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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한의 사람人레슨](2)배려와 여유가 만났다 - 박인비 남기협 부부
뉴스| 2014-11-06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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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명의 나이를 훌쩍 넘기고, 내 아이들이 결혼 적령기에 접어드니 젊었을 때는 못 느꼈던, 새로운 감정이 생겼다. 지인의 아들 딸이나 젊은 후배들이 결혼하는 소식을 접하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보통 신랑이나 신부 한쪽 만을 아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어쩌다 양쪽 다 아는 혼례가 생기면 사람사, 그 인연의 깊이에 새삼 놀라며 기쁨이 배가된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골프를 잘 치는 여성인 박인비(26)의 결혼이 딱 그렇다(마침 이 글을 쓰고 있을 때 박인비는 미LPGA투어 푸방 LPGA 타이완 챔피언십서 라이벌 스테이시 루이스를 꺾고 시즌 3승을 올렸다!). 박인비는 지난 10월 13일 자신의 소원대로 골프장(서원밸리 컨트리클럽)에서, 자신이 너무도 사랑하는 남자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필자는 박인비와 남다른 인연이 있을 뿐 아니라 새 신랑인 남기협 프로(33)를 오랫동안 제자로 가르친 바 있기에 이 결혼이 특별했다. 그래서 결혼식장에서 축사까지 했다.

본의 아니게 필자는 두 커플의 연애사에 있어 산증인이 됐다. 시작은 오래 전이라 정확히 연도를 기억하지 못했는데 (박)인비가 방송에 나와 “2006년 임진한 골프아카데미에서 (신랑을) 처음 만났다”고 하니 그 때가 정확한 듯싶다.

당시 배상문 남기협 등의 유망주를 가르치던 필자는 미국으로 전지훈련을 갖고, 이 캠프에 당시 미국에서 살던 박인비가 합류하곤 했다. 나이 차이도 있고, 한국과 미국에서 떨어져 살기에 그들의 연애는 생각지도 않았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기는 하다. 당시 저녁에 전문 트레이너의 지도 하에 선수들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데 인비와 기협이가 유난히 자주 짝을 이루곤 했다. 이를 유심히 봤는데 기협이는 상대 몸을 밀 때 손으로 미는데 여자인 인비는 몸으로 밀었다. ‘인비가 기협이를 오빠로 많이 따르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아마 이때부터 둘의 사랑이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워낙 좋은 선수들 간의 일이라 모른 체 했다.

이후 둘은 언론에 알려지기 훨씬 이전부터 양가에 인사를 드린 후 교제를 시작했고, 한국에 올 때마다 둘이 함께 찾아오곤 했다. 아끼는 후배들인 까닭에 늘 이 커플과의 만남은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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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비-남기협 부부. 둘은 이렇게 남몰래 연애를 할 때부터 필자를 찾아왔다. 그리고 둘과의 만남은 늘 즐거웠다.

인비가 잘 알려진 반면 아내 때문에 일찍 골프를 접은 남기협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나는 단언한다. 남녀의 만남에 있어 누가 아깝다 이런 논리는 가당치 않은 것이지만 굳이 그렇게 속물 논리로 판단한다고 해도 ‘인비가 남편감을 잘 얻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남기협은 필자가 사위로 삼고 싶을 만큼 심성이 착하고, 성실한 젊은이다. 중학교 3학년에서 고등학생이 될 때 나하고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 왔으니 근 20년이나 지켜봐온 친구다.

남기협의 장점은 늘 자신보다 상대방을 먼저 배려한다는 것이다(인생의 선배로 젊은 여자들에게 당부 하나 한다면 외모나 능력보다는 이런 남자를 택하기를 권한다). 그리고 이런 인성이라면 당장은 부족해도 장기적으로 직업적으로도 성공할 확률이 높다.

어쨌든 남기협은 100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면 본인에게는 40만 쓰고, 나머지는 남을 배려하는 데 사용한다. 선천적으로 그렇다. 이렇게 착한 사람도 드물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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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에비앙 챔피언십 프로암 때 다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박인비-남기협 커플. 사진 제공=KB금융그룹


그리고 지극히 성실하다. 골프훈련을 할 때 어프로치를 2000개 하라고 하면 2001개 쳐야 타석에서 내려온다. 그러니 주니어는 물론 성인이 돼서도 골프실력이 좋았다. 너무 사람이 좋아서, 그러니까 독하지 못해 기대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타입은 시간이 갈수록 골프 기량을 꽃피우곤 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인비를 만나면서 자기 골프를 포기한 것이 아쉽기는 하다. 물론 자기를 희생하는 대신 사랑하는 아내를 세계 최고의 골퍼로 키워냈으니 그 보답은 충분히 받았지만 말이다.

인비도 인성이 참 좋다. 어린 나이부터 남을 배려할 줄 알았다. 골프를 함께 쳐 보면 정말이지 여유가 대단히 많았다. 예컨대 내가 아끼는 선수 중 한 명인 김인경은 승부욕이 대단하다. 함께 라운드를 돌며 ‘파닥파닥 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활기가 넘친다. 반면 인비는 오늘 작은 내기에서 지면 ‘내일 또 하죠’라며 쓱 지나간다. 김인경의 근성이나 박인비의 여유 모두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좋은 쪽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 대목에서 박인비 골프를 잠깐 분석해 보자. 보통 박인비 골프의 장점을 신기의 퍼팅이라고들 하는데 필자는 생각이 좀 다르다. 박인비 골프의 강점은 바로 ‘리듬’이다.

