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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창의 카톡(Car Talk)] 난 지금 경차 레이를 탄다
뉴스| 2015-03-05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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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스포츠>가 탤런트 이세창의 자동차 칼럼을 연재합니다. 연예인 레이싱팀인 알스타즈의 감독인 이세창은 대표적인 자동차 마니아로 1990년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으로 데뷔했으며 ‘딸부잣집’을 통해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연예인 카레이서라는 분야를 개척한 이세창을 통해 매주 한 차례씩 다양한 자동차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편집자주>.

KBS 드라마 ‘딸부잣집’에 출연했을 때가 스물 네살 때다. 시청률 40%를 넘기며 빅히트를 기록한 드라마 덕에 유명세를 얻으면서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을 즈음 난 스쿠프를 탔다. 한창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얻은 인기로 자동차에 대한 기대치는 뭉게구름처럼 부풀어 올랐다.

돈을 벌면 꼭 갖고 싶은 차가 있었다. 드라마 촬영이 끝나면 새벽녘 압구정동 수입차 매장으로 달려갔다. 한 시간씩 쇼윈도 밖에서 차를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많았다. 쇼윈도 안에는 영화에나 등장하는 멋진 차들이 있었다. 난 그 걸 ‘다른 세계’라고 생각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선남선녀들이 타는 차로 본 것이다.

하루는 용기를 내 스쿠프를 몰고 수입차 매장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경비원의 눈빛은 싸늘했다. “뭐야? 차 빼!”라는 느낌을 받았다. 할 수 없이 차를 돌려 골목에 주차하고 용기를 내 매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경비원의 차가운 눈빛이 느껴졌는데 연예인이라는 걸 알아보고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나를 쇼윈도 안으로 이끈 건 열망하던 ‘슈퍼카’였다.

매장에 들어가자 커피와 다과가 나오고 말끔한 신사복 차림의 딜러가 달려와 열심히 차에 대한 설명을 했다. 용기를 내 매장 안으로 들어간 이유는 영화에서만 보던 페라리 테라로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격을 물었더니 무려 2억 8,000만 원(20년 전 가격). “우와!”라는 감탄사밖에 나오지 않았다.

운전석에 앉아 보라는 딜러의 권유에 “아니에요”라고 손사래를 쳤다가 나도 모르게 슬며시 차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놀라운 건 시트 포지션이었다. 얼마나 낮은지 문을 열었을 때 손이 바닥에 닿을 정도였다. 차 안은 황홀했다. 드라마 대사처럼 ‘이태리 장인이 한땀 한땀 수놓은' 가죽 시트는 너무 아름다웠다. 난 그 때 처음으로 미드십 엔진이 탑재된 차를 타 봤다.

흥미로운 점은 차에 오디오가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 시승기를 쓰느라 다양한 차를 타 봤는데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딜러에게 “2억 원이 넘는 차에 왜 오디오가 없죠?”라고 물었더니 딜러의 얼굴엔 순간 비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곤 “엔진룸이 오페라인데 오디오를 찾으시나요?”라는 퉁명스런 답이 돌아왔다. 당시 난 딜러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중에 F1 경주에 빠져 들면서 “엔진음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란 걸 알게 됐고 도도했던 딜러의 말을 뒤늦게 이해하게 됐다.

다른 매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포르셰 터보가 전시된 매장이었다. 말로만 듣던 터보를 만나러 갔다. 몰아보라는 권유를 받고 차에 올라탔다. 클러치를 밟았더니 너무 무거웠다. 딜러에게 “여자도 사고 할아버지도 살 수 있는 차인데 이렇게 클러치가 무거우면 한 시간 안에 다리에 쥐가 난다. 누가 사겠나?”라고 호기롭게 말했다. 포르셰 매장의 딜러도 같은 표정을 지으며 “이 차를 이기지 못하면 못 사는 거죠”라고 대답했다. 난 “무슨 말이죠?”라고 반문했고 그 딜러는 “이 차는 야생마입니다. 길들이지 못하면 못 가져 가는 겁니다”라고 응수했다.

이 두 가지 에피소드가 자동차를 보는 관점을 바꾸게 했다. 당시 대부분의 자동차 메이커들은 누구나 탈 수 있는 보편적인 차를 생산했다. 하지만 페라리와 포르셰는 특정 고객을 위해 차를 만들었다. 그 차가 주는 맛을 느끼는 신세계가 따로 있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다. 그리고 또 하나. 향유할 줄 아는 사람이 탈 때 그 차의 진가가 발휘된다는 점이다. 느낌을 아는 사람이 몰 때 차는 빛이 나는 법이다.

난 지금 기아차 레이를 탄다. 과거 한 때 레이 10대를 사고도 남을 비싼 차를 탄 적도 있다. 하지만 난 지금 레이가 좋다. 경차 주차장 따로 있어 주차가 편하고 통행료 등 여러 혜택도 있어 좋다. 또 좁은 길도 쉽게 가고 뒷 자리에 레저용품 다 실을 수 있어 좋다. 내가 타는 자동차의 특징을 잘 이해하면 모든 차가 명차가 될 수 있다. 이런 깨달음이 없었다면 레이를 타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호텔을 가든 촬영장을 가든 난 아주 떳떳하게 레이를 몬다. [알스타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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