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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단카이 주니어 세대’…초라한 중년으로 전락
생생코스닥| 2011-09-09 11:15
전후세대만큼 일하지 않고

젊은세대만큼 전문성 없어

직장내 구조조정 1순위


막대한 자녀 교육비 걱정에

노후준비·건강불안까지


전국적 983만명 육박

90년대 문화산업 다크호스서

고달픈 ‘낀세대’로 전락

1990년대 일본 문화산업의 다크호스로 부상했던 단카이주니어(團塊ジュニア)세대가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초라한 중년으로 전락했다.

단카이주니어 세대란 1945년 종전 직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의 자녀들로 1970~1974년에 태어난 2차 베이비붐 세대를 일컫는다. 전국적으로 983만명에 달하는 이들은 1990년대 일본의 버블 붕괴를 겪으면서 아버지 세대의 회사 중심 노동철학을 거부하고 문화, 소비관념도 기성세대와는 달리 비교적 자유분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으로 치면 199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닌 개성파 ‘X세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제 막 중년으로 접어든 이들의 현실은 팍팍하기만 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단카이주니어, 40대의 비애’라는 기획기사에서 이들이 직장과 가정에서 초라한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직장 퇴출 1순위=단카이주니어 세대는 전후 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전후세대만큼 열심히 일하지도 않았고 젊은 세대만큼 전문성을 갖추지도 않아 직장 구조조정 1순위로 꼽히고 있다.

사무기기 전문업체 리코에 다니고 있는 A(47) 씨는 7월 초 직장에서 희망퇴직을 권고받았다. A 씨는 기업실적 악화로 감원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기술직이라 내심 안심하던 차였다. 하지만 상사는 A 씨에게 “더이상 맡길 업무가 없다”며 4번의 상담 끝에 1000만엔(한화 1억4000만원) 상당의 퇴직금을 약속하며 퇴직을 권유했다. A 씨는 고심했지만 결국 회사에 머물기로 했다. 아이가 아직 초등학생인데 대안도 없이 무작정 일을 그만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 리크루트워크스연구소의 도요타 히로시 주임 연구원은 “단카이주니어 세대는 나이가 들면 자동승진이라는 행복한 사회생활을 꿈꾼 마지막 세대”라며 직장에서 입지가 흔들리면서 불만과 고충도 함께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 내에서 대부분 관리직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은 시대 변화와 함께 관리직 자리가 줄어들면서 갈수록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실제로 일본의 관리직은 과거 20년 전에 비해 10% 이상 감소했다. 조직구조도 피라미드형에서 플랫형으로 바뀌면서 대우도 예전만 못하다. 책상은 가림막이 없어 평사원과 구분이 안 되고 아예 정해진 자리가 없이 떠돌아 다니기도 한다. 회사 측은 “앉아서 관리하는 시대는 지났다. 영업부장이면 나가서 영업을 하라”며 야전형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자신감도 바닥으로 추락했다. 시대에 순응하지 못하면서 정신과 상담도 급증했다. 일본 내 500개 회사와 제휴해 사원들의 정신건강을 상담하고 있는 피스마인드이프는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40대 이용자가 30대를 추월했다고 밝혔다. 시부야 히데오 이사는 “40대가 전체 이용자의 40%를 차지하고 있다”며 “이들은 회사가 요구하는 고도의 성과와 역할에 부응하지 못해 자신감을 잃고 있다”고 진단했다.

뒤처진 경쟁력을 만회하기 위해 야간 대학원에 다니는 직장인도 늘어났다. 오쿠보 미치히로(43) 씨는 회사에서 영업기획부장을 맡고 있지만 지난 4월부터 경영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그는 “20년 직장 경력만으로는 급변하는 경제환경에 적응하기 힘들다”며 “한해 학비가 100만엔에 달하지만 일로서 성과를 올리려면 새로운 성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학 동기를 밝혔다.

▶아이는 아직 어린데=단카이주니어 세대의 비애는 직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가정에서도 고스란히 재연되고 있다.

이들은 구조조정 칼바람 속에서도 어린 아이들의 막대한 교육비 걱정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 노후 준비, 건강 불안까지 겹쳐 3중고를 앓고 있다. 

노동성이 조사한 인구조사 실태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남성의 평균 초혼 연령은 30.5세(한국나이 32.5세)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만혼 추세인 한국의 남성 평균 초혼 연령인 31.4세와 비교해 봐도 한 살이 많다. 결혼이 늦어진 만큼 첫아이 출산 연령도 32세(한국나이 34세)로 올라갔다. 40대에 처음 결혼하는 남성도 늘어나 2009년에는 2만명을 넘어섰다.

4세와 7세 두 아이를 둔 야마우치 이치로(42) 씨는 지역 내 ‘아버지 서클’에 다니고 있다. 야마우치 씨는 “아이들에게 멋진 아빠로 보일 수 있는 시간도 길어야 10년”이라며 “서클 멤버들이 의기투합해 아이들에게 훌륭한 아빠의 모습을 보이려고 하프 마라톤에 도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얼마 뛰지도 않았는데 금세 숨이 차오른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처럼 40대 아빠들이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나이가 들수록 직장 내에서 커져가는 책임감 때문에 육아에 전념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40대 남성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9시간23분으로 전체 연령대에서 가장 긴 것으로 나타났다.

노후와 건강도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베네세차세대육성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3세 이하의 아이를 둔 40대 가장 50%가 건강에 불안을 느낀다고 답했다. 48세에 두 살배기 딸을 두고 있는 공무원 B 씨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 걱정”이라며 “최근 아이를 재운 뒤 운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히라노 다이시 씨는 “정년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그동안 교육비와 노후자금을 모두 준비해야 한다”며 “솔직히 생각하면 괴롭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또한 신문은 ‘일벌레’ 아버지 슬하에서 자란 단카이주니어 세대인만큼 육아나 가사가 익숙지 않은 40대도 많다고 지적했다. 베네세차세대육성연구소의 다가오카 준코 연구원은 “중ㆍ고등학교 때 여학생들과 가정 수업을 받은 젊은 세대에 비해 40대 남성들은 육아나 가사에 참여하려는 의식이 부족하다”면서 “폭력가정에서 자란 40대 남성들도 많아 기본적으로 육아나 가사에 대한 반감이 커 가치관의 혼란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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