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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정일도 극찬한 19세 소년복서 김우현, '제2의 장정구' 꿈꾼다
뉴스| 2015-05-29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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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한일 프로복싱 정기전'에서 양성영(왼쪽)을 상대로 맹공을 퍼붓고 있는 김우현. 사진=권력봉 기자

파죽지세의 소년복서, 변정일도 극찬
침체된 한국 복싱을 살릴 기대주가 등장했다. 중1때 생활체육으로 복싱에 입문한 뒤 울산지역 최고의 유망주로 부상,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고등학교에 진학하자마자 아마추어 신인무대 평정, 18세 프로 데뷔 후 1년 만에 5전 5승(1KO), KPBF(한국프로복싱연맹) 플라이급 한국챔피언… 그야말로 파죽지세의 이력을 갖고 있는 이 무서운 신예는 바로 울산의 19세 소년복서 김우현(울산 삼산고 3)이다. 대부분의 아마추어 복싱선수들이 늦어도 중학교 때 선수생활을 시작하고, 프로 전향은 성인이 되고 아마 무대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낸 뒤에 하는 게 일반적이라는 걸 감안하면 김우현의 성장세는 대단하다. 게다가 이제 프로 2년차니, 앞으로 써내려갈 것이 훨씬 많음은 당연지사다.

눈길을 끄는 건 전적뿐이 아니다. 김우현의 경기를 지켜본 복싱인들은 하나같이 그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한다.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변정일 전 WBC 밴텀급 세계챔피언도 “신인답지 않은 담대함이 엿보인다. 잘 키우면 대성할 것”이라고 김우현의 재능을 알아봤다.

김우현의 키는 161cm에 불과하다. 이제껏 만났던 상대 모두가 김우현보다 컸다. 리치도 짧고 여러모로 기가 죽을 법도 한데, 링 위에 선 상대는 다 똑같단다. 그저 달려들어 쓰러뜨려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작년 4월 KPBF(한국프로복싱연맹) 인천 대회 때 맞붙은 스물다섯 살 박재균은 180cm였다. 김우현은 자신보다 20cm나 큰 상대를 4라운드 만에 거꾸러뜨렸다. 첫 KO승이었다. 망설임 없이 달려들어 머리 하나 더 큰 상대의 얼굴에 펀치를 날렸다. 실제로 김우현의 경기는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을 연상시킨다.

대부분의 경량급 선수들이 그렇듯 김우현 역시 힘보다는 테크닉으로 승부하는 복서다. 하지만 김우현은 좀 특별하다. 우선 타고난 센스가 몸에 배어 있다. 여타 선수들보다 동체시력이 좋고, 순발력이 뛰어나다. 이는 빠르고 유연한 상체 테크닉과 만나 효율적인 방어와 타격을 모두 가능케 한다.

더욱 재미있는 건 19세답지 않은 성숙한 멘탈리티다. 김우현을 복싱의 길로 이끈 울산 B&A 복싱클럽 이광은 관장은 “(김)우현이가 프로 데뷔후 5전 5승, 항상 이겼지만 시합이 끝나고 표정이 좋았던 적은 단 한번도 없다”며 “항상 뭐가 부족했는지 묻고, 자신을 다그친다. 내가 봤을 때 압도한 시합이었는데도 그랬다. 그만큼 상대를 넘어 자기한테 승부욕이 있는 것”이라고 기특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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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어린 김우현에게 이광은 관장(오른쪽)은 때로는 스승이자, 때로는 형이자, 때로는 아버지다. 두 사람의 오붓한 한 때.

복싱 이끌어준 관장님은 운명의 동반자…“복싱 안했으면 저, 지금 어디서 뭐 하고 있을까요”
이 관장은 김우현을 복싱의 길로 이끈 사람이다. 사춘기 때 잠시 방황할 뻔한 김우현을 옆에서 묵묵히 엇나가지 않게 잡아줬다. 보호자 역할을 한 셈이다. 김우현이 일찌감치 아마추어 선수생활을 접고, 오히려 더 가시밭길일지도 모를 프로생활을 선택한 것 역시 이 관장과 같이 운동하고 싶어서가 크다.

