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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2] (16) 신혼 여행보다 잉글랜드 축구가 좋다! - 아더 하프
뉴스| 2016-02-06 06:51
<헤럴드스포츠>가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2를 연재합니다. 앞서 연재된 시즌1이 기존에 출판된 단행본 '킥 더 무비'를 재구성한 것이라면 시즌2는 새로운 작품을 대상으로 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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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팬의 영원한 딜레마, 축구냐 사랑이냐?

사랑하는 연인과 축구 경기를 보는 건 열혈 축구팬들 모두의 바램일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행운을 거머쥐는 사람은 드뭅니다. 물론 요즘에는 축구장을 찾는 여성팬이 많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축구장 특히 서포터 문화는 남성적인 성향이 강합니다. 물론 여성 울트라를 표방할 정도로 열정적인 지지자들도 있지만, 그래도 같은 팀을 지지하는 여성들 중에 나의 짝을 만날 확률은 아직 낮은 게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많은 열혈 서포터들은 축구와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곤 합니다. 게다가 축구장 하면 1년에 한 두 번 갈까말까 하는 곳으로 생각하는 일반인들의 시각으로는, 매주 홈과 원정을 가리지 않는 열혈 서포터의 삶은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결국 많은 커플 축구팬들은 주말이 되면 축구와 데이트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처지가 됩니다. 물론 솔로 축구팬들은 이런 고민 자체도 부럽겠지요. 아무튼 무턱대고 축구장만 찾다가는 사랑을 잃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도 그런 딜레마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상황이 더 심각합니다. 그냥 데이트가 아닌, 신혼 여행 도중에 몰래 축구장에 가야 하는 잉글랜드 서포터의 이야기, <아더 하프(The Other Half)>입니다.

유로2004냐, 신혼여행이냐?

2004년 6월, 잉글랜드 남성 마크(Mark)와 미국 여성 홀리(Holly)는 막 결혼식을 끝내고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국적을 뛰어 넘어 결혼한 이들 부부는 유럽으로의 달콤한 신혼여행을 떠납니다. 장소는 대서양과 지중해가 만나는 이국적 분위기의 포르투갈입니다. 신부 홀리의 아버지가 호탕하게 이번 신혼 여행 경비를 모두 대 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마크의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굉장히 초조해하며 좌불안석인 마크는 아내 몰래 가방에서 세 장의 티켓을 수시로 꺼내 봅니다. 그 티켓은 바로 신혼여행지인 포르투갈에서 열리는 유로 2004 입장권이죠.

사실 마크는 열혈 축구 서포터입니다. 클럽 팀은 윔블던(AFC Wimbledon)을 지지하고, 잉글랜드 대표팀 경기도 따라다니죠. 사실 신혼여행지를 포르투갈로 결정한 것도 유로 2004에 출전한 잉글랜드의 경기를 보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축구에 관심 없는 미국인 아내 홀리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죠.

마침내 포르투갈에 도착한 마크와 홀리 부부. 아름다운 바다와 이국적인 거리, 예쁜 호텔을 보며 홀리는 행복해 합니다. 하지만 마크는 속으로 갈등합니다. 경기는 다가오는데, 홀리에게 솔직히 이야기를 하고 잠시 축구를 보러 다녀와야 할지, 아니면 다른 핑계를 대고 몰래 경기만 보고 올지 고민합니다.

6월 13일. 수도 리스본의 루즈 경기장(Estadio da Luz)에서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첫 경기가 열립니다. 거리에는 잉글랜드 서포터들이 넘쳐나고 사방에서 응원가가 울려퍼집니다. 그와 함께 경기에 가야 하는 마크의 초조함은 커져 가죠. 이런 마크의 속내도 모르고, 축구 서포터들의 거리 응원을 마냥 신기해 하는 홀리. 그러나 마크는 결국 꾀를 내어, 우연히 암표상을 만나 싸게 표를 구입한 것처럼 홀리를 속입니다. 이것도 여행의 재미다 싶어 홀리는 남편보고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경기를 보고 오라며 허락해 줍니다. 결국 마크는 꿈에 그리던 유로2004 경기를 보게 되죠.

처음에는 그저 행운의 표를 구했다고 생각한 홀리. 하지만 신혼여행이 계속되면서 뭔가 이상함을 느끼게 됩니다. 마크와 홀리가 가는 여행지마다 잉글랜드의 경기가 열리게 되고, 매번 우연히 표를 구하게 된 마크는 경기장에서 술에 떡이 되어 잉글랜드 응원가를 부르며 돌아옵니다.

마침내 홀리는 이 모든 게 마크의 자작극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둘만의 소중한 신혼여행보다 축구 경기를 중요시하는 마크의 행동에 분노한 홀리. 홀리는 이별을 선언하고 호텔을 나와 어디론가 떠나 버립니다.

신혼여행지에서 혼자가 되 버린 마크. 그래도 잉글랜드는 첫 경기의 패배를 딛고 일어나 8강전에 진출합니다. 8강 상대는 홈팀 포르투갈. 리스본 거리는 잉글랜드와 포르투갈 팬들로 뒤덮입니다. 과연 마크는 홀리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잉글랜드는 준결승에 진출할 수 있을까요?

축구팬에겐 두 개의 짐이 있다.

이 영화, <아더 하프>는 꽤나 독특한 구성을 보입니다. 마치 영화 전체가 하나의 축구 중계처럼 진행되죠. 마크와 홀리 부부를 따라다니며 둘의 행동을 중계하는 캐스터와 해설자가 등장합니다. 마크나 홀리가 상대방에게 한 방 먹일 때면, 화면 아래 쪽에 축구 중계에서나 볼 수 있는 스코어가 표시되죠. 게다가 주요 장면의 리플레이까지 나옵니다.

축구에 미친 마크로부터 도망친 홀리는 또다른 잉글랜드 팬 부부를 만납니다. 미국인인 홀리는 축구에 집착하는 신랑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불평하죠. 그러자 잉글랜드 팬 부부는 이런 말을 합니다.

“잉글랜드 축구팬은 살아가면서 두 개의 짐(burden)을 져야 한다. 하나는 클럽팀, 하나는 대표팀이다.”

마크는 또 어떨까요? 마크가 고뇌에 빠질 때면 그의 상상 속에서 한 명의 축구 감독이 등장합니다. 그 축구 감독은 선수 출신의 유명 배우, 비니 존스네요. 비니 존스는 라커룸에서 선수에게 지시를 하듯, 마크의 인생과 홀리와의 관계에 대한 엄한 지시를 내리죠.

조금 과장된 측면도 있지만, 이런 장면들을 통해 감독은 잉글랜드 서포터들에게 있어 축구는 단순한 레저나 스포츠 관람이 아닌, 삶의 한 부분으로 인생 마지막까지 같이 하는 문화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아더 하프>는 신혼 여행 중에도 축구를 버릴 수 없는 어느 잉글랜드 서포터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축구를 인생과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잉글랜드 축구팬들의 열정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물론 정도가 심해서 가정까지 버리는 것은 바람직한 일은 아니죠. 또 열정이 지나쳐 폭력으로 변질되어서도 안 됩니다. 그래도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태어나면서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응원했던 팀의 서포터가 된다고 일컬어지는 잉글랜드 팬들의 축구 밀착형 삶을 지켜볼 수가 있습니다.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니스트이며 현재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헤럴드스포츠>에서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1(2014년 08월 ~ 2015년 08월)을 연재했고 이어서 시즌2를 연재 중이다. 시즌1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를 재구성했고, 시즌2는 책에 수록되지 않은 새로운 작품들을 담았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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