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헤럴드광장] 현실에 맞는 행정
뉴스종합| 2021-01-15 11:45

2021년 새해가 시작됐다. 공직에 있는 동안 해마다 새해 업무의 시작을 알리는 시무식을 마치고 나면 한 해 동안 어떻게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한 다짐을 업무용 수첩 첫 장에 적곤 했다. 지금은 공직을 떠났지만 하던 버릇이라 2021년 공직에 있다면 어떤 다짐을 할 것인지 생각해봤다. 아마도 올해는 ‘좀 더 현실에 맞는 행정을 하자’로 다짐을 적지 않았을까.

지난해 말 서울 서대문구청 앞길을 운전하고 가는데 직선형 도로를 곡선형 도로로 바꾸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도로 선형을 바꾸는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 내리막 도로에서 과속하는 차량으로 인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그려진 도로 선형이 교통설계 이론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인 차량의 운행 행태를 고려하지 않은 선형으로 보였다. 아마도 운전면허를 딸 때처럼 서행해서 운전한다면 차선대로 운전할지 모르지만 조금만 속도를 낸다면 그려진 선형대로 운전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게 돼 있었다.

이 도로공사를 보고 나니 이곳과 크게 다르지 않은 도로가 생각났다. 과거 주거 여건이 열악했던 독박골의 경우 지금은 재개발을 해 주거지역으로 바뀌었다. 양쪽으로 들어선 아파트 단지를 가로지르는 도로가 편도 1~2차로로 개설됐다. 그런데 이 도로를 운전하다 보면 차선을 넘나들어야 운전을 할 수 있게 돼 있다. 아마도 도로계획상으로는 이상적인 설계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 주행을 하다 보면 그 곡선을 따라 운전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도 아닐 뿐만 아니라 처음 운전하는 사람에게는 어느 차선으로 진입해야 하는지도 불분명하게 돼 있어 심하면 중앙선까지 침범하는 운전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요즈음 따릉이를 타고 다니다 보면 역시 비슷한 사례를 볼 수 있다. 서울 시내에 설치된 자전거전용도로의 경우 도로를 횡단하는 시·종점 부분을 턱이 높은 경계석으로 이뤄진 지점에다 설치한 경우를 볼 수 있다. 만약 그려진 전용도로로 자전거를 타고 가면 끝부분에서는 갈 수가 없어 자전거에서 내리거나 전용도로가 아닌 곳으로 주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도면에 그린 설계를 보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현장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책상 위에서 그려진 정책과 현실이 다른 사례는 아마 내가 체험한 것 이상으로 많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례들은 “공무원들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라는 비난으로 돌아올 것이다. 나 역시 이런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운 입장은 아니지만 앞으로 현직에 있는 공무원들이라도 이런 비난을 조금이나마 적게 들으려면 책상머리에서 벗어나 현장이나 현실에 기반을 둔 행정을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설계상 법정 주차 면적을 확보했다는 이유로 건축 허가가 났지만 현장 상황을 보면 정상적인 운전으로는 주차할 수 없는 공간이 있어 결국에는 다른 용도로 사용하게 되거나 과거 곡선형 도로를 만들 때 차가 밖으로 튕겨 나가도록 시공했던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좀 더 현장이나 현실적인 행태에 대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할 것이다.

고홍석 서울시립대 국제도시과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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