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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첫 시각장애인대회 D-3] 어버이날, 이런 아버지도 있습니다
뉴스| 2015-05-07 13:08
■ 64세 시각 장애인 국가대표의 세계대회 도전기, ‘대한민국, 그리고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난 4일 이천 장애인체육종합훈련원. 2015서울세계시각장애인경기대회에 출전할 역도 국가대표팀의 최종기록 평가회가 열렸다. 실제 대회와 똑같은 환경을 조성하고 선수들의 기록을 측정해 지난 2주간의 합숙훈련 성과를 점검하는 시간이었다.

실내 테니스장 안에 임시로 마련된 역도훈련장은 대회를 일주일여 앞두고 결의에 찬 시각장애인 국가대표들의 기합소리로 가득했다. 다섯 명의 대표선수 중, 유독 한 명이 눈에 띄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老)선수 하나가 벤치에 누워 바벨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희끗한 머리에 주름진 얼굴이 20대 치고도 좋은 근육질의 몸매와 대비됐다. 이어지는 인상적인 장면 하나.

“문광식 씨, 팔을 끝까지 쭉 뻗으세요!”
“네, 알겠습니다!”

쉰 언저리의 나이인 역도팀 박근영 감독이 지도할 때 경어로 답하는 이 선수, 바로 64세 시각장애인 역도 국가대표 문광식 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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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역도국가대표 문광식. 포즈를 취해달라고 하자 체육관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화이팅을 외친 그다. 뒤에 '여러분은 대한민국을 대표합니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 마흔 여덟, 갑자기 찾아온 시련

문 씨는 모 지상파 방송사에서 일하던 전기 기사였다.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둔 평범한 가장이기도 했다. 시련은 마흔 여덟에 찾아왔다. 어느 날부턴가 눈이 침침했는데, 처음엔 나이 탓인가 싶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렇게 치부하기엔 지나칠 정도로 앞이 보이지 않았다. 병원에선 원인을 모르겠다고 했다. 유전적인 질병도 아니었고, 여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증상이 아니었다. 그렇게 문 씨는 3년만에 전맹이 됐다(시각장애 1급).

눈만 캄캄해진 게 아니었다. 당장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없었고, 가장만 바라보고 있을 가족들이 생각나 앞길이 막막했다. 이대로라면 자식들에게 아버지로서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고 짐만 되겠다 싶었다. 결국 문 씨는 식구들과의 연락을 끊기로 결심한다. 벌써 15년 전의 일이다.

당시 스물 두 살, 스무 살이던 아들, 딸은 괜찮다고 했지만 문 씨의 고집은 매몰차다 싶을 정도로 완고했다. 역시 가족 곁을 떠나지 말라던 아내에게도 이혼을 요구했다. 지켜 주지는 못할망정, 앞이 보이지 않아 가족에게 매달리게 될 자신의 모습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합의이혼 도장을 찍고 다시는 가족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에도 연락이 계속 왔지만, 받지 않았다.

■ 역도는 제 2의 인생 열어준 선물…이제 태극마크 달고 전 세계 앞에 우뚝 선다

혼자의 삶을 선택한 문 씨에게 더 이상 희망은 없었다. 앞이 보이지 않게 된 자신이 뭘 할 수 있겠냐는 생각에 자살 시도만 수차례 했다. 그 때 닫혀 있던 문 씨의 마음을 열어준 게 바로 스포츠였다. 앞이 보이던 때부터 워낙 스태미나가 넘치고 운동을 좋아하던 문 씨에게 경기도 장애인전국체전 선발전이 열린다는 소식은 한 줄기 빛이 됐다.

처음엔 육상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가이드와의 호흡이 중요한 시각장애인 육상은 성격에 맞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그 때 애써 준 가이드에게 고마움을 느끼지만, 문 씨는 다른 이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운동을 하고 싶었다. 본인은 손사래를 치지만, 박근영 감독의 전언에 따르면 문 씨가 워낙 잘 달려 가이드가 따라잡지 못할 정도였다는 후문도 있다.

그래서 선택한 게 역도였다. 집 근처 다니던 헬스클럽에서 역도를 처음 접한 문 씨는 순간적으로 폭발력을 발휘하는 역도 만의 쾌감에 매료됐다. 힘든 근력운동을 거쳐 더 무거운 중량을 들어 올리는 데 성공하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성취감이 들었다. 혹 실패하더라도 그 책임이 오롯이 자신에게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역도를 만나고 난 뒤 문 씨는 비로소 좌절했던 지난 날을 딛고, 다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앞이)보이지 않아서 더 열심히 듣고 배웠습니다. 나름 배운 대로 자세를 잡아봐도 보이는 사람들 눈에는 균형이 맞지 않은 자세일 때가 많죠. 지적받으면 계속 고쳐 잡고, 힘든 과정의 반복이었지만 그래도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어요. 항상 ‘이건 해야겠다, 내가 해내야겠다’는 마음이 들더군요.”

