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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아폴로가 ‘메이드 인 차이나’? 뭐가 차이나?
뉴미디어| 2018-09-21 14:10
 

내 고향은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이야. 우림제과가 있던 자리였지. 우림제과는 원래 분말주스를 만들어 팔던 업체인데, 1971년 사명까지 ‘아폴로제과’로 바꾸고 작은 빨대 안에 분말주스 반죽을 넣어 판매하기 시작했어. 아폴로가 탄생한거야. 1971년이니까, 지금으로부터 무려 47년 전 일이네.

다들 기억하겠지만, 학교 앞 문방구에선 그야말로 최강자로 군림했던 나였다고. 하지만 원자재비 인상 등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아폴로제과는 결국 2010년 생산을 중단하게 돼. 그리고 2013년 1월, 아폴로제과의 공식 폐업신고. 아폴로제과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거야.

그리고 나 역시 사라질 뻔 했.지.만. 날 되살린 곳이 나왔어. 아폴로제과가 생산을 중단한 이듬해인 2011년, S사는 ‘아폴로’란 이름의 상표를 공식 등록하고 판매를 시작했지. 다만, 아폴로제과와 달리 국내 공장이 아닌 중국 광둥성 내 한 종합식품업체가 만들어 S사가 국내로 수입ㆍ판매하는 방식으로 말이야. S사 대표 차모(38) 씨는 “사업 초기엔 국내 생산도 고려했지만, 생산단가가 너무 높아 포기했다”고 하더라고.

기존 아폴로제과에서 ‘아폴로’를 상표 등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 즉, 지금 S사는 아폴로란 상표권을 갖고서 중국업체로부터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날 만들고 있는거야.

만약 지금 아폴로를 산다면 옛날과 조금은 달라졌을꺼야. 자세히 봐야 알 수 있는데, 한번 찾아볼래? 

아폴로의 과거와 현재.

포장지 전면 상단을 봐봐. 예전엔 여자아이였는데 지금은 남자아이가 활짝 웃고 있어. S사는 이 남자아이 도안도 현재 특허로 등록한 상태. 과거엔 한 봉지에 한 가지 맛만 담겨 있었는데, 요즘 아폴로는 ‘무려 5가지’ 과일 맛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지. 그리고 또 하나. 포장지 뒷면을 보면 원산지 표시가 ‘국내산’에서 ‘중국산’으로 바뀌었어. 
중국산이라 불안하다고? 날 생산하고 있는 중국 B사는 식품안전부문 국제 규격인 식품안전경영시스템 ‘ISO22000’ 공인인증을 획득했고, 국제 위생관리 시스템인 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 인증도 받았어. 그래도 못 믿겠다면 식약청에도 한번 물어봐. “정상적인 수입절차를 거쳐 국내로 들어오는 식품”이라는 게 식약청의 답이니까.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사실을 말해줄까? 아폴로가 지금 한국에서만 팔린다고 생각하면 오산. B사는 아폴로에 다른 포장지를 입혀 동남아시아, 남미 등에도 팔고 있어. 이름은 아폴로가 아니라 ‘사커룬’. 심지어 한글로 ‘사커룬’이라고 써 있어.
 

아랍국가에선 할랄(halal, 무슬림이 먹고 쓸 수 있는 제품) 인증까지 획득. 인스타그램 등 SNS에 올라오는 글을 보면 사커룬이 각국에서도 ‘추억의 과자’로 인정받는 모양이야. 사커룬 사진과 함께 ‘이걸 어디서 발견했습니까?’, ‘이거 나도 중독된 적 있어’, 내 어린 시절’ 이런 류의 댓글이 오가더라고. 떡 하니 한글로 ‘사커룬’이라 적혀 있으니, 이쯤 되면 나도 ‘한류스타’라고.

참, 나랑 비슷하지만, 중국이 아닌 국내에서 만들어지는 빨대과자도 있어. 이름은 ‘아팟치’. 아팟치도 아폴로 못지않게 꽤 오랜 역사를 자랑하지. 1997년부터 충남 공주시에 위치한 한일물산에서 만들고 있으니까. 


47년 전, 고사리손에 동전 하나 내밀며 나와 함께 세상 다 가진 듯 신나했던 그때 그 아이는 이제 환갑을 앞두고 있겠지? 손주 떼에 슬쩍 못 이긴 듯 들어간 문방구에서 날 다시 만나게 되면 어떤 기분이 들까?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보곤 해.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너희까지 온 가족이 다 같이 아폴로와의 추억을 풀어놓는 장면을 말이야. 시간은 흘렀지만, 아폴로는 여전하니까.

생각난 김에 오늘 한 번 인근 문방구로 달려가 보는 건 어때? 그리고 어린 시절 그때처럼 날 다시 한번 찾아줘. 나도 너희가 그리워.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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