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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진형·범수형 회사가 왜 이래” 창업자에 돌직구 [창간 48주년 MZ세대를 엿보다 ①슬기로운 직장생활]
뉴스종합| 2021-05-11 11:41
네이버 오픈클래스에 참석해 설명을 듣고 있는 예비 네이버 개발자들 모습 [네이버 공식 블로그 제공]

“도대체 임원은 급여가 왜 그렇게 많습니까”

“타사보다 적게 받는데 우리 연봉은 어떻게 산출되는 겁니까”

지난달 2월 25일 한날 이해진, 김범수 각각 네이버, 카카오 창업자가 직원들 앞에 섰다. 이들을 불러 세운 것은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였다. 젊은 직원들은 국내 양대 인터넷 기업 수장들에게 보상을 강화해 달라는 ‘돌직구’를 날렸다. 연봉 서열로 IT기업을 일컫는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 신조어를 만들고, 거침 없이 불만을 표출하는 MZ세대들의 ‘반란’에 창업자들은 진땀을 뺐다.

그로부터 두 달 뒤 네이버는 임원을 제외한 전 직원에게 즉시 처분 가능한 자사주 1000만원어치를 올해부터 3년간 매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앞서 카카오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상여금을 자사주로 10주씩 총 119억원을 지급했다. 2023년까지 매년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을 최대 200주씩 주는 추가 보상도 나왔다.

IT기업 내 MZ세대들이 기존 질서를 뒤집고 있다. 상명하복 식의 기업 내 커뮤니케이션은 사실상 사라졌고, 안팎의 익명 게시판을 통해 성과급·인사고과 등 민감한 이슈를 수면 위로 올리고 있다. 경영진은 물론 창업자들을 향해서도 당당히 요구 사항을 주장한다. 유례 없는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등장하면서 MZ세대 중심의 변혁이 더욱 거세질 것이란 전망이 따르고 있다.

성과급 진통 끝에 네이버 경영진이 내놓은 직원 보상 프로그램 ‘스톡그랜트’는 회사가 보유한 주식을 직원들에게 무상으로 부여하는 보상 방식이다. 의무 보유 기간 등 여러 제약이 있는 스톡옵션과 달리, 받는 즉시 바로 팔아 현금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다.

지급 대상은 현재 본사 인원 기준 약 6500명이다. 스톡그랜트는 매년 2회(7월 초, 1월 초) 재직 기간에 따라 분할 부여된다. 올 7월 초 처음 지급될 예정이다. 이로써 네이버의 주식 보상 프로그램은 스톡옵션, 스톡그랜트, 주식 매입 리워드(직원이 자사주를 살 때 매입 금액의 10% 현금 지원, 연 200만원 한도) 등 3종이 됐다.

카카오도 본사 전 직원(2506명)에게 1인당 100~200주의 스톡옵션을 부여한다. 2023년 5월 4일부터 스톡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카카오는 2023년까지 3년 동안 같은 수준으로 직원들에게 스톡옵션을 제공할 방침이다.

IT업계는 이처럼 강화된 보상이 MZ세대의 적극적인 요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해진, 김범수 창업자가 전 직원 앞에서 2시간 넘게 적극 설명한 것도 MZ세대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절차’로 평가되고 있다. 실제 이해진 GIO(글로벌투자책임자)는 “2019년 처음 직원들에게 부여한 스톡옵션 행사가 올해부터 이루어진다”며 “상장사가 전 직원에게 대규모 스톡옵션을 발행하는 건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결코 보상이 뒤쳐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범수 이사회 의장은 “계열사마다 규모나 업계 환경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다른 곳보다 작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개선할 것”이라고 답했다. 또 인사평가 관련 논란에 대해 “경고등이 울린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솔직히 인정했다. 이후 카카오는 직원 평가·보상 문제를 논의하는 태스크포스(TF) ‘길’을 만들고 개선책을 찾는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이 같은 변화가 네이버, 카카오에서 일면서 이들 기업 취업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이 성인남녀 3270명을 대상으로 ‘입사하고 싶은 기업’ 선호 순위를 조사에서 카카오(16.9%)는 삼성전자(11.7%)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그 뒤를 네이버(6.1%)가 차지했다.

MZ세대가 이끈 변화에 타 기업 창업자들도 보상 강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게임 ‘배틀그라운드’로 유명한 크래프톤 창업자 장병규 의장은 최대 1000억원어치 주식을 전 직원에게 무상 증여한다고 밝혔다. 장 의장은 전 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크래프톤이 매출의 90% 가까이를 해외에서 달성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한 국내외 모든 구성원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사재 출연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사주조합 제도도 검토했지만 현행법상 국내에만 적용돼 해외법인 직원은 해당하지 않아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고 덧붙였다. 정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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