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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과 대륙·해양문화 多품고…타이난 ‘퓨전문화’를 만들다
라이프|2018-07-10 11:03

대만으로 이주한 공자(孔子) 후손이 지은 공자묘.


네덜란드 요새·청나라 문화거리·일본식 건물
대만의 첫 수도…500년 역사·현대 상호 공존
‘녹색터널’ 등 생태보호속 독창 문화 꽃피워
한국과 관광교류확대…갈수록 우정 깊어져


대만은 우리나라 경상남ㆍ북도를 합친 면적 밖에 안되는데, 참으로 다양한 면모를 가졌다. 그 중에서 남서부에 있는 대만의 첫 수도, 타이난(臺南)은 500년 대만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대만으로 이주한 공자(孔子) 후손이 지은 공자묘, 네덜란드가 지은 안평고보(古堡) 요새, 명나라 사람이 만든 천후궁, 청나라 지배하에 조성된 선눙(神農)거리, 일제가 지은 하야시 백화점이 남아있는 가운데, 동서양의 미술품, 골동품을 아름다운 정원과 함께 전시한 치메이(奇美)박물관에선 예술의 향기가 피어나고, 화위안(花園) 야시장에서 다양한 먹거리의 구수한 냄새가 풍기며, 폐공장을 리모델링한 스구(十鼓:Ten Drum) 문화창의단지에선 도시를 아름답고 활기차게 하려는 젊은이들이 열정이 피어난다.

그들은 왜 동서남북 퓨전 문화 메카가 됐을까.

대만의 아마존이라 불리는 쓰차오(四草) 녹색터널.


▶500년 과거-현재 이어주는 타이난= 착하게 살며 자급자족하던 대만에 1627년 네덜란드라는 불청객이 찾아든다. 모질게 구는 침입자가 아니고 흥미로운 구석도 있기에 공생하려 했다. 네덜란드 상업 정권은 이후 영국 등 서구 기업들을 대만에 끌어들인다.

청나라에 중원을 내주며 쇠락의 길을 걷던 명나라의 세력 중 정성공 군대가 1668년 대만에 들어와 네덜란드를 몰아내고 새 지배자가 된다. 이때부터 중국 대륙 사람들이 대거 대만으로 이주한다. 명나라가 지배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중국 본토의 주인인 청나라가 대만에 대한 주도권을 쥔다.

청의 힘이 약해지는 사이 1895년 대만에 대한 지배권은 일본으로 넘어간다. 대만을 교두보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일본의 대만 지배는 악랄하지 않았다. 필요한 경제기반도 만들어주는 대신 대만을 활용해 국제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 했다.

국민당 정권의 유입, 일본의 패망 이후 대만 사람들은 복잡한 국제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그냥 잘 사는 데 매진한다. 그들의 번영을 돕는 세력들과 손을 잡는 철저한 실리 위주 외교통상의 길을 걷게 된다.

이같은 대만의 500년 역사의 기틀은 모두 첫 수도였던 타이난을 중심으로 잡혀갔다.

누구에게든 척(隻)을 지지 않고 다양한 문화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심성은 동양과 서양, 대륙과 해양 퓨전 문화를 낳았던 것이다. 인구 190만의 도시인데도,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작은 아마존’이라는 불리는 맹글로브-정글 터널 물길 ‘쓰차오(四草) 녹색터널(안남구 다종)’의 아름다운 생태, 치구 소금산(七股鹽場: 칠고구 염정리), 희귀 조류 저어새 서식지까지 간직하고 있다.

네덜란드 식민통치의 중심지였던 안핑구바오(安平古堡)


▶포용의 문화유산= 대만 사람들의 마음 속엔 공자를 존중하는 마음이 기본으로 깔려 있다. 공자의 후손이 대만으로 이주해 그의 철학을 전했기 때문이다. 중서구에 있는 공자묘(사당)는 1655년 창건된, 타이완 최초 고등교육기관이다. 국자감-성균관 같은 곳. 500년 대만 학문의 메카이다. 커다란 나무들이 숲을 이뤄 사색하기에 좋다. 숲 가장자리 태평양전쟁 포탄이 떨어진 곳에서 노인들이 한가로이 담소를 나눈다.

타이난 옛 역사의 중심지 안평구의 안평고보는 네덜란드 표현으로 ‘제럴드성’ 요새이다. 네덜란드 식민통치의 중심지였다. 얼마 남아있지 않은 붉은색 보루에 오르면 안평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장벽 사이사이에 놓인 대포는 바래고 깎였으며, 세월의 흐름에도 벽면엔 반얀트리 뿌리가 헝클어진 머리처럼 드리워져 있다. 요새에서 내려다 보이는 대만해협 위 고즈넉히 떠있는 배들의 풍경과 석양은 대만 팔경 중 하나이다.

