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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중독의 편파 야구 Just For Twins!] 취미인 줄만 알았는데, 인생 공부까지 시켜주는 트윈스
뉴스| 2015-04-26 22:14
26일 경기 결과: LG 트윈스 7 - 6 NC 다이노스

INTRO - 40대 중반에 새삼 깨달은 ‘겸손’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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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경기의 마지막을 삼진으로 끝낸 LG 투수 이동현.

인생 공부 다시 한 번 진하게 했다. 나이가 어느덧 4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다’는 자각이 있었는데, 천만의 말씀이었다. ‘역시 야구는 인생 공부가 되는 스포츠야! 언젠가 잘 할 수도 있으니 오늘 좀 못한다고 너무 미워하지 말자!’(6회 정의윤의 역전 2타점 적시타 때 필자가 했던 생각) 정도는 인생 공부 축에도 못 들었다. 이 기사를 마감하고 나면 맥주 한 캔 따고 다시 한 번 인생을 돌아볼 생각이다.

우선 첫 번째 인생 공부. 사람은 정말 겸손해야 한다.

필자의 친구 중 열혈 롯데 팬 한 명이 있는데 필자는 최근 그에게 위로주를 사면서 그를 다독여 준 일이 있었다. “하도 불펜이 방화를 자주 해 제명에 못 죽겠다”는 이 ‘부산 싸나이’에게 필자는 “지금 불펜의 난조는 일시적인 현상이다. 김성배도, 김승회도 클래스가 있지 않느냐. 곧 돌아올 것이니 걱정 마라. 이종운 감독의 투수 운용도 나날이 발전할 것이다”라며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리고 26일 깨달았다. 내가 지금 남 걱정할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두 번째 인생 공부. 글을 써서 먹고사는 사람의 숙명이지만, 일을 정말 성실하게 해야 한다. 조금 편하게 살겠다고 잔머리를 굴리면 바로 들통이 난다.

소사의 역투에 제때 점수를 뽑아주는 타선 덕에 필자는 사실 8회가 채 끝나기 전 오늘 송고할 칼럼을 대부분 완성했다. 게다가 9회초 쐐기를 박는 추가점까지 뽑아주니 긴장이 될 리가 없었다. 편안히 ctr-S를 누르려는 순간 9회말 사단이 터졌다. 경기를 마친 뒤 필자는 써 두었던 칼럼을 ctr-A 한 후 delete 해버렸다.

그래서 일을 할 때에는 뭘 좀 쉬운 길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명색이 야구 칼럼을 쓰는 작자가 경기가 끝나기 전에 칼럼을 다 써놓다니! 가슴 깊이 스스로의 불성실에 대해 반성한다. 이제는 너무도 유명한 요기 베라의 명언, “It ain't over till it's over(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은 ‘야구 명언 명예의 전당’이 있다면 반드시 맨 앞에 올려야 한다.

9회 대거 4점을 내주고 1점차 살얼음 리드에서 2사 만루의 절체절명 위기까지 몰린 상황. 이런 경기를 해서는 안 됐는데, 결국 이런 경기를 하고 말았다. 이겨서 다행이지 만약 졌다면, 트윈스의 2015시즌 초반은 스텝이 완전히 꼬일 뻔 했다. 경기 직후 양상문 감독이 주먹을 불끈 쥐는 모습에서 그 역시 얼마나 이 상황이 중요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경기는 끝났지만 복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트윈스의 유능한 코칭스태프가 진지한 복기를 통해 오늘 시합의 문제점을 잘 다시 되짚어 주리라 믿는다.

하지만 그런 믿음 속에서도 우려되는 점이 하나 있어 주제 넘는 첨언을 덧붙인다. 오늘 한 야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에서 정민철 해설위원은 “봉중근의 부진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말이다, “왜 이 정신적인 문제를 시간을 두고 해결하면 안 되느냐?” 하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봉중근이 올 시즌 반드시 필요한 선수여서”라는 답은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다. 반드시 필요한 선수인 줄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어떤 절차를 거쳐야 그가 회복될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그 방법이 꼭 1군 마운드 등판일 필요가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봉중근의 자존심도 고려해야 해서”라는 대답은 더더욱 말이 되지 않는다. 봉중근은 지금 자존심이 상해서 못 던지는 것이 아니다. 누가 봐도 마운드에 오른 그의 표정은 불안감에 가득 차 있다. 상한 자존심이 문제가 아니라, 부족한 자부심이 문제인 것이다.

