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 ‘을’의 눈물 닦아주다 민원기관 전락한 공정위
뉴스종합| 2019-06-20 11:31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취임 이후 각종 민원이 크게 늘어나 대기업은 물론 기관 공무원들까지 몸살을 앓고있다는 본지 보도(20일자 1면,6면)는 공정위의 존재 목적과 역할에대해 재삼 생각케 한다.

본지가 20일 국회 등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공정위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총 4만616건의 민원ㆍ신고 신청을 접수받았다. 벌써 2년째 4만건을 넘는다. 지난 2016년까지 연간 3만건대에 머물렀던 것이 김상조 위원장 취임 이후 급증한 것이다. 그가 취임한 2017년 하반기에만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50.2% 늘어났고 그 이후에도 종전보다 많은 수준이 계속 유지되고 있다.

‘을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김 위원장의 소신에 기대는 절박한 아우성들임은 물론이다.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열악한 위치의 사업자를 홀대하는 갑질 횡포를 막자는데 반대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약자의 피해를 호소하는 창구가 활성화된 반면 부작용도 적지않다. 민사 소송으로 해결해야 할 사건인데도 ‘을’들은 법원으로 가기 전에 공정위 신고부터 하기 때문이다. 공정위 직원들은 업무폭주로 기진맥진이고 공정위 신고를 협박의 도구로 이용하는 악성민원도 부지기수다. 실제로 제기된 민원중 공정위가 정식 사건으로 접수한 것은 10%도 안된다. 나머지는 타 기관 몫이거나 이미 시효가 지난 일들이다. 그걸 확인하는데만 엄청난 인력과 비용이 들어간다. 민원은 늘어났는데 사건 처리기간을 단축하려다 보니 사건을 꼼꼼하게 살펴볼 여유도 없다. 오죽하면 김 위원장이 직접 나서 “단순 민원, 반복적인 신고를 자제해달라”고 당부할 정도다.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는 공정위의 역할이다. 시장의 독과점을 방지하고 포용적 생태계를 구축하는 일은 중요하고도 절실한 공정위의 과제다. 그건 경쟁과 혁신에서 온다. 을의 눈물만 닦아준다고 경쟁과 혁신이 활발해지는 것은 아니다. 갑처럼 보이는 을도 많다. 을처럼 보이지만 갑질이 무성한 곳도 없지 않다. 실제로 갑을의 프레임은 상황에따라 달라지는 복잡한 역학관계다. 공정위가 주최한 토론회에서조차 “갑을 프레임으로 정책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오지 않았는가.

공정거래법은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해 기업활동을 조장하고 소비자를 보호하자는데서 출발했다. 경쟁 제한적인 낡은 규제를 없애고 시장 기능을 활성화하는 정책들을 만들어야 가능하다. 경쟁자만이 아닌 경쟁을 보호하는 것도 공정위의 임무라는 얘기다. 자칫 을의 눈물만 닦다가 소홀해질까 우려돼서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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