안평수옥(樹屋)은 네덜란드가 1665년 세관을 만든지 2년만에 끌어들인 영국의 무역상 더지양행(德記洋行) 창고가 있던 곳으로, 거대한 반얀트리 넝쿨 속에 지은 건축물이다. 반얀트리 가지와 뿌리가 벽과 지붕을 뚫고 자라 건물과 나무가 하나된 신비감 속에 귀곡성 같은 짜릿함도 느껴진다. 그럼에도 젊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재잘대며 인생샷을 찍었다. 지금은 조명예술도 해놓고 구름다리, 수상그네를 놓아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놀이터가 됐다.

1668년 네덜란드를 몰아낸 정성공이 처음 만든 건물은 안평 텐하우(天后)궁이다. 이주세력인 복건성 사람들은 이곳에 고향의 신상을 모셨다. 1895년 일제 침략때 청나라 군인들이 이곳에서 괴멸돼, 한때 죽은 영혼이 떠돌까봐 접근을 꺼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관광객들이 붐빈다.

옥정구에 있는 선눙거리는 청나라 지배시절과 현대를 한눈에 보는 곳이다. 예전에 배가 드나들던 곳이라 최고 번화가였다. 지금은 문화공방, 카페, 옛날식 술집, 아트숍등이 들어서 있고, 거리연주자도 보인다. 중국 흔적이 짙은 곳이지만, 최근 대만 예술가들이 작업하고 전시하는 미술관이 곳곳에 있고, 낡은 벽은 예술가의 캔버스가 되어 그림으로 채워졌다.

예술의 향기가 피어나는 치메이(奇美)박물관.


일본 시대에 지어진 서구 양식의 옛 공회당 건물과 일본식 목조건물이 밀집된 중서구의 오원(吳園) 문예중심은 문화 예술 및 다도(茶道) 체험장으로 탈바꿈한 일제 흔적이다. 골동품에서 1930년대 일본풍 물건, 현대 공산품을 망라해 진열해 놓은 하야시 백화점은 박물관 같다. 백화점 옥상에 올라가면, 1945년 3월 대만에서 일제를 몰아내기 위한 미군의 폭격 흔적이 있다.

폐공장을 리모델링한 스구(Ten Drum)문화창의단지.


▶대만식 문화 가꾸기= 이젠 대만 스스로 일궈내고, 청년들이 가꿔가는 곳을 만나볼 차례이다.

2008년 런더구의 2만8700평의 넓은 부지에 지어진 치메이박물관은 화학생활용품 사업가인 시웬롱이 어릴적 해보지 못한 바이올린과 미술 체험의 꿈을 성공한 뒤 구현한 곳이다. 미술품, 고고학, 바이올린, 골동품 등이 전시돼 있어 대만 학생들의 단골 체험학습 코스이다. 특히 시웬롱이 어릴 적 연주해보고 싶었던 바이올린은 120억원짜리 한 대를 포함해 1000여대가 있다. 정원과 호수가 있어 소풍나온 가족들도 여럿 보였다.

2300평 규모의 설탕공장에서 드럼 공연극장과 나사형 미끄럼놀이기구, 카페, 청년들의 예술 공방으로 바뀐 스구 창의단지(런더구)는 대만의 활력을 보여주는 곳이다. 드럼을 중심으로 흥을 내는 예술과 교육, 공연 및 놀이가 한꺼번에 이뤄지는 곳으로 대만의 독창적 문화를 만드는 문화제조창이다.

아름다운 남부지방의 섬도 빼놓을 수 없다. 타이난 서쪽 중국 산터우시 방향에 있는 치메이다오(七美島)는 현무암 지대속에 두개의 석호가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망부석이 감성을 자극하는 곳이다. 타이난에 붙어있는 가오슝 남쪽 열대 섬 류추향의 샤오리우치우(小琉球)는 대만 유일한 산호초 섬으로 사계절 내내 스킨스쿠버나 스노클링을 체험할 수 있다.

‘대만의 희망봉’ 같은 최남단 컨딩 국가공원 내 국립해양생물박물관은 대만해협이 맞닿은 절벽에 우뚝 서 있다. 1만8000마리 해양생물이 사는 아시아 최대 규모 해양박물관으로, 84m 해저터널과 세계적 희귀동물인 백경(흰돌고래)으로 유명하다.

최근 주요도시 공항에 자국민 처럼 한국인 자동출입시스템을 설치하고 한국여행업협회(KATA)를 초대하는 등 한국과의 관광교류 확대를 꾀하고 있는 대만은 남부지방의 매력을 활짝 내보이며 우리를 향해 손짓하고 있다. 한국-대만의 우정이 깊어지니 대만인들의 한국행-일본행 균형도 맞춰질 것으로 기대된다.

함영훈 여행선임기자/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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