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져
산티아고 대서양길① 땅끝끼리, 한국-스페인 우정, 순례길 감동들 [함영훈의 멋·맛·쉼]
라이프| 2022-03-22 07:36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가리비 조개껍질에 쌓인 채 별빛 들판에서 빛나던 성인 야고보(세인트야고보:산티아고) 유해가 안치된 곳.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지방 중심도시 산티아고 데 콤보스텔라(별빛 들판)는 9세기 이후 동서남북으로 부터 몰려드는 순례객들의 목적지가 된다. ▶기사 하단, 헤럴드경제 리오프닝 특별기획 ‘산티아고 순례길’ 전체기사 목록

“고지가 바로 저긴데...” 산티아고 순례길 목적지가 멀리서나마 보이기 시작하는, 기쁨의 언덕 ‘몬테 고소’
유라시아대륙 동쪽 한국 해남 땅끝마을로부터 길고 긴 바통을 이어받은 서쪽 스페인 땅끝마을 피스테라(Finisterra=Fisterra). 산티아고 순례길, 또 하나의 종점인 이곳에는 순례자들에 대한 존경심을 품은 낡은 신발 청동상이 작지만 인상깊게 서 있다.

그리고 1200년이 흐르면서, 그 길은 모든 관념들을 초월하고 숱한 사연을 묻은 채, 힐링, 다짐, 풍수지탄과 성찰, 사랑, 재설계, 새출발, 친구관계의 글로벌 확장을 도모하는 세계인의 걷기여행길이 되었다.

한국 남성 누구든 다녀오는 한국군이라면 1년에 한 두 번 정도 하던 장거리 행군을 한 것인데, 산티아고 걷기여행자들은 하나같이 큰 깨우침을 얻은 성인군자가 되어 돌아오니, 그 길의 가치가 남다른 것은 틀림없다.

때마침, 산티아고 순례길과 이를 벤치마킹한 제주 올레길이 각각 서로의 이름을 따서 특별 순례구간을 둔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하고, 해남의 땅끝 마을이 이름도 ‘땅끝’으로 같은 스페인 피스테라(Finisterra=Fisterra)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스페인으로 향한다.

스페인의 한 순례자 ‘km 0.000’ 종점 표식을 지나 피스테라 땅끝등대로 걸어가고 있다.
한국 해남의 땅끝 등대 [코리아 투어프레스 제공]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끝에 살던 우리가 언제 대서양을 마주했던가.

대표적인 프랑스 길을 포함해 100개가 넘는 숱한 산티아고 순례길 중, 이번에는, 제주, 해남, 서해랑, 남파랑, 해파랑 바닷길과 닮은 점, 다른 점도 살펴보고, 대서양과 첫 대면도 할 수 있는 포르투갈 코스와 피스테라-무시아길을 택한다. 통칭 대서양 코스다.

거침없이 몰아치는 대서양의 서풍은 매섭다. 침몰한 배들이 부지기수여서 지금도 보물이 건져진다고 한다. 히말라야를 거치면서 몇 번 걸러진 서풍인데도 워낙 강해 깎아지른 절벽이 많은 인천 대청도 서풍받이가 떠오르는 길이다. 산티아고 대서양 코스의 바람에 비하면 인천 바람은 귀여운 수준이다.

포르투갈 발렌사에서 본 미뇨강 다리 건너 스페인 투이

국경선인 미뇨강 다리를 건너 포르투갈길의 출발점인 발렌사로 향하는데, 보초 한 명 서있지 않다. 다리 하나 사이에 둔 스페인 튜이와 발렌사는 동네 느낌이 조금 다르지만 서로 국경선을 넘어 조깅하는 등 한 마을처럼 지내고 있었다. 갈리시아 방언은 포르투갈어와 비슷하다.

포르투갈길의 풀코스는 포르투갈 리스본 대성당을 출발하는 것이다. 포르투갈 파티마,포르토,발렌사를 지나 스페인 투이, 대서양 언덕과 켈트족 돌 움막으로 유명한 과르다(산타 트레가), 바요나, 셀타비고 축구단으로 유명한 비고, 순례자들의 쉼터 레돈델라, 갈리시아주 내 역사문화도시 폰테베드라, 노벨문학상 수상자 카밀로 호세 셀라의 고향 파드론을 거쳐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코스다.

