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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meover의 편파야구 거침없는 다이노스] 그들이 ‘용병’이 아닌 ‘우리 선수'인 이유
뉴스| 2015-07-10 09:55
9일 경기결과: kt 위즈 0-11 NC 다이노스

17년 전, 한국야구에 큰 파도가 일었다. 한국인 또는 재일교포가 전부였던 그라운드에 우리와 다른 피부색과 눈동자를 가진 외국인 선수들이 들어온 것이다. 이들의 등장은 한국야구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다. 조 스트롱과 스캇 쿨바는 현대의 뒷문과 중심타선을 지키며 현대왕조의 서막을 알리는 정규시즌 첫 우승에 일조했다. 42홈런을 터트린 타이론 우즈도 홈런왕과 MVP를 수상하며 꼴찌 OB(현 두산)를 4위 팀으로 바꿨다. 이들은 소속팀 팬들에게 구세주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들을 지칭하는 용어는 구세주 이미지와 달랐다. 용병. 돈을 주어 일하게 하는 병사를 뜻한다. 스포츠에 적용하면 필요에 의해 돈으로 맺어진 관계쯤 되겠다. 그럴 만도 하다. 초창기 외국인 선수 영입 기준은 오로지 성적이었다. 그러다보니 좋은 실력과 정반대되는 인성을 가진 선수가 몇몇 있었다. 성적 보너스를 위해 개인성적 향상에 급급한 선수도 있었고, 수술하러 미국에 갔다가 귀국일정을 7번이나 미룬 양치기 선수(?)도 있었다. 성격 급한 팀도 ‘용병’이란 단어를 고착화하는 데 일조했다. 새로운 나라와 환경에 적응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성적만을 바랐다. 한국야구를 무시하는 선수라도 성적을 위해 그를 상전처럼 모시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팀과 외국인 선수는 서로의 관계를 ‘Foreigner player(외국인 선수)’가 아닌 ‘Mercenary(용병)’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들어 프로야구에 용병 보다 외국인 선수의 비율이 높아졌다. 팀들이 스카우트 시 실력만큼 인성도 중요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올림픽·WBC등 높아진 한국야구의 위상으로 더욱 높은 수준의 선수들이 KBO리그에 발을 내딛었다. 그 결과 뛰어난 적응력과 좋은 실력으로 전국구 인기를 누린 ‘한국형 외국인 선수’가 등장했다. 더스틴 니퍼트는 5년째 두산 에이스 역할을 도맡으며 ‘니느님(니퍼트+하느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롯데와 한화에서 뛰었던 카림 가르시아도 퇴근길 지하철에서 팬들에게 둘러싸인 채 강제로 응원가를 듣는 영광(?)을 누렸다. 외국인 선수는 물론 팬들도 서로를 ‘외국인 선수’가 아니라 ‘우리 선수’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NC는 처음부터 ‘우리 선수’를 데려왔다. 제일 먼저 강조한 것은 인성. 이태일 대표는 스카우트들에게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인성이 바르지 못한 선수는 절대 뽑지 마라. NC에 들어오고, NC에서 뛰었던 선수는 사람이 됐다란 평판을 들어야 한다”며 ‘사람됨’을 강조했다. 거기에 세이버 매트릭스까지 적극 활용하며 ‘실력’도 놓치지 않았다. 앞과 뒤가 다른 빼어난 연기력으로 모두를 속였던 아담을 제외하곤 모두 팬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올 시즌은 두 에릭이 경기장 안팎에서 우리를 웃음 짓게 만들고 있다.

