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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친 靑참모들
뉴스종합| 2019-06-26 11:17
괴이한 일이다. 말 그대로 흔치 않은 일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정부부처 출입기자단이 최근 일주일 간격으로 청와대를 향해 잇따라 유감을 표명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을 두고 하는 얘기다.

통일부 출입기자단 44개사는 지난 17일 발표한 성명에서 청와대 고위관계자에게 유감 입장을 밝혔다. 꼭 일주일 뒤인 24일, 이번에는 국방부 출입기자단 39개사가 별개의 성명을 통해 청와대에 유감을 표명했다.

기자단 성명 발표 자체는 흔한 일은 아니다. 40여곳 안팎에 달하는 각 언론사의 사정과 형편이 각양각색인 탓에 애초부터 한목소리를 낸다는 게 쉽지 않다. 여기에 언론사별 출입처와의 각기 다른 관계맺음과 상이한 정치적 입장까지 감안하면 기자단이 한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전례도 많지 않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기자단 성명 발표는 지난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국빈방문 기간 중국 측 경호원들이 우리 측 수행기자 2명을 집단폭행했을 때 청와대 출입기자단의 비판 성명과 2018년 10월 통일부가 판문점 남측 우리 지역 취재과정에서 탈북민 출신 기자를 배제했을 때 통일부 기자단의 비판 성명 등 손에 꼽을 정도다. 앞의 두 예는 사회적 이슈가 됐을 뿐 아니라 정치적ㆍ외교적 쟁점으로 비화하는 등 파장도 컸다. 어찌됐든 기자단 성명 발표가 나름 적지 않은 무게를 지닌다는 방증이다.

이번 통일부ㆍ국방부 기자단 성명 역시 마찬가지다. 통일부 기자단 성명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통해 고(故) 이희호 여사 장례에 조의문과 조화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국방부 기자단 성명은 여전히 논란이 진행중인 북한 목선의 삼척항 진입 사건과 연관돼 있다. 역시 정치적ㆍ외교적으로 민감한 이슈들이다.

괴이한 것은 통일부ㆍ국방부 기자단 성명이 출입처가 아닌 청와대를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일부 기자단은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아무런 설명이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김 위원장의 조문 전달 영상에서 음성을 삭제한데 대해 “통일부 기자단과 협의할 대상은 아니었다”고 한 발언을 문제 삼았다.

보수정부였던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때조차 남북관계 취재 과정에서 이어져온 정부와 기자단 사이의 협의 관행을 모르거나 묵살한 것이었다. 더욱이 통일부가 유감을 표하고 기자단이 이를 수용하면서 일단락된 사안을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나서서 재점화시킨 꼴이었다. 이 고위관계자는 통일부에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국정운영에서 최고이자 최후의 책임을 지는 청와대의 참모답지 못한 모습마저 보였다.

국방부 기자단은 청와대 국가안보실 소속 행정관이 기자실에서 진행된 북한 목선 관련 익명브리핑에 몰래 참석한데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현역 해군 장교인 해당 행정관은 당시 브리핑을 주관한 국방부 대변인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무단으로 기자실에 들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통상 기자실에서 진행하는 익명브리핑에 불가피하게 다른 부처 관계자가 참석할 때는 브리핑 주관 브리퍼가 사전에 기자단에 알리는 절차를 밟는다.

군 출신의 한 외교안보전문가는 “브리핑룸에서 진행되는 공개브리핑이라면 모르지만 기자실에서 진행되는 익명브리핑을 청와대가 됐든 다른 부서 사람이 듣는다는 것은 눈치도 염치도 없는 짓”이라고 꼬집었다. 청와대 참모들의 이 같은 행태는 조세제도 개편 과정에서 5개월간 17만명의 백성을 상대로 여론을 수렴한 일화를 들어가며 후보자 시절부터 세종대왕을 존경하는 인물로 꼽곤 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소통의지나 언론관에도 배치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잇단 기자단 성명을 자초한 청와대 참모들의 헛발질이 결국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점이다. 이른바 ‘김여정 묵음 영상’ 논란은 정부가 남북관계에서 과도한 비밀주의를 추구하고 지나치게 북한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낳았다. 청와대 행정관의 기자실 잠입은 이미 은폐ㆍ축소ㆍ허위논란에 휩싸인 북한 목선 삼척항 진입 사건에 대한 국민적 의구심을 한층 더 키웠다.

가뜩이나 문 대통령은 집권 3년차에 접어들어 안팎으로 쉽지 않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이런 중대한 시기에 청와대 참모라면 당연히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매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불필요한 오해를 살 일을 피하고 행동을 삼가는 게 마땅하다. 문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강조한 “유리그릇 다루듯이 다뤄라”는 당부는 한반도문제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신대원 정치섹션 정치팀 차장 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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