철기시대, 과르다 대서양변 산중턱 켈트족 마을 카스트로 셀타
정보화시대, 카스트로 셀타 아래 과르다 엘라소 마을

리스본 출발 600㎞, 성지 파티마 출발 450㎞, 발렌사 출발 150㎞(과드라 포함) 가량이다. 서울-부산 거리인 두 성지 파티마-산티아고 구간은 크리스트교도에겐 꿈의 걷기여행길이다. 해남윤씨 윤선도의 후예가 서울로 출세하기 위해 떠나는 과거시험길 거리다. 메인 동선에서 남서쪽으로 내려간 과르다를 빼면 발렌사 출발코스는 110㎞이다.

피스테라(Fisterra)와 무시아(Muxía) 구간은 프랑스길의 서쪽 구간, 즉 대서양으로 향하는 길이다.

땅끝마을에 가면 목적지 0㎞ 표시가 있는데 이 코스 종점이라는 뜻이다. 출발점은 산티아고 대성당이다. 프랑스길 등 대부분의 순례코스의 종점 도착 직전 도로인 산티아고 대성당 옆길에서 미슐랭 레스토랑 카사 방향으로 직진하면서 출발한다.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자들도 완주후 축하인사에 화답하고 있다.

땅끝인줄 잠시 착각도 하게 되는 무시아에선 성 야보고와 성모 마리아가 만난 기적 얘기, 태안 같은 유류피해극복 기념비가 있다.

땅끝마을 피스테라의 순례자 신발 동상은 순례자의 피로감을 위로해준다. 스페인 피스테라 서쪽 땅끝과 동쪽 땅끝 한국 해남은 결국 끊김없이 한 줄로 이어진 친구임을 확인하고 서로를 떠올린다.

과거 ‘죽음의 해안으로 가는 길’이라는 닉네임이 붙었다. 프랑스작가 쥘 베른이 ‘해저이만리’에서 유토피아 도시 아틀란티스의 침몰, 수많은 보물선을 난파시킨 106m 괴물의 횡포를 묘사했고, 실제 이곳에선 심심찮게 보물이 인양되고 있으며, 바다건너엔 죽음의 땅이 있을 것이라는 속설이 난무했었다.

무시아 유류피해극복 기념비 ‘라 에리다’

그러나, 막상 도착하면 탁 트인 대서양을 마주하며 가슴의 티끌을 씻어내고, 행운을 가져다주는 바위들 아래·위에서 놀기도 하며, 스페인 무시아와 한국 태안이 똑같이 겪었던 유류피해 극복의 동질감을 느끼면서, 죽음의 길에서 희망이 더 커지는 ‘반전매력’을 경험하게 된다.

대서양과 함께하는 순례길 외에도 코스는 다양하고 저마다의 매력을 지닌다. 풍경면에선 북쪽 해안길 노르테 코스를 호평하는 사람도 있고, 인문학적 감동에 큰 가치를 부여하면서 “역시 프랑스길”이라는 사람도 있다.

프랑스 길이 정통 크리스트교 순례자들의 영적인 자취가 많은 시골길과 소도시, 고난의 산악길이라면, 역사유적과 현대적 감각, 농촌, 어촌이 어우러진 영국 길에는 다채로운 재미가 있다. 그럼에도 신구교 크리스트교 신자들에겐 순례의 참뜻을 품은 유적이 가장 많은 프랑스 길이 기본이라고들 한다.

세브리로 산타마리아 라 레알 성당에는 한국어로 된 ‘순례자를 위한 축복 기도’가 있는데, 신자가 아니라도 크리스트의 성배 앞에서 우렁차게 읽고 나면 벅찬 감동이 차오른다. 해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갈리시아주 내에서 프랑스길의 출발점이 되는 세브리로 산타마리아 라 레알 성당엔 예수의 피를 담았던 성배가 보관되어 있는데, 신자든 비신자든 한국인 순례자들이 꼭 하고 넘어가는 절차는 순례자의 다짐을 낭독하는 것이다.