‘한국이 내 마지막 무대!’ 해커의 뜻 깊은 국내무대 첫 10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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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에이스' 해커가 3년만에 '마지막' 도전의 '첫' 결실을 거뒀다. [출처=NC다이노스 공식홈페이지]


에릭 해커는 비장한 각오로 미국을 떠났다. “여기가 내 야구의 마지막이다. 한국에서 뿌리를 내리겠다”라고 말할 정도로 한국 무대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딸도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낳을 정도였다. 훈련에 있어서도 국내선수 못지않게 성실하고, 팬들에게도 다정다감한 모습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해커는 인성과 실력을 갖췄지만 복은 없었다. 2013년 27경기에 등판해 178⅓이닝을 책임지며 완투를 3번(리그 1위)이나 했다. 평균자책점도 3.63(리그 9위)으로 최정상급이었다. 하지만 그가 얻은 승리는 규정이닝 투수 중 제일 적은 4승. 원인은 허약한 타격이었다. 평균 3.63점을 내주는 투수가 득점지원을 2.5점밖에 받지 못하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에릭은 오랫동안 마운드를 지켜주며 불펜의 어깨를 가볍게 해줬다.

지난해는 정말 지지리도 운이 없었다. 세부성적은 전해와 비슷했지만 나아진 타선지원으로 전반기에만 8승을 거뒀다. 거기서 끝이었다. 6월 22일 이후 17경기 동안 1승도 못 올린 채 8연패를 당했다. 피칭이 안 좋았던 것도 아니다. 그동안 QS+(7이닝 이상 3실점 이하)를 3번이나 거뒀지만 타선이 도와주지 않거나, 불펜이 승리를 날려버렸다. 보는 사람마저 안쓰러울 정도의 불운이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해커는 달라졌다. 먼저 이름(정확히 말하면 등록명)부터 바꿨다. 그동안 써온 에릭 대신 해커를 선택했다. 불운을 떨쳐내고 상대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피칭스타일도 자기 혼자 처리하려는 피칭 대신 동료들을 믿는 피칭을 시작했다. 효과가 금방 드러났다. 16경기 만에 9승을 쓸어 담으며 개인 통산 최다승 기록을 바꿨다. 부진을 겪으며 팀을 떠난 찰리 대신 ‘에이스’ 자리에도 올랐다. 거기에 평균 6이닝 이상을 꾸준히 던지며 과부하 경고등이 켜진 불펜에 큰 힘이 되었다.

해커에게 9일 경기는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국내 무대 첫 두 자리 승수가 걸려있었기 때문. 거기에 최근 6경기에서 1승 5패로 하락세에 있는 팀 분위기를 끌어올려야 하는 부담감도 있었다. 전날 경기가 우천 취소되며 어긋나버린 컨디션을 재조정해야하는 악조건도 있었다.

‘에이스’ 해커는 이날 ‘팀’으로서 10승을 올렸다. 최근 타격감이 물오른 kt타자들이 매 이닝 출루하며 해커를 압박했다. 해커도 구속이 140km초반에 머물고 볼넷과 몸에 맞는 공을 두 개씩 허용하는 등 썩 좋은 컨디션이 아니었다. 흔들리는 해커를 구한 건 야수들이었다. 3회 무사 2루에선 지석훈이 좌익선상 타구를 몸을 날리며 막아내 타자주자를 잡아냈다. 6회 무사 1루에선 이종욱이 키 넘어갈 뻔 한 큰 타구를 점프 캐치로 막아냈다. 백미는 5회 무사만루. 손시헌은 장성우의 안타성 타구를 멋진 다이빙 캐치로 걷어냈다. 해커도 다음타자를 투수 병살타로 매조 지으며 최악의 위기를 최고의 결과로 벗어났다.

결국 해커는 6이닝 7피안타 무실점 6탈삼진으로 제 역할을 다했다. 동료들도 호수비와 대량득점으로 ‘에이스’의 승리를 지원했다. 이날의 승리는 해커가 ‘마지막’ 각오하고 덤빈 무대에서 거둔 귀한 ‘첫’ 10승이었다. 또한 지난 3년 동안 믿고 기다려준 서로가 힘을 합쳐 만들어낸 '팀 승리'였다.

