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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위기엔 '헬리콥터로 돈을 뿌려라'
라이프| 2020-04-10 08:27
“양적 완화는 경제 운용에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활용할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제까지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활용하든 것을 제약했던 요인은 통화의 남발이 하이퍼인플레이션을 낳을 수 있다는 공포였다.”(‘프리드먼은 왜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자고 했을까’에서)

코로나 19비상사태에 따른 경제위기 상황에서 각국이 긴급재난지원금으로 국민들에게 경쟁적으로 돈을 뿌리고 있다. 많게는 300만원에서 50만원까지 국민에게 직접 돈을 주는 형태다.

세계는 경제 위기때마다 양적완화를 통해 경제회복을 꾀했다. 기존의 양적 완화가 은행과 기업을 구제하고 자산시장을 되살리는데 주안점을 두었다면, 최근의 경향은 국민에게 돈을 직접 나눠주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금융전문가 프란시스 코플라는 ‘프리드먼은 왜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자고 했을까’(미래를소유한사람들)에서 모두를 위한 양적완화론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기존의 양적 완화는 자산가들의 배만 불려주고, 서민들의 호주머니는 오히려 나빠지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양적 완화는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제안했던 ‘헬리콥터 머니’에 이론적 기반을 두고 있다. 대공황시기 미국의 통화량(현금과 예금)은 4년간 3분의1이나 줄었다. 돈의 감소는 수요의 위축을 불러오고 생산된 상품은 판로를 잃었다. 상품은 남아돌지만 돈이 없어 상품을 사지 못하는 ‘풍요 속의 빈곤’이 현실화한 것이다.

프리드먼은 이런 경우 돈을 헬리콥터로 살포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디플레이션 경제에 충격을 줘 경제침체를 타개하는 긴급단기처방이다. 추가적인 돈은 구매력을 높여 기업은 더 많은 것을 생산하며, 임금은 올라가게 된다는 논리다.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미연준의 양적 완화는 바로 ‘헬리콥터 머니’ 이론을 따른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저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양적완화가 왜 실패했는지, 일본의 아베노믹스가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지 꼼꼼이 짚어나간다.

양적 완화의 목적은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 상승, 즉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데 있다. 미 연준의 양적 완화 역시 가격상승을 불러왔지만 문제는 자산가들의 배만 채워줬다. 주식, 채권, 예술품, 와인까지 자산가들이 좋아하는 자산이 중앙은행 화폐에 의해 가격이 올라 최고가를 기록했다. 미연준의 양적기간인 2010~2014년에는 원유 및 원자재가 급등했는데, 양적 완화로 만들어낸 돈의 혜택을 받지 못한 서민들은 더 힘들어졌다. 에너지와 식품의 비용상승을 감당하지 못해 비필수품목의 지출을 줄여나갔다. 결국 비필수품목의 가격 하락이 필수품목의 가격 상승을 상쇄하면서 인플레이션은 불발됐다. 더욱이 자산가들의 돈은 신흥시장의 더 높은 금리를 좇는 핫머니로 개도국을 또 한번 위기에 빠트리게 된다.

일본의 양적 완화를 통한 인플레이션의 무기력은 정부와 중앙은행의 손발이 맞지 않은 데 있다. 공격적인 통화 및 재정부양책을 통해 잃어버린 20년을 끝내려 했지만 2014년 일본 정부는 소비세를 5%에서 8%로 올리는 조치를 취했다. 국가부채를 우려한 IMF의 권고에 따른 것으로, 세금인상으로 오히려 돈을 사람들로부터 빼앗는 결과를 낳았다.

은행을 통한 양적 완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데는 기업과 서민의 돈줄을 쥐고 있는 상업은행이 위기일수록 위험해 보이는 대출을 꺼렸기 때문이다. 돈이 필요한 곳에 가지 못한 것이다. 또한 기업들은 미래의 전망이나 자사의 대차대조표의 위험 상태를 고려, 투자 대신 자사주를 사거나 낮아진 금리로 부채를 대환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교훈이다. 저자는 헬리콥터를 띄우는 것 보다 어디에 띄우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런 입장에서 새롭게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게 ‘모두를 위한 양적완화’다. 2012년 경제학자 존 뮤엘바우어는 동명의 논문에서 모든 유럽연합 시민들에게 500유로를 나눠줄 것을 제안했다. 당시 주목받지 못했지만 현실화하는 모양새다.

저자는 모두를 위한 양적 완화의 방안으로 두 가지 유형을 제시한다.

하나는 돈을 직접 사람들에게 나눠 줘 단기적으로 지출을 늘리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장기 투자를 통해서 경제를 재균형화하는 방안이다.

흔히 '헬리콥터 머니'로 부르는 게 바로 모두에게 직접 돈을 주는 방안이다. 이 경우 경제가 충격을 받은 직후 경제의 공급 측면이 심각한 손상을 입기 전에 작동하는 게 좋다. 프리드먼에 따르면, 헬리콥터는 단지 한 번만 날아야 한다. 저자는 중앙은행이 직접 돈을 지급하는 방식부터 채무경감, 세금감면, 공공프로젝트 추진, 민간 기업에 직접 투자 등 다양한 방식의 양적완화를 제시한다.

‘모두를 위한 양적 완화’‘‘가 모두에게 환대받는 건 아니다. 여전히 많은 경제학자와 중앙은행가, 일반대중가운데도 돈을 마구 뿌리면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일으킬 수 있다고 여긴다. 또한 사람들이 받은 돈을 지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경제를 자극하지 못한다는 주장도 있다. 따라서 경기부양이 목적이라면 운영의 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령 저축을 억제하는 형식, 여섯 달 후에 만료되고 현금과 교환되지 않는 선불 현금 카드 방식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책은 각국이 '가보지 않는 길'의 대실험, 모두를 위한 양적 완화의 배경에 대해 알아야 할 것들을 상세히 설명해 놓아 시의적절하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프리드먼은 왜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자고 했을까/프란시스 코플러 지음, 유승경 옮김/미래를소유한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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