“봉중근에게도 2군에서 몸과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올 시즌 봉중근을 포기하는 것인가? “이동현에게 일시적으로 마무리를 맡기자”고 말하면 봉중근의 자존심이 회복이 안 되는가? “팀보다 위대한 선수가 없다”는 말을 다시 하려는 게 아니다. 무엇이 지금 봉중근을 위해 가장 좋은 길인지를 다시 한 번 코칭스태프가 현명하게 판단을 해보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봉중근은 암흑기 시절부터 트윈스의 마운드를 지켜온 소중한 선수다. 그가 불펜의 부진과 팀 타선의 무기력으로 수차례 ‘봉 크라이’에 머물렀던 안타까운 시기를 기억 못할 트윈스 팬은 없다. 그가 설혹 앞으로 영원히 옛날의 구위를 회복 못한다 하더라도 그의 업적을 머리에서 지울 팬들도 없다. 하지만 그의 회복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가장 현명한 길을 찾아야 한다. 장담하건데 트윈스 입단 이후 가장 많은 비난을 받는 지금의 상황(시쳇말로 ‘가루가 될 때까지 까이는’ 지금의 상황)이 봉중근의 회복에 도움이 될 리가 없다. 봉중근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리 위대한 투수도 쉬어갈 때가 있는 법이다. 그것이 그리 어려운 일인지 생각을 해 보자는 것이다.

최고의 선수 - 고맙다, ‘갓’ 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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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7이닝 2실점 10탈삼진으로 '몬스터 모드'를 가동한 트윈스의 선발투수 헨리 소사.

올 시즌 소사의 환골탈태는 정말 눈부시다. 26일 7이닝 2실점. 표면적인 결과보다 더 놀라운 것은 2회 2사부터 4회 2사까지 7명의 타자를 연속 삼진 처리하는 압도적 구위였다. 9회 사단이 나지 않았다면 오늘은 소사의 이야기로 칼럼 전체를 채우고 싶을 정도였다.

소사의 모습을 보며 그가 한국 야구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려 했는지를 절감한다. 그는 자신의 구위만 믿고 한국 야구의 가르침을 무시하는 스타일의 선수가 아니다. 그런 선수라면 이날 보여준 ‘안정된 강속구 투수’ 소사의 모습은 절대 나올 수 없다. 양상문 감독도 스프링 캠프 때부터 그의 성장하는 모습을 칭찬하지 않았던가.

그는 올 시즌 6차례 등판해 KBO 투수 중 가장 많은 40이닝을 소화했다. 평균자책점도 2.78로 양현종, 이상화, 린드블럼과 함께 3점 이하 ERA를 자랑하는 4인방이다. 리그에서 다섯 번의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며 이 분야 순위도 1위다. 올 시즌 그를 ‘갓 소사’라고 부르는데, ‘갓’이라는 칭호를 붙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26일 시합은 9회에 뒤집혀서는 안 됐다. 지난해 넥센 시절 4점대 ERA로도 소사는 승률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속된 말로 히어로즈 시절, 소사는 등판하면 이겼다. 소사가 잘 던지기도 했지만, 히어로즈 타선이 워낙 막강해 소사가 4, 5점을 내줘도 이길 수 있었다. 그런 팀에 있다가 시즌 초반 득점권 최악의 변비타선으로 고전하는 트윈스로 이적했으니 소사의 마음이 어떨지는 충분히 상상이 간다. 하지만 그는 안정을 잃지 않고 7회까지 든든히 마운드를 지켰다. 그의 침착함이 강력한 구위만큼 고마웠던 이유였다.

트윈스는 26일 시합을 잊어서는 안 된다. 9회 이동현이 나성범을 삼진 처리하면서 경기를 끝내는 순간은 사실 트윈스가 정말 ‘지옥의 문턱’에서 돌아온 순간이었다. 소사의 멘탈 붕괴, 연승의 불가능 확인, 믿었던 불펜에 대한 불신, 봉중근에 대한 비난 등 이날 시합을 잃었으면 함께 감내해야 했던 수많은 악재들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인다.

잘 싸웠다, 트윈스! 그래도 그 어려움을 이겨내 주어 고마울 따름이다!

*수은중독: 1982년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이종도의 만루 홈런을 보고 청룡 팬이 된 33년 골수 LG 트윈스 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두 자녀를 어여쁜 엘린이로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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