님들까지 만나는 사람들이 축하인사를 건네니 진짜 금메달을 땄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다. 대우가 달라진 것보다는 사람들이 많이 부러워했다. 한턱 쏘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금메달 땄다고 자만하지 말고 겸손해지라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도 있다.

Q. 아시안게임이 시작하기 전 인터뷰에서 라이벌로 언급했던 북한의 권철국, 우승후보로 여겨졌던 카이라트 예라리예프(카자흐스탄)와 장지아웨이(중국)를 차례로 만났다. 어느 경기가 제일 힘들었나?
-권철국과의 경기가 제일 힘들었다. 7월 열린 차이나 오픈에서 붙었었는데 아쉽게 패했다. 권철국은 나랑 같은 체급인 것 같지 않았다. 워낙 몸이 좋았다. 체중 조절을 하기 전에 평상시에는 69kg까지 나간다고 했다. 약13kg을 줄였다는 소린데, 체중 조절이 대단하다. 체격조건이 워낙 좋아서 내가 인파이터 스타일인데도 불구하고 힘에서 밀렸다. 권철국과의 경기에서 아웃복싱의 중요성을 느꼈다. 이를 집중적으로 보완해서 결국 아시안게임에서는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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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상명은 제일 힘들었던 경기로 권철국(북한)과의 경기를 꼽았다. 한번 져본 상대인 만큼 독기를 품고 설욕에 성공한 것이다. '한국복싱의 희망'답게 승부욕이 대단하다.

Q. 아시안게임을 치르면서 부담감은 없었나?
-아시안게임과 같은 메이저대회가 처음이라 부담감이 컸다. 안방에서 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더욱 ‘지면 어쩌나’라는 걱정이 컸다. 기필코 이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목숨 걸고 했다. 뼈가 부셔져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Q. 우승 직후 용인대학교 김진표 교수에게 큰 절을 올리는 모습을 봤다. 김진표 교수는 자신에게 어떤 사람인가?
-아버지나 다름 없는 분이다. 아버지처럼 대해주신다. 자주 와서 단점을 일일이 체크해주신다. 내가 땀을 흘려야 되는데 교수님이 더 땀을 흘리신다. 고1때부터 알고 지낸 사인데, 김진표 교수님의 존재가 용인대 진학의 가장 큰 이유였다.

Q. 김진표 교수 말고 또 존경하는 사람이 한 사람 더 있다고 들었는데 누구인가?
-김주영 교수님이다. 항상 모든 면에서 날 도와주신다. 정말 존경하는 분이고, 내 우상이다.

Q. 올해 들어 플라이급(52kg)에서 밴텀급(56kg)으로 체급을 바꾸었다. 체급을 올리게 된 이유가 있는가?
-고1때 처음으로 플라이급으로 올린 이후에 체중을 유지하는 게 힘들었다. 체격 자체가 커졌기 때문이다. 고1때까지는 어느 정도 체중조절이 어렵지 않았는데 2학년 때부터 체중을 빼는 게 너무 힘들었다. 고3때는 8kg까지 체중을 줄여야 했다. 원래 내가 먹고 힘쓰는 타입이라 체중을 빼면 힘이 안 났다. 체급을 올려도 체중조절을 해야 하지만 지금이 딱 좋다.

Q. 밴텀급에서의 경험이 아무래도 적었기 때문에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은데, 특별히 어려운 점이 있었나?
-처음에 몸싸움이나 상대방을 튕겨내는 것이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로 보완을 했다. 밀리지 않는 연습을 매우 많이 했다.

Q.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하고 싶은 게 많았을 것 같은데, 어떤 것을 제일 하고 싶었는가?
-특별히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무엇을 해야지’라고 생각한 것은 없었다. 다만 음료수가 먹고 싶었다. 다른 맛있는 것이 많지만 이상하게 달달한 음료수들이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고기나 이런 것들은 그 다음이었다. 음료수 실컷 멋었다(웃음).

Q. 12년 만의 복싱 금메달리스트 중 한 명이라서 언론의 관심도 많았을 것 같은데 어땠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대회 전에는 오직 운동에만 집중하느라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금메달을 딴 이후 언론의 관심을 받고, 기자 분들도 몇 분 오셨었는데, 색다른 경험이라 재미있었다.

Q. 곧 전국체전이 시작된다.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병원을 자주 다니고 있다. 눈 찢어진 곳도 치료하고 있고, 손도 오른쪽은 최대한 쓰지 않은 상태로 왼손만 쓰고 있다. 아직 전국체전 출전이 확정이 되진 않았다. 교수님이 내 상태를 봐서 결정할 것 같다. 아직 애매한 상태다. 태릉선수촌에서 운동하는 방식과 용인대학교에서 운동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현재 적응 중에 있다. 일상 자체가 아예 다르다. 선수촌 가기 전에 했던 운동이긴 한데, 그동안 다른 방식으로 운동을 해서 그런지 적응이 잘 안 된다.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Q. 작은 체구에도 힘이 상당히 좋다. 평소에 어떤 훈련을 주로 하나?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하는 것이 힘을 키우는 것에 큰 도움이 됐다. 매일 오전과 야간에 2시간씩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선생님들이 오전에 가르쳐주신 운동들을 야간에 그대로 따라한다.

Q.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인해 병역혜택을 받게 됐다. 더욱 운동에 전념할 수 있을 텐데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원래 나의 첫 목표가 아시안게임 금메달이었다. 이제 더 큰 시합은 올림픽인데, 일단 올림픽에서 어떤 성적을 내겠다는 것보다는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는 것이 먼저다. 올림픽 성적은 그 다음에 생각하겠다. [헤럴드스포츠(용인)=임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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