“중학교 때 사고를 많이 쳤어요. 관장님께서 항상 ‘체육관 밖에서 주먹 쓰지 마라’고 말씀하셨는데, 키도 작고 왜소한 저를 얕보는 친구들이 많아 투덕거리는 일이 잦았죠. 어느 해 추석인가, 저는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명절 이런 거 잘 모르고 살았는데 아무튼 그 무렵에도 친구들과 싸우고 기분이 우울할 때였어요. 혼자 걷다가 체육관 앞을 지나가는데 체육관에 불이 켜져있더라고요. 누군가 해서 가보니 관장님이 혼자 계시는 거예요. 그날 밤새 관장님께 고민도 털어놓고, 많은 얘기를 나눴죠. 알고 보니 관장님은 자라온 환경 등 저와 비슷한 점이 많았어요. ‘체육관비 안 내도 되니까 나랑 먹고 자고 같이 하면서 열심히 운동해보자’고 말씀하시는데, 마음이 울리더라고요. 항상 감사하죠. 정말 운명 같은 인연이라고 생각해요.”

동반자. 어떤 일을 할 때 서로 짝이 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지만, 사실 속뜻은 더 깊다. 인생의 동반자를 꼽으라면 술술 이름을 댈 수 있는 사람 몇 없을 거다. 만약 있다면 복 받은 사람이고, 부러워할 만하다. 그런데 김우현과 이 관장 사이엔 왠지 동반자라는 말이 어울린다. 그런 면에서 이제 막 프로복서로서 첫걸음을 떼고 있는 열아홉 살 김우현은 복 받은 소년이다. 이 관장은 “제 힘이 닿는 한 정말 열심히 뒷바라지해서 한국을 넘어 동양챔피언, 세계챔피언까지 (김)우현이와 같이 달려볼 생각”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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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KPBF(한국프로복싱연맹) 플라이급 한국챔피언 결정전 승리 직후의 김우현(가운데).

아스팔트 사이에서도 싹은 피어났다
지난해 1월 프로 데뷔전을 치른 김우현은 그해 10월, 네 번째 시합 만에 KPBF(한국프로복싱연맹) 플라이급 한국챔피언에 도전, 타이틀을 획득했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 한국챔피언 타이틀의 위상은 예전보다 적잖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복싱 팬이라면 알 만한 사람들은 알 것이다. 현재 국내복싱단체는 KBC(한국권투위원회), 한국프로복싱연맹(KPBF), 한국권투연맹(KBF), 한국권투협회(KBA) 등 4개로 나눠져 있다. 복싱인들 사이에 해결 안 된 복잡한 이해관계가 많다. 가뜩이나 선수는 부족한데 여러 갈래로 헤쳐모여 있으니, 챔피언의 위상은 떨어지고 세계챔피언 역시 쉽게 나오기 힘들다. 김우현 역시 원래 플라이급이지만 같은 급에 마땅한 선수가 없어 슈퍼플라이급, 밴텀급까지 왔다갔다하며 경기를 치르고 있다. 이는 비단 김우현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실제로 김우현은 KPBF 한국챔피언 타이틀 획득 이후, IBF(국제복싱연맹) 유스 플라이급 챔피언(만 24세 이하)에 도전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경기가 잡혔다가 무산된 것만 벌써 수차례다. 물론 이유는 ‘어른들만’ 안다. 올 3월에도 필리핀 챔피언 리네리오 아리잘라(14전12승(5KO)1무1패)와의 대결이 성사 직전까지 갔다가 고꾸라졌다.

올 초 소속단체를 KPBF(한국프로복싱협회)에서 KBF(한국권투연맹)으로 옮긴 김우현은 지난 23일 ‘제6회 한일프로복싱 정기전’ 오픈 경기에서 양성영을 압도하며 3-0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뒀다. 이 경기는 밴텀급으로 체급을 올려 출전한 경기였다. KBF 데뷔전을 무사히 마친 김우현은 우선 7월 예정된 울산 대회 등 국내 무대에서 경험을 더 쌓을 예정이다. KBF 밴텀급에는 2015 최우수신인왕 배요한(7전5승(1KO)1무1패)과 주혁탁(7전3승1무3패) 등 숨은 강자들이 버티고 있다. 그 후에는 IBF 유스 타이틀에 다시 도전할 계획이다.

김우현의 시선도 이미 세계를 향해 있다. 불세출의 스타 장정구 전 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52)을 존경한다는 김우현은 “우선 국내에서 하는 시합은 무조건 다 이기고 싶다”며 “아직 갈길이 멀다는 걸 알지만, 항상 부족한 부분을 다듬고 잘 준비해서 언젠가 당당히 세계무대에 도전장을 내밀 것”이라고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복싱이 황금기를 되찾는 데 있어 스타는 반드시 필요하다. 일단 재목이 없는 건 아닌 듯싶다. 아스팔트 사이에서도 새싹은 피어났다. 비옥토로 옮기고, 물도 잘 줘서 울창한 나무로 키우는 건 어른들의 몫이다. [헤럴드스포츠=나혜인 기자 @nahyein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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