‘그라운드 안에서도, 밖에서도 멋진 남자’ 테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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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테임즈가 '용병'은 몰론 '외국인 선수'로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우리선수'다.출처=NC다이노스 공식홈페이지]


에릭 테임즈는 처음부터 강렬했다. 허벅지만한 팔뚝과 엄청난 배트 스피드라는 외적인 모습도 있었지만 더욱 인상 깊었던 건 그의 성격이다. 해외리그에 처음 진출 하는 선수가 팀 사정을 고려해 포지션을 바꾸고, 코치가 만류할 정도로 훈련에 매진했다. 한 경기도 뛰지 않았지만 ‘팀’을 생각하는 마음이 프랜차이즈 스타 못지않았다.

강렬한 예감은 곧 현실이 됐다. 첫해 타율, 득점, 홈런, 타점 부문에서 모두 10위권 이내에 들었다. 나성범, 이호준과 함께 ‘나이테 트리오’를 이루며 첫 가을야구에 일등 공신이 되었다. 공격과 수비에서 항상 전력질주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환호받았다. 적응력도 뛰어났다. 홈런을 칠 때마다 김태군과 수염 세리머니로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경기장 밖에서도 팬들과 친근한 모습을 보여줬다. 팬들 사이에선 ‘복덩이’ 테임즈를 다른 팀에 뺏기지 않기 위해 여권이라도 훔쳐야 하는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올 정도였다.

팬들의 염원이 닿았는지 테임즈는 다행히 NC에 남았고, 더욱 무서운 선수로 변했다. 그가 지닌 타격 재능에 경험을 더하자 엄청난 기록이 완성됐다. 지난 4월 9일 광주 KIA전에서 2루타-홈런-안타-3루타로 사이클링 히트(히트 포 더 사이클)을 완성했다. KBO리그 통산 17번째이자 팀 최초 기록. 지난 7월 3일 대전 한화전에선 도루를 추가하며 20홈런-20도루를 썼다. 이 역시 NC구단 최초기록. 테임즈는 30-30은 물론 한국에서 전무했던 40-40까지도 노리고 있다. 이 정도면 NC는 물론 KBO리그 역사에 남을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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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테임즈는 경기장 안팎에서 '역대급' 선수로 남을 것이다. [출처=에릭 테임즈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한국 2년차' 테임즈의 인성과 적응력은 경기장 밖에서도 진화(?)했다. SNS을 통해 꾸준히 팬과 소통해온 테임즈는 지난 6월부터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다. 지난 6일 페이지를 통해 특별한 이벤트 소식을 알렸다. 개인적으로 후원하는 보육원 아이들을 위해 7월 16일 모금행사파티를 열 것이며, 25일엔 아이들을 두산과의 홈경기에 데리고 간다는 내용이다. 구단에서도 전혀 몰랐을 정도로 철저히 테임즈가 홀로 기획한 이벤트다. 정작 본인은 팬들께 받은 사랑을 돌려주는 건 당연한 일이라지만 우리에겐 너무나 낯선, 그리고 감동스러운 이벤트가 아닐 수 없다(이렇게 경기장 안팎에서 오랫동안 모범을 보인 선수를 '불안한 고용' 탓에 쉽게 놓칠 수 없다. 국내에서 보다 안정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외국인 선수와 다년 계약을 할 수 있는 조항을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테임즈는 9일 경기에서도 여전히 멋진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 5월 28일, 세계에서도 드문 사이클링 홈런을 포기했던 것처럼 팀을 위해 또 대기록을 포기했다. 1회 홈런-3회 안타-7회 2루타로 시즌 2번째 사이클링 기록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교체를 받아들인 것. 당해 성적이 이듬해 생존을 결정짓는 외국인 선수에겐 민감한 사항. 하지만 이일에 대해선 본인도, 팬들도 놀랍지 않다. 왜냐하면 테임즈는 이미 외국인 선수가 아니라 ‘우리 선수’이기 때문이다.

*Notimeover: 야구를 인생의 지표로 삼으며 전국을 제집처럼 돌아다는 혈기왕성한 야구쟁이. 사연 많은 선수들이 그려내는 패기 넘치는 야구에 반해 갈매기 생활을 청산하고 공룡군단에 몸과 마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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