일단 백스윙이 정말 느리다. 세계적인 남녀선수 중 가장 느릴 것이다. 함께 라운드를 돌 때 필자가 “30분쯤 걸리냐?”고 농담을 할 정도다. 그런데 사실 이게 무서운 스윙이다. 인비는 그 백스윙을 천천히 하면서 절대 힘을 안 준다. 클럽의 끝 무게를 충분히 느끼면서 백스윙을 하고, 이어 어깨 회전을 통해 탁 놓는다. 특히 임팩트 때 클럽을 아주 자연스럽게 내보낸다. 절대 잡지 않는다.

좀 쉽게 얘기해서 골프 스윙에 있어 40cm의 임팩트존(임팩트 전후 20cm) 때 클럽을 잡아 버리면 절대 좋은 샷을 구사할 수 없다. 디봇에서 미스샷이 많이 나오는 것도 맞추려고 애를 쓰다 보니 잡아 버리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스윙이 이러니 박인비는 기복이 없다. 우승을 못해도 늘 톱10에서 놀(?) 정도로 샷이 안정돼 있다. 신들린 퍼팅도 이런 안정된 스윙을 바탕으로 찬스를 많이 만드는 것이 전제가 되는 것이다.

‘리듬의 미학’은 퍼팅도 마찬가지다. 인비는 퍼팅 임팩트 때도 결코 클럽을 잡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채가 가만히 나가도록 둔다. 여기에 타고난 거리감각과 충분한 연습이 있으니 퍼팅이 좋은 것이다.

아마추어 골퍼들도 한 번쯤 내 스윙, 내 퍼팅의 리듬은 어떤지 자문해 보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 때 박인비의 스윙이나 퍼팅 동작을 보면서 한번 참고들 해 보시라. 잘 따라한다면 의외의 큰 소득이 따라올 수 있다.

참고로 거리 감각은 선천적인 게 많다. 양용은 허석호 배상문 등 유명 선수들을 훈련시켜 보면 거리 조절 능력이 있는 프로들이 있다. 사과 한 박스를 놓고 여러 사람에게 던져주는 경우를 상상해 보면 쉽다. 탁탁 해당 사람에게 사과를 잘 던져 주는 능력, 이게 거리조절능력이다. 100명 중 한두 사람은 이게 없다. 그러면 프로선수로서 대성하기가 힘들다. 반면 100명 중 5명 정도는 거리 감각이 탁월하게 좋다. 인비가 여기에 속한다.

남기협-박인비 커플 얘기로 돌아와 보자. 배려와 여유가 만났다. 그러니 성공하는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실제로 박인비는 남기협과 사귀기 시작한 이후, 즉 애인을 매니저 겸 스윙코치로 둔 이후 엄청난 성적을 내고 있다. 인비는 부모에게 “기협이 오빠가 매니저 안 하면 골프를 안 치겠다”고 버텼고, 박인비의 부모님은 물론 할아버지와 할머니까지도 남기협의 인품을 알고는 ‘최고의 사위감’으로 반겼다. 이렇게 가정이 화목하니 골프가 잘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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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발치에서 박인비의 플레이를 지켜 보고 있는 남기협. 사진 제공=KB금융그룹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의 성공은 롱런 스타일이라는 점이다. 보통 선수가 연애하면 골프 잘 안 된다. 특히 여자선수가 그렇다. 하지만 정말 위대한 사랑은 선수에게 보이지 않는 힘이 되어야 한다.

한국의 자랑인 여자 프로들이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생활을 잘 했으면 한다. 그런데 의외로 이게 쉽지 않다. 골프와 투어생활을 이해하고, 이를 도와줄 남편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직업이 다른 사람이거나, 여자 프로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자는 힘들어 할 확률이 높다.

또 성격적으로도 골프라는 종목이 원래 혼자 하는 스포츠다.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 톱이 되려면 적당히 이기적인 성격도 필요하다. 자기는 안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직업상 그런 요소가 분명히 있다. 자기 혼자 결정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 것이다. 이런 여자 프로를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남자여야 한다.

여자 프로들은 박인비 결혼을 롤 모델로 삼았으면 한다. 가까이서 골프를 아는 남편감을 찾는 것이 좋다. 남기협처럼 배려가 넘치는 인성이라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함께 투어생활을 하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멀리서, 그리고 외모로 찾지 말고 가까이서 배우자감을 찾아라!

‘박인비-남기협’ 편의 끝은 그들의 결혼식 때 내가 전한 축사로 마무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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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례가 아닙니다^^' 필자가 박인비-남기협 부부의 결혼 때 축사를 하는 모습.

“남기협-박인비 부부의 가장 큰 장점은 남을 배려하고 희생하는 정신을 가졌다는 점입니다. 나이에 비해 생각이 넓고, 깊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이 두 사람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는 게 골프인지라 먼저 골프에 빗대 이 백년가약을 축하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인생을 살다 보면 어려운 역경들이 닥칩니다. 이 두 사람은 분명 어떤 역경도 이겨낼 능력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골프 때문입니다. 골프를 플레이하면 치고 난 뒤에야 비로소 결과를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나쁜 상황도 다 극복해야 좋은 골퍼입니다. 골프는 억울한 것도 있습니다. 나는 나이스샷을 해서 컵 5m에 붙였는데 토핑이 난 상대방은 어찌나 운이 좋은지 1m에 붙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인생도 억울한 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커플은 투어 프로들로 정상을 경험했기에 이런 인생의 어려움을 다 극복할 것으로 믿습니다. 골프를 이 만큼 하다 보면 그런 능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축사의 두 번째 내용은 몇 가지 당부입니다. 첫 번째는 외국생활을 오래 해야 하니 특별히 건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골프는 혼자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자칫 이기주의로 빠질 수 있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했으면 합니다. 세 번째는 남의 불행을 가슴 아프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됐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승수가 많아질수록 머리를 숙였으면 합니다. 10번 우승했을 때 60도 인사했다면 11번째 우승 때는 90도로 내려가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존경을 받습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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