이곳엔 한국어로 ‘사랑이 당신 여정에 희망의 빛이 되게하며, 평화가 당신 마음에 가득하소서.(중략) 행복하세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게 하세요’라는 기도문이 있다. 신자가 아니라도 한번 읽고 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크게 읽을 수록 좋다.

이런 저런 순례코스의 교차로 역할을 하는 땅끝마을 북쪽 해안도시 코루냐는 많은 순례자들이 ‘참새 방앗간’ 처럼 놀다 간다. 그렇게 산티아고 순례길은 그 자체 만으로도 희로애락,감동,휴식,놀이,배움,관광,답사 등의 특성을 다 가졌다.

코루냐의 헤라클레스 등대. 헤라클레스가 목숨 바쳐 사랑한 여인의 이름이 코루냐와 흡사하다.

산티아고가 출발점이 되고 종점인 땅끝마을로 향하는 피스테라-무시아길을 제외하면, 모든 순례자들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앞마당 오브라도이로(원뜻:워크숍)에 집결한다. 산티아고 진입을 목전에 둔 기쁨의 언덕 몬테고소에서 목적지를 한 번 멀리 관망하거나, 시내 진입하자마자 서울 DDP를 닮은 복합 문화단지 ‘시티 오브 컬쳐’ 언덕에서 대성당을 내려다 보기도 한다.

축제는 새로운 완주자가 입장할 때 마다, 시시각각 새롭게, 1200년간 벌어지고 있다. 함성이 들리고, 칭찬과 격려가 다국어로 쏟아진다.

대성당 안에선 대형 향로가 향을 피우며 진자운동을 한다. 순례자들의 땀 냄새와 해충을 없애고 순례자의 건강과 평안을 비는 ‘향로 미사’이다. 오브라도이로에서 받는 지구촌 친구들의 찬사, 향로미사는 스페인 갈리시아 산티아고 순례길에 빠지게 하는 또하나의 매력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의 향로미사

필라 퀴나 곤잘레스 갈리시아 주 문화관광책임자는 “갈라시아주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인생, 다짐, 성찰, 그리움, 사랑, 우정이 있고, 가는 곳곳 감춰진 아름다운 명소들이 매우 많다”면서 “한국민들도 어려움을 금방 잘 이겨낸 뒤, 제주와 산티아고의 우정, 전라남도 해남 땅끝과 피스테라(땅끝)의 유럽-아시아 연결고리가 이어진 것 처럼 스페인과 갈리시아주를 사랑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계속)

◆산티아고 순례길 헤럴드경제 인터넷판 글 싣는 순서 ▶3월8일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걸으면, 왜 성인군자가 될까 ▶3월15일자 ▷스페인 갈리시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 ▷산티아고는 제주 올레의 어머니..상호 우정 구간 조성 ▶3월22일자 ▷산티아고 대서양길①땅끝끼리 한국-스페인 우정, 순례길의 감동들 ▷산티아고 대서양길②임진강과 다른 미뇨강, 발렌사,투이,과르다 켈트마을 ▷산티아고 순례길, 대서양을 발아래 두고…신의 손길을 느끼다 ▷산티아고 순례지 맛집①매콤 문어,농어회..완전 한국맛 ▷산티아고 순례지 맛집②파니니,해물볶음밥..거북손도 ▷산티아고 순례길 마을식당서 만나는 바지락·대구·감자·우거지…우리집에서 먹던 ‘한국맛’ ▶3월29일자 ▷산티아고 대서양길③돌아오지 못한 콜럼버스..바요나, 비고 ▷산티아고 대서양길④스페인 동백아가씨와 폰테베드라, 레돈델라, 파드론 ▷산티아고 대서양길⑤(피스테라-무시아) 땅끝은 희망..행운·해산물 득템 ▷산티아고 프랑스길①순례길의 교과서, 세브리로 성배 앞 한글기도문 뭉클 ▶4월5일자 ▷산티아고 프랑스길②사모스,사리아,포르토마린,아르수아 ▷산티아고 프랑스길③종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매력들 ▷산티아고 영국길..코루냐,페롤,폰테데움,베탄소스

abc@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