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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엔드] 50년대 최초 성형수술…90년대후 폭발적 팽창
뉴스종합| 2013-07-19 10:03
대한성형외과학회는 우리나라 성형수술의 역사를 크게 첫 10년(1945~1955) 무명기, 다음 10년(1955~1965) 태동기, 3차 10년(1965~1975) 신생육성기, 4차 10년(1975~1985) 성숙발전기, 최근(1985~현재)을 국제도약기로 분류한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성형수술’이 등장한 시기는 1950년대 중반이다. 구미에서 유학을 마친 의사들이 선진 의료기술을 갖고 돌아오면서 1960년 이후 성형외과가 본격적으로 생겨났다. 이때만 해도 성형수술이란 일반 대중에게는 낯선 개념이었다. 일례로 1960년대 당시 동아일보 기사에서 ‘성형수술’이란 단어가 쓰인 경우는 연 1회 미만에 불과했다. 이 수치는 1970년대 연 10회, 1980년대 20회로 증가하더니 1990년대 중반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해 1995년 이후 평균 100회를 넘어섰다. 그만큼 ‘성형수술’이란 말이 우리 일상에 깊숙히 뿌리내리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성형수술이 보편화된 데에는 경제발전으로 인한 소득 증가와 함께 여성들의 사회진출 증가가 큰 영향을 미쳤다.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타인과의 접촉빈도가 증가하고, ‘외모도 경쟁력’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으면서 성형욕구가 크게 늘어났다. 


한편으로는 연예산업의 발전도 성형수술의 보편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TV나 인터넷을 통해 24시간 소비되는 연예인의 외모가 미적 기준으로 자리 잡으면서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가 강해졌다. 특히 성형시술을 받은 연예인들의 외모 변화가 일종의 ‘광고 효과’로 작용해 일반인들에게도 성형수술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일부 성형외과에서 홍보를 위해 연예인들에게 무료로 성형수술을 해 준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와 함께 2010년을 기점으로 국내 의사 수가 10만명을 넘어선 것도 기폭제가 됐다. 1980~1990년대 총 27개의 의과대학이 집중적으로 신설되면서 의사 수는 늘어난 데 비해 출산율 저하로 산부인과, 소아과 등의 수는 줄고 수익이 적은 외과나 내과 등은 대형병원으로 흡수돼 많은 개인병원이 문을 닫게 됐다. 이에 따라 성형외과와 피부과 등으로 개인병원 창업 수요가 급격히 쏠리게 되면서 성형산업이 팽창하게 됐다. 의사직업을 선호하는 한국의 문화로 인해 우수한 인재가 의료업에 몰리며 세계 최고수준의 의료기술을 발전시킨 것도 ‘성형공화국’ 탄생 원인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

50년의 짧은 역사에도 세계 최고의 ‘성형공화국’이 된 우리나라는 2000년대 들어 ‘한류’바람을 타고 새로운 시기에 돌입했다. 정일봉 대한성형상담사협회 이사장은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일어난 한류 열풍과 경쟁력 있는 한국 성형산업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외국인 수요가 급증했다”며 “앞으로는 국내시장보다 외국인시장이 더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1960년대 도입기를 거쳐 1980년대 보편화, 1990~2000년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인 국내 성형산업은 이제 전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내시장의 성장세는 앞으로 주춤할 것이라 전망하기도 한다. 한 의사의 말을 빌리면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시술을 받아 외모가 차별화될 여지가 적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의 민주화(?)’가 이뤄진 ‘성형공화국’의 한 단면이다.

이자영 기자/nointeres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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