적지 않은 나이에 쉬지 않고 근력을 키우는 운동이 녹록치만은 않았지만, 힘들수록 이를 악물고 버틴 문 씨다. 그 결과 2008년 경기도 대표로 첫 출전한 전국체전에서 동메달을 땄고, 이듬 해엔 58세의 나이에 3관왕(스쿼트, 데드리프트, 종합)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에도 매년 메달권에 이름을 올린 문 씨는 지난 4월 열린 2015서울세계시각장애인경기대회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해 당당히 태극마크를 달았다.

“국가대표 발탁 이후 2주간 합숙훈련을 했는데, 이게 헬스클럽에서 배우던 것과는 또 다르더라고요. 감독님, 코치님 지시를 따라서 해보니까 기본자세부터 트레이닝 방법 하나 하나가 ‘이게 진짜구나’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정말 힘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많이 배웠죠. 운동은 저에게 제2의 인생을 열어줬습니다. 제가 숨을 쉬고 힘이 닿는 한, 운동은 계속 할 겁니다. 이 순간 배운 것 잊지 않고 훗날 저 같은 사람이 주위에 나타나면 같이 운동하며 가르칠 수 있으면 가르쳐도 보고, 도움을 주고 싶어요.”

64세라는 나이가 운동할 때 걸림돌이 되지는 않느냐는 우문에는 “시각장애를 가진 저도 할 수 있는 게 있고, 할 수 있다는 게 좋아서 하다 보니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아요. 그저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니까 열심히 할 뿐입니다. 이길 수 있을지, 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요”라는 현답을 내놨다. ‘이길지는 모르겠지만 이겨야 하니까 열심히 한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이번 대회 각오로는 “어떤 성과를 기대하기 보단 끝까지 열심히 대회를 마치는 게 목표”라며 “전 세계 보이는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에도 이렇게 나이 먹고 장애가 있어도 열심히 사는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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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리프트 훈련에 열중하고 있는 문광식.


■ 얘들아, 아빠가 이 나이 먹고 이렇게 해냈다

앞에서도 밝혔듯 이번 대회 시각장애인 역도팀의 박근영 감독은 문 씨보다 15살 정도 어리다. 25년 지도자 생활만 놓고 보면 문 씨 역시 다 똑같은 제자 중 한 명이겠지만, 한편으론 인생 선배인 그의 근성과 열정에 박 감독도 배우는 점이 많단다. 특히 합숙훈련 기간 동안 동고동락하면서 문 씨의 인생 스토리를 접하게 된 박 감독은 나이 많은 제자에게 더욱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고민 끝에 박 감독은 문 씨에게 이번 대회에 그동안 연락을 끊고 지냈던 자녀들을 초청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15년이 지난 만큼 이제는 만날 때도 됐고, 그 무대가 국가대표로서의 모습을 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는 세계선수권이라는 큰 대회라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조심스레 문 씨의 생각을 물었다. 처음에는 말끝을 흐리더니, 그저 웃고 말았다. 그리고 한참의 정적 끝에 그는 말문을 열었다.

“연락을 하면 할 수는 있어요. 아마 지금쯤 시집, 장가는 다 갔을 텐데…. 하지만 첫째로, (자식들에게)짐이 되고 싶지 않아요. 이제까지 안 알리고 살았는데, 일단 연락이 오가고 왕래가 되면 짐이 될 게 뻔하죠. 지금 나 혼자서도 잘 살아갈 수 있는 만큼,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네요.”

‘역시, 그랬구나’하는 생각을 할 때쯤 말이 이어졌다. “그저 이번 대회 마치고 사진 한 장 전해 주면 좋겠어요. (이번에)국가대표 옷을 처음 입어봤습니다. 다시는 입어볼 수도 없다는 걸 알고 있고요. 우스운 말이지만, 가보로 애들한테 물려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남길 수 있는 사진과 함께요. 애들 만나는 건 나중에, 혹 나중에 마음이 바뀌어 만나보게 된다면 사진 같이 보며 ‘야 너희 아빠가 이 나이에 이렇게 했다’, 이렇게 말해줄 거예요.”

사진을 찍어줄 사람을 아직 못 구했다는 말에 기자는 꼭 사진을 남겨주겠다고 약속했다. 점자 명함을 준비하지 못해 대회 때 드리겠다고 했더니, (점자 명함이 아니어도)괜찮다며 그냥 달라고 했다. “사진 좀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는 말과 함께. 기자의 명함을 손에 꼭 쥐고 코치의 도움을 받아 훈련장을 빠져나가는 문 씨의 뒷모습에서, ‘64세 시각장애인 역도 국가대표’란 말은 지워지고 ‘아버지’란 이름이 느껴졌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국가대표 문광식의 모습은 오는 5월 12일, 서울 올림픽공원 내 우리금융 아트홀 올림픽 역도경기장에서 열리는 역도 남자 67.5kg급 경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헤럴드스포츠=나혜인 기자 @nahyein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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