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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T캡스에서 만난 사람]은퇴후 방송 해설 데뷔하는 서희경 프로
뉴스| 2015-11-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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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지던츠컵에 다녀온 모자를 쓰고 있었다. 챙에 사인은 필 미켈슨. (사진=채승훈 기자)


스무살이던 2006년에 프로에 데뷔한 서희경이 10년간의 프로 생활을 마무리하고 지난 3일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 그래도 이제 스물아홉! 결혼도 하고 지난 해 아이(국도현)도 낳아 돌을 지냈지만 아직 한참 젊은 나이에 은퇴라니!

본인 역시 아직은 ‘선수’라는 느낌이 강하지 ‘은퇴’를 실감하지는 못하겠다고 했다. 팬의 허탈감이나 놀라움, 혹은 새로운 인생을 축하하고 싶은 기원도 아직 정리되지 못했을 무렵 6일 시작된 제 12회 ADT캡스 챔피언십에 객원 해설위원으로 참여하고 팬사인회를 가진다고 했다. ‘필드의 패션 모델’이란 별명으로 불린 서희경은 2010년 미LPGA투어 기아 클래식에서 우승했으며, 국내에서는 2008년 6승, 2009년 5승으로 KLPGA 통산 11승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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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전날인 5일 점검 라운드를 하는 방송진. 왼쪽부터 고덕호 해설위원, 서희경, 박시현 프로, 임한섭 아나운서.


대회 전날인 5일에는 선수시절 스승이던 고덕호 SBS골프 해설위원, 임한섭 캐스터 등과 함께 라운드하며 선수로서가 아닌 방송이라는 전혀 새로운 영역으로 한 발 내디디기로 했다. 새로운 뭔가를 시작한다는 기대와 설렘을 가진 경계인 서희경을 대회 현장에서 만났다.

-오늘 라운드는 선수로서 했나? 해설위원의 심정으로 했나? 어느 편이 가까운가?
아직은 선수의 마인드가 더 강했다. 하지만 해설이란 것 역시 선수의 입장에서 정확한 느낌과 현장의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큰 구분은 없지 않을까 싶다.

-돌아본 코스는 어떻던가?
크게 어렵지 않고 무난한 코스 같았다(차이는 있었다. 선수였다면 페어웨이에서 잘 안 된 샷은 몇 번을 다시 쳐보고 했을 것이다).

-3일 은퇴를 선언했다. 그건 전격적이고 돌발적인 선언에 가까웠는데 꼭 그렇게 은퇴를 선언할 필요가 있었을까? 올 초만 해도 엄마 골퍼로 강한 모습을 보이고 의욕도 높지 않았었나?
미국 LPGA무대에 가서 3월부터 4개월간 열심히 뛰기도 했다. 남편과 가족의 응원도 있었다. 아직 실력이 있고 투어에 대한 미련이 있을 때 할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가정을 이루고 시합을 하다보니 ‘이게 과연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것인가?’ ‘인생의 우선 순위가 가정이 아닌가’하는 회의가 좀 들었다.

-확실하게 은퇴 결정을 마음먹은 시기는 언제쯤인가? 앞으로는 뭘 할지 계획은 있나?
두 달 정도 된 것 같다. 원래는 올 시즌을 끝내고 은퇴하는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조용히 은퇴하려 했었다. 하지만 소속사였던 스포티즌에서 10년이라는 선수 생활을 마감하는 것이니 알리자고 제안을 했다. 그것도 의미 있는 대회에서 하자고 해서 이번에 발표하게 됐다. 앞으로 나갈 방향은 결정하지 않았지만 방송이나, 후배 양성 등등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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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제주도에서 열린 대회 우승으로 이해 6승을 거뒀다. (사진=대회 조직위)


-은퇴 선언을 하는 대회가 ADT캡스 챔피언십이어야 했던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2008년, 2009년 우승은 내 전성기의 우승이자 유일한 2연패를 거둔 대회이기도 하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가장 열정적으로 모든 것을 담아서 프로 생활을 했고, 제일 자신감도 넘쳤던 해였다. 그리고 둘다 시즌 마지막 대회였다. 즐겁게 시즌을 마무리하는 느낌이 강했다(루키해인 2006년에 ADT캡스에서 3위를 한 것이 그해의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2008년은 서희경이 시즌 6승을 달성하며 한국LPGA의 여왕에 등극했고, 2009년은 유소연과 함께 마지막인 이 대회에서 한국LPGA 대상, 상금 랭킹 1위, 다승 1위, 최저타수상을 결정지을 정도로 경쟁이 뜨거웠다. 결국 서희경이 우승했고, 그해 모든 상을 싹쓸이했다.)

