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까대기는 잡았지만 ‘갑질’은 그대로…“대리점 몫이 28%나…기준 필요해”
뉴스종합| 2020-11-22 09:01

지난 10월 22일 오전 서울의 한 택배 물류센터에서 택배기사가 배송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택배노동자 과로사 문제로 정부와 업계가 분류인력 지원, 노동시간 제한 등 방지책을 내놨지만 택배기사들의 수입과 직결되는 수수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택배기사들은 사실상 대리점주가 수수료율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어 기준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에서 CJ대한통운 택배기사로 일하는 A(54)씨는 지난 7월 뇌출혈로 쓰러졌다. 뇌에 고인 피를 빼내는 시술을 받고 한달 가량 쉰 후에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그 사이 군 전역 후 대학교 4학년으로 복학하려던 아들이 A씨를 대신했다. A씨는 “아들이 ‘아빠, 이건 사람이 할 일이 아냐’라고 말했다”며 “힘에 부칠 때마다 속으로 ‘나는 해병대다’고 되뇌인다는 아들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택배 기사는 택배 회사로부터 배달·집화 수수료를 받는데 여기서 대리점 몫의 수수료를 내고, 부가가치세, 유류비 등도 지출해야 실수익이 된다. 그런데 대리점이 집화에 대한 수수료를 28%나 요구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치료비와 쉬는 동안 줄었던 지출을 메우려고 이전보다 더 일을 하고 있다는 A씨는 “이러다 한번 더 쓰러지면 정말 죽을 텐데 이렇게 열심히 일 해도 대리점 수수료로만 300~400만원씩 떼어가니 일을 해도 돈이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대리점 수수료는 대리점주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는 탓에 대리점별로 그 비율이 천차만별이다. A씨는 “대개 배달과 집화 모두 10% 정도 떼는 게 일반적”이라며 “처음에는 집화에 대리점수수료로 30%를 내다가 항의해 낮춘 게 28%”라고 설명했다. 택배연대노조 측은 “회사마다 수수료가 다르긴 하지만 통상 이중에서 대리점에 10~30%, 집화에 대한 수수료를 30%에서 많으면 50%까지 대리점에 줘야 한다”고 말했다.

집화수수료에서 대리점 몫의 편차가 큰 건 판매업체를 확보하고 관리하는 게 중요한 특성 탓이다. 택배업계는 집화야말로 택배의 ‘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들에 따르면 택배기사들이 배송량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어 수입을 늘리기 위해서는 집화량을 늘리는 게 일반적이다. 집화량을 늘리려면 판매업체를 많이 확보하기 위한 ‘영업’도 필수라 택배기사들이 배송을 빨리 마치고 남는 시간에 판매업체를 확보하거나 집화하느라 과로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대리점주들은 배송보다 영업과 관리가 필요한 집화에 수수료를 더 뗄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김종철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연합 회장은 “택배가 이렇게 힘들어진 게 출혈경쟁 아니겠냐. 집화 거래처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대리점주들은 간, 쓸개도 다 내놓는다”고 말했다. 이어 “대리점주들이 영업해서 얻은 거래처들을 배송량이 적은 기사들에게 줘 기사들간 수입 구조를 비슷하게 맞춰주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택배회사나 정부가 나서 대리점 수수료를 조정하거나 관련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A씨는 “대리점주와 말이 통하지 않아 지점장에게도 호소했지만 법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난감하다는 식이었다”며 “본사가 1~2년에 한 번씩 대리점과 재계약할 때 과도한 수수료 조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방관만 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김세규 택배연대노조 교육선전국장은 “대리점 수수료는 고질적 문제”라며 “사실상 지금은 대리점주 마음대로 한다. 수수료에 대한 일정한 기준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와 국토교통부,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2일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을 발표하며 판매자-택배사-대리점-배송기사로 이어지는 택배 가격 구조 개선 방안을 내년 상반기 중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그러나 택배기사들은 이 논의에 여기는 택배기사, 택배사뿐 아니라 판매자, 소비자단체, 정부, 국회도 참여하겠다지만 실제 참여와 노사 합의까지 쉽지 않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다.

address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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