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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택 관전평] 프로팀이 대학에 자꾸 잡아먹혀도 되나요?
뉴스| 2015-08-21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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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가 21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15 KCC 프로-아마 최강전' 준결승에서 모비스를 76-73으로 잡고 결승에 올랐다.

2015 KCC 프로-아마 최강전 준결승 : 고려대학교 76-73 울산 모비스

고려대학교가 두 대회 연속 프로-아마 최강전 준결승에서 KBL 최강 모비스를 격침시켰습니다. 모비스는 전날 연세대학교와의 8강전에서 전반 15점차 열세를 극복하고 역전승을 거둔 바 있는데요. 지켜보신 분들께선 ‘역시 프로는 프로구나’ 하셨을 겁니다. 혹 이날 고려대의 선전을 보면서도 내심 ‘결국은 모비스가 이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셨을지도 모르겠네요.

모비스를 자그마치 ‘수비’로 잡아낸 고려대
이번 대회 대학 팀들의 지역방어를 보는 맛이 쏠쏠합니다. ‘최고의 수비는 결국 대인방어’라는 말이 있지만 전술적 요소가 가미된 존 디펜스는 승부처에서 지도자에겐 '필살기'이자, 팬 여러분에겐 농구를 보는 또다른 재미이기도 하죠. 유독 이번 대회에서 지역방어는 승리를 부르는 ‘아이콘’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지난 18일 2-3 지역방어 덕을 좀 보며 ‘호화 군단’ SK를 쓰러뜨린 연세대학교는 이틀 뒤 KBL 최고의 ‘시스템 농구’를 자랑하는 모비스와 ‘지역방어 배틀’을 벌이다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이날, ‘거함’ 모비스를 쓰러뜨린 것 역시 고려대학교의 변칙적인 존 디펜스였습니다.

1쿼터에 20-20, 팽팽한 승부를 벌인 양팀은 2쿼터부터 경기 흐름을 ‘주거니받거니’ 했습니다. 2쿼터 먼저 분위기를 주도하고 나선 모비스 뒤에는 역시 모비스만의 독특한 지역방어가 있었습니다. 마치 ‘영업비밀’과도 같은 모비스의 변칙 수비는 최근 수년간 ‘모비스 왕조’의 거푸집 역할을 했죠.

3쿼터 양상은 또 정반대였습니다. 천하의 모비스가 고려대의 잇따른 지역방어를 뚫어내지 못하는 낯선 모습이 연출됐죠. 고려대는 처음엔 3-2 존 디펜스를 꺼내들더니 이내 매치업의 요소를 가미한 2-3 변칙수비로 승기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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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2015 KCC 프로-아마 최강전' 준결승이 열렸다. 4쿼터 고려대 이종현이 덩크슛을 성공시키고 있다. 이종현은 이날 15점 8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승리를 이끌었다.

‘긴팔’ 이종현의 위력

연이틀 모비스는 대학농구를 주름잡는 연세대와 고려대를 상대했습니다. 재미있는 건 모비스가 전날 연세대의 지역방어는 곧잘 공략한 반면, 이날 고려대에겐 그렇지 못했다는 겁니다. 물론 들쑥날쑥했던 모비스의 외곽 화력이나 고려대 수비의 변칙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고려대의 존 디펜스가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종현의 존재감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종현은 참 장점이 많은 선수입니다. 현재 국내에 내로라하는 빅맨들과 견주어도 어디 하나쯤은 꼭 비교우위를 점하는 부분이 있을 정도로 좋은 기량을 가졌고, 나이와 반비례하는 발전가능성 또한 무궁무진하죠. 높이도 높이지만 이 선수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윙스팬이 길다는 데 있습니다. 팔 길이가 길면 단순히 상대 마크맨을 1대1로 수비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이날처럼 전술적인 수비형태에서도 팀 전체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로테이션 수비나 지역방어시 상대 외곽을 견제하는 데 용이하기 때문이죠.

결국 후반 함지훈이 파울트러블로 코트를 비우면서 모비스 골밑은 ‘고려대 천하’가 됐습니다. 두 대회 연속 패배라는 수모를 피하고 싶었던 ‘형님’ 모비스는 경기종료 직전까지 끈질기게 달라붙어봤지만, 끝내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습니다. 22일 결승에서 만날 오리온스 역시 이종현에 대한 대비법을 연구하고 나와야 고려대의 대회 2연패를 저지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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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아마의 대결 구도를 일러스트로 표현한 이번 대회 포스터. 중심에 21일 실제로 맞붙은 양동근과 이종현이 그려진 게 인상적이다.

프로팀, 대학에 잡아먹혀도 되는가?

2012년 첫 대회를 시작으로 올해로 3회째를 맞는 프로-아마 최강전은 농구팬 여러분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듯합니다. 특히 대학생들이 프로 ‘형님’들을 잡는 결과가 속속 나오면서 그 재미는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외국인선수가 없다고 프로가 대학에게 지는 게 말이 되느냐’라는 지적도 들립니다. 하지만 프로팀이 대학팀에 패하는 일이 굳이 비난받아야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프로-아마 최강전에서 대학을 상대하는 프로팀은 프로농구 정규시즌 때와는 전혀 다른 팀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전혀 다른 팀’의 의미는 단순히 외국인선수가 없어 ‘전력이 약해지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얘깁니다.

프로 지도자들은 시즌을 준비하며 팀의 운영 방향과 전술을 구상할 때 외국인선수의 활용도를 계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단지 그들의 실력이 국내선수들보다 뛰어나서가 아니라, 어차피 그들이 가진 장점을 활용해야 하는 지도자 입장에서는 120%를 끌어낼 수 있는 ‘적재적소’를 찾아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팀이 리그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판이 어느 정도 그려진 상황에서, ‘프로-아마 최강전’에 출전해 대학과 맞붙게 되면 프로팀은 아예 그림을 새로 그리고 나와야 합니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아직 컨디션도 제대로 올라오지 않은 상황에서, 비시즌 동안 준비해온 판을 잠시 잊고 새로운 방식으로 경기를 운영해야 하는 프로팀이 조직력 등 대학팀에 뒤쳐질 수 있는 이유입니다.

대학팀이 프로팀을 잡아먹는 현상에는 분명 극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마치 ‘언더독의 반란’과도 같은 것이겠죠. ‘프로-아마 최강전’에서만 볼 수 있는 이런 현상은 예전같지 않은 농구 인기를 조금이나마 되살릴 수 있는 흥행 요소임에 분명합니다. 22일 결승전까지 농구팬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전 중앙대 감독] (정리=나혜인 기자 @nahyein8)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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