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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승의 골프 타임리프] 레프리가 본 매경오픈
뉴스| 2018-05-09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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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매경오픈 최종 4라운드 때의 18번홀 그린.


지난주 열렸던 제37회 매경오픈에서 필자는 4, 5번홀을 담당하는 레프리였다. 대회를 위한 코스 준비 때부터 대한골프협회의 경기위원회는 수 차례의 코스 답사와 회의를 거쳐서 선수들에게 최적의 코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이번 대회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골프팬들과 함께 돌아본다.

명문 남서울CC의 무기

1971년 개장한 남서울 컨트리클럽은 37회의 매경오픈 중에서 29회를 개최했으므로 매경오픈의 홈코스이다. 따라서 많은 프로선수들이 이 코스의 특징을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효율적인 코스 공략법을 잘 알고 있다. 더구나 전장 6,451m, 파71로 플레이되는 짧은 코스이므로 코스 길이로만 보면 15-20언더파쯤에서 우승자가 나올 수 있는 쉬운 코스로 상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골프코스는 선수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최고의 무기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경사가 진 딱딱하고 빠른 퍼팅그린이다. 딱딱한 그린은 어프로치 샷의 퀄리티를 잘 평가한다. 높은 탄도와 충분한 백스핀이 들어간 볼 만을 받아주고, 그 이외의 볼들은 그린 밖으로 밀어낸다. 러프에서의 어프로치 샷은 그린 앞에 떨어져 굴러서 올라가야 하는데 그린 주변의 페어웨이는 너무 물렁해서 볼을 그린 앞에서 잡아버린다. 코스의 길이가 짧아도 온그린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볼이 그린에 올라갔어도 선수들은 그린으로 걸어가면서 계속 불안해야 했다. 그린스피드가 너무 빨라서 쉽게 3퍼트가 나오기 때문이다. 경기위원회가 공지한 그린 스피드는 첫날 2.9m, 둘째 날 3.6m, 셋째 날 3.85m, 비가 내린 마지막 날은 3.3m였다. 마지막날 비가 오지 않았다면 4m가 넘었을 것이다. 3.6m 이상의 스피드라면 미국 PGA 대회에서도 아주 빠른 그린인데, 만일 4m 이상이었다면 평균타수가 1타 이상 높아졌을 것이다.

날씨와 평균타수의 관계

평균 타수를 보면 첫 라운드 73.79타, 2라운드 74.14타, 3라운드 74.22타, 마지막 라운드 73.29타였다. 처음 두 라운드 때에는 바람이 강해서 애를 먹었고, 셋째 날에는 좋은 날씨였지만 그린 스피드 3.85미터가 선수들에게 두려움을 주었다. 마지막 라운드가 시작되기 전에 많은 비가 내렸으므로 그린이 물러지면서 스피드도 3.3m로 떨어졌다.

코스는 가장 강력한 수비 무기를 잃었지만 그 대신 물이 찬 페어웨이가 코스를 아주 길게 만들어서 선수들의 공격을 막아주었다. 2번홀 441m 파4에서 투 온에 성공한 선수가 드물었고, 가장 쉽게 플레이 되던 4번홀 490m 파5에서 전날까지 쉽게 투 온을 하던 선수들이 아무도 투 온을 못하고 지나갔다.

평균타수를 보면 마지막 라운드가 3라운드보다 1타 정도 쉽게 나왔다. 선수들에게 코스가 길어지는 것은 극복할 수 있는 어려움이지만, 딱딱하고 빠른 그린은 그들을 괴롭힐 수 있는 최고의 무기라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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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에서 바라본 4번홀 모습.


