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일제가 조성한 공원
라이프| 2020-01-17 11:42
모던걸 모던보이의 근대공원 산책 김해경 지음 정은문고

도시의 허파이자 시민의 휴식처로 여겨지는 공원은 한국의 경우, 외부에서 이식된 것으로 여겨지지만 김해경 경기도 문화재위원에 따르면, 다양한 사회적 스펙트럼 속에서 자발적으로 생겨났다.

1896년 7월2일 독립신문 기사에는 독립협회가 모화관 주변을 독립공원지로 만들고자 하는 계획이 실렸다. 조선이 청으로부터 독립한 걸 기념해 지은 공원은 모든 국민이 차별없이 운동을 하고, 위생에 도움이 되는 공간으로 여겼다. 대중을 위한 공공시설로 공원의 계몽적 성격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경성 최초의 공원인 탑골공원에 대한 기사도 나온다. 1897년 조성에 들어가 1902년 개원한 공원은 왕실이 추진한 사업으로 초기엔 일반에 개방되지 않았다.

한국 최초의 서양식 공원은 1888년 각국의 공동요구로 인천 공동조계지 사이에 조성됐다. ‘퍼블릭 가든’(public garden)이란 이름의 이 공공정원은 조계지의 특성상 조선인들이 이용하기 어려웠다.1897년 남산 아래 일본인 거류지 부근에 생긴 일본 산사와 왜성대공원도 마찬가지다.

본격적인 공원 조성 작업은 일제강점기에 이뤄졌다. 일본은 조선의 관공서와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던 자리에 조선의 흔적을 지울 목적으로 공원을 만들고 벚나무로 장식했다.

장충단공원, 사직단공원, 효창원공원, 훈련원공원 등이다, 1920년대 초 일제는 공원조성사업을 추진하는데 먼저 사직단을 헐고 운동장을 개설하는 계획을 세웠다가 민심의 반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테니스코트를 들였다.

대한제국 군인의 추모공간이던 장충단공원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박문사가 들어섰고, 파고다공원에는 재정고문 메가타 다네타로 동상이 세워졌다. 조선의 궁궐도 식물원, 동물원, 밤벚꽃놀이가 있는 위락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저자는 130여년 공원의 역사를 더듬으며 공원이 계몽문화, 대중문화 확산의 거점이었음을 추적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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