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경기 결과 : 서울 SK(27승 8패) 73-67 고양 오리온스(18승 17패)
14일 '1순위 용병' 리오 라이온스가 오리온스에서 첫 선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적응의 문제라고 봅니다. 농구는 혼자 하는 스포츠가 아닙니다. 천하의 마이클 조던도 필 잭슨 감독이나 트라이앵글이라는 전술, 스코티 피펜, 데니스 로드먼 등 동료가 없었다면 지금은 신화가 돼 버린 '시카고 왕조'를 만들지 못했을 것입니다. 당연히 지도자와 동료 선수가 하루아침에 모두 바뀐 팀에서 뉴 페이스가 첫 경기부터 전 소속팀만큼의 활약을 바라는 건 욕심입니다. 더구나 라이온스는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실력이 뛰어난 선수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팀 분위기에 적응을 마칠 때쯤이면 오리온스의 경기력은 지금보다 분명 나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라이온스가 비록 이날은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지 못했지만 확실히 길렌워터의 체력 안배에는 도움을 주는 모습이었습니다. 길렌워터는 이날 23분17초를 뛰며 21득점에 10리바운드를 따냈는데, 경기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제몫을 다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무래도 헤인즈가 라이온스보다는 길렌워터를 막을 때 더욱 버거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컨디션이 괜찮았던 길렌워터를 4쿼터 초반부터 출전시켰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이유입니다.
어쨌든 양팀 대결의 변수였던 라이온스가 이렇다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결국 경기의 양상은 지난 2, 3라운드(SK 승리)와 비슷하게 흘러갔습니다. SK의 타이트한 맨투맨 수비에 오리온스의 공격이 무뎌지는 사이 최부경-박상오-박승리 등 SK의 토종 포워드진이 효율적인 경기 운영으로 공격을 풀어간 게 승부를 갈랐습니다.
오리온스 이승현과 리바운드 다툼을 벌이고 있는 SK 최부경(오른쪽).
마찬가지로 이날 경기에서 오리온스 수비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3쿼터에 지역방어를 들고 나와 한때 11점차까지 벌어졌던 점수차를 만회하는 과정은 충분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리온스의 문제는 공격이었습니다. 4쿼터 승부처에서의 득점 분포를 살펴보면 SK는 16득점 중 9득점을 국내 선수들이 해준 반면 오리온스는 단 4득점에 그쳤습니다. SK 국내 선수들의 경기 운영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4쿼터에서 오리온스는 길렌워터가 포스트에서의 득점을 잘해줬습니다. SK에도 엄연히 헤인즈라는 특급 용병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토종 선수가 결정적인 득점을 올린 것입니다. 오리온스에는 이런 선수가 없었죠. 농구에서 탁월한 득점기계에 대한 의존은 패턴이 단조로워지면서 오히려 승부에 독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SK 최부경은 오늘 시즌 최다인 15득점을 기록하며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더구나 고비마다 공격 리바운드를 따내면서 넘어갈 수 있었던 주도권을 사수했습니다. 박수교 SBS스포츠 해설위원이 "볼이 최부경 선수 앞으로 떨어지는 것 같다"고 했는데, 그만큼 이날 최부경의 위치 선정은 탁월했습니다. 결국 리바운드는 부지런함입니다. 김민수가 부상으로 빠진 상황에서 최부경이 이날만큼만 골밑에서 활약해준다면 당분간 SK를 꺾을 팀은 쉽게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SK는 최근 세 시즌을 놓고 봤을때 올시즌 전력이 가장 좋아 보입니다. 김민수가 수 주일 내로 부상에서 돌아온다면 전력은 더 배가될 것입니다. 물론 모비스가 저력이 있는 팀이긴 하지만 부상이라는 돌발 변수가 없다면 SK는 그 어느 때보다 우승을 노려볼 만합니다.
오리온스는 결국 우승이라는 대업을 위해서는 국내선수들의 활약이 절실하다 하겠습니다. 어느 하나 빠지는 선수가 없을 정도로 구성이 좋고 선수층도 두텁지만 결정적인 순간 '해결사' 역할을 해줄 선수가 없다는 것이 오리온스의 아킬레스건입니다. 오리온스와 6강 경쟁을 하는 KT, 전자랜드, LG와 같은팀에는 하나같이 조성민, 정영삼, 문태종 같은 해결사가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러합니다. 장재석-이승현 등은 아직 게임을 지배할 만한 경험이 부족하고 허일영 같은 선수도 직접 만들어서 공격을 전개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오리온스는 오늘 패배로 KT, 전자랜드에게 공동 4위 자리를 내주게 됐습니다. 또 이 세 팀의 순위다툼에 현재 3게임 차로 처져 있긴 하지만 언제든 치고 올라올 수 있는 LG가 가세하면 앞으로의 6강 싸움은 더욱 흥미로울 것으로 보입니다. [전 중앙대 감독] (정리=나혜인 기자)
sport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