아쉬웠던 4번 홀


필자가 근무했던 4번 홀은 490m, 파5로 가장 쉬운 홀이었다. 티잉 그라운드로부터 내리막 경사가 심해서 훨씬 짧게 플레이 되었고 장타자들은 짧은 아이언으로 쉽게 투 온을 시킬 수 있었다. 경기위원회는 이 홀의 티잉 그라운드를 길 아래로 한 단 내려서 파4로 플레이 하자고 제안했지만 골프장 측이 거절했다. 현재 파71인 코스를 파70으로 변경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파4로 변경하는 것이 더 좋은 합리적인 이유는 너무 많았다. 옹색한 현재의 티잉 그라운드에서는 나무가 샷을 방해하고, 티샷을 갤러리들의 머리 위에서 플레이하면서 갤러리가 티잉그라운드 아래의 길 위로 접근하는 것을 통제했다. 이에 따라 선수들의 멋진 샷을 감상할 수 없게 됐다. 이 홀은 코스에서 고저 차이가 가장 심하고, 아주 아름다운 홀이므로 호쾌한 드라이브 샷의 볼이 날아가는 모습을 갤러리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내년에는 티샷을 길 아래에서 하고 위에서 갤러리들이 환호할 수 있도록 변경해야 할 것이다.

또 페어웨이 왼쪽에 있는 큰 벙커는 현재 플레이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홀의 길이를 늘이기 위해서 길 뒤에 새로운 티잉 그라운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티잉 그라운드가 원래의 위치로 돌아와야 왼쪽으로 당겨진 볼들이 그 벙커로 들어 가면서 길 왼쪽의 아래 숲으로 굴러가는 것을 막아주는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코스 변별력

골프 대회의 개념은 선수들이 코스와 대항하여 승부를 겨루도록 준비하고, 가장 잘 싸운 선수가 우승하도록 하는 것이다. 경기위원회는 공정한 경쟁이 되도록 홀의 위치를 정하는 등의 코스 셋팅에 공을 들이는데, 기량이 가장 뛰어난 우승자를 가려내는 것이 목표다.

이번 대회에 연장전까지 가서 승부를 겨룬 박상현 황중곤 장이근 그리고 인도의 가간짓 불라는 모두 한국의 메이저를 우승했던 선수들이었으므로 코스 변별력은 우수했다고 할 수 있다.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우승할 수 있다

이번 대회의 컷 점수는 6오버파였고 우승자는 1언더파였다. 코스가 아주 어려웠다는 증거이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시합을 하는 동안 자기의 점수가 나쁘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서 무리한 공격을 하다가 사라져 갔다.

144명 중에서 79명이 컷을 통과했는데 꼴찌로 통과한 선수의 점수도 우승자와 단 7타 차이뿐이었다. 컷 통과의 꼴찌가 두 라운드 동안 4타만 줄이면 톱10으로 끝낼 수 있었는데 컷을 통과할 정도의 실력이면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인내하며 기다리지 못하고 서둘러서 코스에게 무리한 싸움을 걸어가는 것이 문제였다.

강한 바람이 불 때, 너무 빠른 그린 위에서 퍼팅을 하기가 두려워질 때, 물이 찬 페어웨이가 볼을 잡을 때 선수들이 절망하며 깜빡 잊는 말이 있다.

“코스가 아무리 어려워도 우승자는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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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홀 그린에서 첫 팀을 기다리고 있는 필자.


꼭 돌아오고 싶어하는 선수들


마지막 라운드가 끝났을 때 4일 동안 최고의 긴장상태에서 경기를 했던 선수들은 성적에 관계없이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막 라운드를 끝낸 선수와 대화했다.

“그린 위에서 그렇게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내년에 또 오고 싶습니까?”
“물론이지요. 이렇게 재미있는 코스가 어디 있겠어요?”

필자는 그린 위에서 한숨 쉬며 절망하던 그 선수의 표정이 엄살이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아시아 투어 소속의 외국 선수에게도 물었다.

“한국에 처음 왔다고 했는데 이번 대회가 어땠는지요?”
“음, 그린이 좀…(빠른 그린을 불평하나 싶었는데 곧 말을 바꾼다). 아니 전체적으로 환상적이었어요. 내년에 또 꼭 다시 오고 싶습니다.”

선수들은 골프장을 떠나면서 성적에 관계없이 다시 돌아오고 싶어했다. 레프리였던 필자도 내년에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은 그들과 같았다.

* 박노승 : 건국대 산업대학원 골프산업학과 겸임교수, 대한골프협회 경기위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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