-두 번의 대회는 모두 제주도 롯데 스카이힐에서 열렸다. 그 골프장과 인연이 있는 것 아닌가? 거기엔 ‘서희경의 돌’도 있지 않나?
맞다. 롯데마트여자오픈 우승까지 그 골프장에서 3승을 거뒀다. (2009년 4월15일 롯데마트여자오픈 1라운드 오션코스 파3홀인 5번 홀에서 서희경이 친 샷이 워터 해저드로 구르다 작은 돌에 맞고 살아서 파를 잡았고, 그 대회에서 우승했다. 골프장은 그 돌을 ‘서희경의 돌’이라 새겨 기념하고 있다. 골퍼들은 행운을 가져다 주는 돌이라며 그 홀에서는 만지고 지나간다고 한다) 나는 원래 바람 부는 코스를 좋아한다. 펀치샷을 좋아하고 그런 샷들을 잘 했다(모든 선수들이 바람을 힘들어 할 때 그걸 잘하고 즐기는 사람은 못 당하는 법이다).

-가장 뿌듯하고 기억에 남는 대회는?
2008년 하이원채리티오픈에서 데뷔 3년차에 처음 우승했을 때다. ‘제발 한번만 우승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했고 우승을 바라던 끝에 온 것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 반대로 가장 아쉬운 대회라면?
당연히 2011년 US여자오픈 연장전에 나가 패했을 때다(비가 오다 그치길 반복하는 악천후 속에 유소연과 월요일의 3홀 연장전 끝에 패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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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필드의 패션 모델'이란 별명으로 불리던 ADT캡스 대회. (사진=대회 조직위)


- 결혼 전과 후의 미국 LPGA투어 생활은 어땠나?
결혼하기 전까지 우승을 못하고 2년 정도 나름 인생의 슬럼프를 겪었다. 한국에 대한 그리움도 컸다. ‘집 떠나와 뭣 때문에 이 고생을 해야 하지?’ 하는 생각도 있었다. 결혼하고 나서 올해 다시 경험한 미국 투어 생활은 즐거웠다. 3월부터 7월까지 아쉬움 없이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가족과 떨어져서 있다 보니 그게 즐겁지가 않았다. 이기적인 판단을 했다고 할까. 주변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다. 개인의 행복이 더 중요했다. 골프 선수 생활이란 것이 삶에서 우선 순위가 떨어졌다고 해야 할까.

- 줄리 잉스터를 평소에 존경한다고 했다. 잉스터는 결혼과 선수 생활을 잘 병행하지 않는가?
프레지던츠컵을 보러가서 일요일에 그녀를 만나 은퇴 얘기를 슬쩍 꺼냈다. 잉스터는 “좋다. 니 행복이 우선이다. 필드가 조금이라도 그립고 아쉽다면 은퇴하면 안 되겠지만 니 입장이 맞는 것 같다”며 격려해 주더라. 외국 선수들이 롱런하는 이유는 자기가 즐겁게 운동하니까 빨리 질리지 않기 때문인 것같다. 반대로 ‘한국 선수들이 롱런을 못하는 이유를 물어온다.’ 내 답변이라면 한국 선수들은 선수로 준비하는 과정에서 너무 혹사당하는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일찍 번아웃(Burn out)되고 소진해 버린다.

-인생의 다음 스텝을 생각해둔 것이 있나?
은퇴라는 단어를 강조하고 싶지는 않다. 소속사에서 보도자료를 배포할 때도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다’고 했다. 주변에서는 방송을 하라고 한다. 골프 쪽에는 계속 머물 것 같다. 아직은 좀 이르지만 아이를 키워놓고 보면 주니어나 후배를 가르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주변에서 특히 가족은 은퇴를 어떻게 받아들였나?
아버지는 굉장히 아쉬워하셨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최고의 선수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꿈도 많이 꿨었다. 대부분의 부모와 같으실 거다. 그런 아버지가 내 결정에 순순히 인정하신 계기가 있다. ‘코스에 나가면 마음이 답답하고 즐겁지 않다’고 했더니 그러셨다. ‘니가 행복한 길을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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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란한 서희경 가족. (사진=스포티즌 제공)


- 삶과 골프의 밸런스를 맞추는 방법은 뭘까?
나는 내 인생의 행복을 좇아가고 있다. 지나온 10년에 아쉬움과 후회가 전혀 없다. 그만큼 충실하게 살았던 것 같다.

-그런 밸런스를 후배들도 원할 것인데, 선배로서 조언을 하자면?
뭔가가 안쓰럽거나 안타까움이 있다면 시야가 좁아진다. 앞만 보고 달려가게 된다. 나도 처음 외국에 나갔을 때는 경기장과 숙소만을 오갔다. 하지만 본받고 싶은 선수들은 경기 외적으로 여행을 하던지 삶을 다양하게 즐기더라. 나도 미국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한 뒤로는 가끔 시간을 내 가족들과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골프로부터 멀어지려는 노력이 오히려 골프를 더 사랑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사랑할수록 오히려 멀어져 보는 것도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지나온 시간에 후회가 없다면 새로운 도전이 즐거울 수 있다. 미련이 남고 아쉬움이 있다면 세월의 끝자락만 잡는 것이다.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에 은퇴란 게 무슨 생뚱맞은 말일까 싶지만, 다시 생각하면 은퇴 없이 어떻게 새로 도약할 수 있을까 싶다. 우리도 매일 무언가를 버리면서 새로 얻지 않던가. [해운대비치(부산)=헤럴드스포츠 남화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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