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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만화경] 대한항공 선수들이 외치는 ‘비행기’
뉴스| 2019-11-27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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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탁구리그 여자부 우승 직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대한항공 선수단. 맨앞 김하영은 경기 후 감격에 겨워 눈물을 쏟기도 했다. [사진=대한항공]


26일 충북 제천(어울림체육센터)에서 끝난 2019 실업탁구리그. 전력열세를 딛고 여자부 우승을 차지한 대한항공 선수단은 시상식 후 강문수 감독이 “그래도 이건 하고 가야지‘라는 요청에 둥글게 모여 손을 한데 모았다. 그리고는 외쳤다. “대한항공, 비행기!” 평소에 늘 하던 단체행동으로 보였다.

대한항공이 비행기를 띄우는 항공사인 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아 물어보니 여기서 비행기는 ‘전을 가지고 동으로 옮기면 적이 일어난다’의 뜻. 강문수 감독은 “내가 만든 게 아니고 원래 있는 말이야, 우리 팀에 딱 맞는 것 같아서 구호로 쓰고 있지”라고 설명했다. 찾아보니 유명한 자선의 제목이기도 했다.

팀들마다 이 정도 구호는 있을 수 있지만 대한항공 여자탁구는 좀 특별하다. '비행기'를 하고 싶어하는 강문수 감독 때문이다. 그는 67세로, 1980년 제일모직 남자팀의 창단코치로 시작해 지도자만 올해로 꼭 40년째다. 지도자 나이로만 중년이다.

강문수 감독은 국가대표를 지냈지만 선수로는 큰 족적을 남기 못했다. 하지만 지도자로는 실업팀과 국가대표팀에서 코치와 감독, 총감독 등 안 해본 것이 없다. 제일모직과 삼성생명을 거치며 단체전 우승확률은 50%가 넘고, 대표팀에서는 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의 남자 단체전과 개인전(유남규) 우승을 일궜다. 애제자 유승민(현 IOC위원)이 아테네올림픽을 제패했으니 지도자 성적은 대한민국 최고다. 여기에 삼성에서는 상무까지 승진했고, 지난 5월까지 대한탁구협회 부회장도 맡았다. 탁구에서는 해본 일보다 안 해본 일을 따지는 게 더 쉬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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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직후 경기장에서 중계방송사와 스탠딩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는 강문수 감독. 표정만큼이나 탁구에 대해서만큼은 늘 진지하다.


그런데도 그는 지난 6월 국내 최고령 사령탑으로 대한항공 탁구단의 감독을 맡았다. 친분이 두터운 이유성 대한항공 전무의 부탁이 있었고, ‘노욕’이라는 주위의 눈총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지만 나름 고민 끝에 수락했다. 지도자로 마지막 열정을 태우고 싶은 욕망이 강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여자탁구는 확실하게 침체기로 접어들었고, 여자탁구의 명가 대한항공도 최강은커녕 2위자리로 위태로웠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나는 지금 오로지 대한항공,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한국 여자탁구를 끌어올리고 싶은 생각밖에 없다. 나의 선수시절, 그리고 지도자 초창기는 남자탁구가 여자에 치여 괄시를 받았는데, 지금은 여자가 위기지. 내 탁구인생의 마지막 과제로 이걸 좀 어떻게 해보고 싶을 뿐이지.”

한창때 ‘저러다 선수 잡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열혈남아였던 강 감독은 70을 바라보는 나이 탓인지 최근에는 “성격 많이 죽었다”는 말을 듣는다. 스스로도 “(선수들에게)가능한 말을 아끼려고 한다. 내가 먼저 솔선수범한다는 생각에 훈련시간을 지키고, 또 딴짓하지 않고 선수들의 훈련을 열심히 지켜본다”고 자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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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결승전의 수훈선수인 이은혜(왼쪽)와 김경아 대한항공 코치. 김 코치는 "강문수 감독님이 오셔서 더 좋다"고 말한다.


그래도 본새은 어쩔 수 없다. 실제로 이날 강문수 감독의 모습이 딱 그랬다. 결승전은 벤치를 김경아 코치에게 맡기고 관중석에서 대한항공선수들과 함께 지켜봤다. 손녀뻘인 선수들과 나란히 앉아 강 감독은 “하나! 하나!”, “그거는 잘한 거야”, “파핸드를 적극 활용해야지”, “내용을 만들어야 돼”라며 연신 선수를 독려했다. 좋은 득점이 나올 때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두 주먹을 불끈 쥐기도 했다. 경기가 안 풀릴 때는 주위는 신경쓰지 않고 중얼중얼 푸념에 가까운 말들을 계속 토해냈다. 가까이 있던 탁구팬이 노 감독의 열정에 미소를 지을 정도였다.

다른 건 몰라도 한국탁구의 최고령 지도자 강문수 감독이 열심히 하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또, 성적이 나고 있다는 것도 그렇다. ‘그 나이에 무슨 감독?’이라는 비판은 최소한 강 감독보다는 더 열심히 하고, 더 좋은 성적을 내야 설득력이 있다. 뭐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탁구도 나이로 하는 것이 아니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제천)=유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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