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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리건 영화에 들어가기에 앞서 - 이준석의 킥 더 무비
뉴스| 2014-11-20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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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주얼(Casual)을 알아야 훌리건 영화가 보인다


앞으로 살펴볼 다섯 편의 훌리건 영화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드레스 코드(dress code)’입니다. 드레스 코드를 의역하면 ‘복장 규정’ 정도가 됩니다. 즉 어떤 행사에 참석하거나 집단에 속하기 위해서는 어떤 복장을 입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죠. 그런데 훌리건들에게도 드레스 코드가 있다는 걸 아시나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훌리건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훌리건들의 복장은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훌리건들도 일종의 축구팬이니까 훌리건의 드레스 코드는 유니폼이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훌리건들은 이상하게도 자기 팀의 유니폼을 입고 있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훌리건들은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기에 후줄근한 옷을 입을 것 같은데 실상은 오히려 반대입니다. 명품 브랜드의 점퍼와 코트를 걸치거나 비싼 스포츠 브랜드의 운동복을 입고 있습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이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캐주얼(Casual)의 개념을 알아야 합니다. 캐주얼? 캐주얼이라면 정장에 대비되는 간편한 복장을 말하는 것 아닌가요? 하지만 훌리건의 세계에서 언급되는 캐주얼은 평상복으로써의 캐주얼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캐주얼은 1980년대 초반, 비싼 명품 옷을 입고 다니던 훌리건들을 지칭합니다. 그 당시 훌리건들이 ‘캐주얼 유나이티드(Casual United)’라 불리는 반 이슬람 단체를 지지했던 데서 캐주얼이란 말이 유래했습니다. 그리고 캐주얼과 관련된 문화를 ‘테라스 문화(Terrace culture)’라고 합니다. 테라스는 영국에서 축구 관중석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캐주얼들이 고가의 옷을 입고 다닌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였죠. 보수적인 대처 정부 하에서 훌리건들은 경찰의 집중적인 단속에 쫓기고 있었습니다. 당시 영국 경찰은 훌리건들이 낡고 값싼 옷을 입고 다니는 데 착안하여 그들을 적발하곤 했죠. 그래서 훌리건들은 비싼 옷을 입고 다니면 경찰의 단속을 피할 수 있다는 사실에 착안했습니다. 게다가 유니폼이 아니니 상대팀의 아지트에 잠입 공격을 하는 데도 훨씬 요긴했죠.

캐주얼의 역사는 이렇습니다. 1970년대 말, 축구의 세계화가 이루어지면서 축구팀들이 자국 리그를 넘어 외국의 축구팀과 경기를 벌이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당연히 팬들 역시 해외 원정을 많이 가게 되었지요. 그 과정에서 항구 도시인 리버풀을 연고로 하는 리버풀과 에버튼의 팬들이 유럽 대륙의 명품 브랜드 옷을 들여오게 됩니다. 이는 곧 잉글랜드 전역으로 퍼지게 되죠.

1990년대 중반으로 들어 오면서 비싼 옷은 경찰의 눈을 피하는 역할 뿐 아니라 훌리건 집단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유니폼 역할을 하게 됩니다. 같은 팀을 응원하는 팬이라 하더라도 경기를 즐기는 서포터와 폭력에만 열을 올리는 훌리건은 엄연히 다른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유니폼을 입는 팬 혹은 서포터와 구분하기 위해 훌리건들은 스스로 고가의 옷을 입는 것이죠.

캐주얼들이 애용한 브랜드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초창기에는 아디다스, 라코스테 같은 유럽 대륙의 스포츠 브랜드가 선택됩니다. 영화 <어웨이데이즈>의 훌리건들은 아디다스(Adidas), <더 펌>의 웨스트햄 훌리건들은 엘레세(Ellesse) 운동복을 단체로 입고 다니죠.

그러던 것이 캐주얼의 역사가 오래되면서 점점 브랜드도 다양화됩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스톤 아일랜드(Stone Island)나 심지어 버버리(Burberry)처럼 누구나 다 아는 명품 브랜드의 옷들이 훌리건 집단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했죠.

<풋볼 팩토리>나 <훌리건스>처럼 비교적 최근의 영화에 나오는 훌리건들의 복장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초창기 캐주얼들처럼 화려한 색상이나 브랜드 로고를 강조한 운동복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죠. 대신 좀 더 세련된 디자인의 명품 코트와 점퍼를 걸치고 패싸움을 벌입니다. 그러다 보니 브랜드 가치 하락을 우려하여 명품 브랜드들이 캐주얼들이 선호하는 옷들을 아예 생산하지 않는 일도 있다고 하네요.

이번 장에서 살펴볼 영화에는 모두 훌리건이자 캐주얼인 이들이 등장합니다. 아디다스에서 시작하여 스톤 아일랜드까지 이어지는 훌리건들의 드레스 코드와 테라스 문화를 살펴보는 것도 영화의 또 다른 재미가 될 것입니다.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리스트로, 현재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이 글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한 감상평으로 축구팬들로부터 스포츠의 새로운 면을 일깨우는 수작으로 큰 호응을 받았다(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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