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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영하 30도 브로드피크 잠든 김홍빈대장 “추모열기, 뜨거웠다”
호남취재본부| 2022-07-16 13:33
김홍빈 대장이 히말라야에서 전세계에서 모인 산악인들과 기념사진을 함께했다. 서인주 기자

[헤럴드경제(광주)=서인주 기자] 30년전. 젊은 산악인 김홍빈은 열 손가락 모두를 잘라내야 했다.

6194m 높이의 북미 매킨리에 혼자 오르다 손과 발, 얼굴에 동상을 입었다. 단독 경량 등반으로 산을 오르다 화를 당했고 그대로 쓰러졌다.

“산악인의 꿈은 끝이 났다”

모두의 시선이 안타까움으로 전해질 때 김홍빈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재활을 위해 이를 악물었다. 특수장비를 제작하고 무등산, 지리산을 다시 찾았다.

사고가 난 후 정확히 3개월 만이다.

김홍빈 대장은 손가락을 잃고 3개월만에 다시 산에 올랐다. 젊은 시절 지리산 천왕봉에서 남긴 사진. 서인주 기자

“국민 여러분, 용기를 가지십시오. 저는 장애인입니다. 산을 빼면 남는 게 없는 보잘 것 없는 사람입니다.”

30년이 흘렀다.

그는 8000m급 14좌를 장애인 최초로 등정한 ‘불굴의 산악인’이 됐다. 대한민국 스포츠영웅으로 선정되면서 코로나로 지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울림과 희망을 던져줬다.

하지만 감동은 불과 몇시간만에 슬픔으로 변했다.

작년 7월 18일. 파키스탄령 브로드피크 정상을 밟은 그는 하산길 실종됐다. 끝이 보이지 않는 크레바스가 그를 삼킨 것이다. 헬기 수색까지 진행됐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영웅은 그렇게 전설이 됐다.

김홍빈 대장의 1주기 추념식에서 평소 그를 아끼던 산악인과 지인들이 헌화와 묵념으로 그의 정신을 위로했다. 서인주 기자

16일 그를 추모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광주를 찾았다.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하고 실종된 고(故) 김홍빈 대장의 1주기 추념식이 광주장애인체육회관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추념식은 국민의례, 유족 대표 헌화·분향, 추념사, 추도사 순으로 진행됐다. 젊은 시절부터 그와 함께 산을 타던 송원대 산악반부터 배우자 방영은씨, 해외원정 마다 그를 아낌없이 지원했던 정원주 중흥그룹 부회장, 피길연 광주산악연맹 회장, 류재선 김홍빈과희망만들기 이사장, 김광진 광주시문화경제부시장, 이형석 국회의원 등 200여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의 추념식에는 평소 그를 아끼던 수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서인주 기자

추모영상에서 김 대장의 육성이 흘러나왔다. 잠시후 곳곳에서 눈시울이 불거졌다. 생전 그와 각별했던 윤장현 전 광주시장은 그의 사진을 한참이나 어루 만졌다.

30도를 웃도는 한국의 무더위와 영하 30도 히말라야 강추위가 오버랩 되는 순간이다.

김 대장의 친구인 이용빈 국회의원은 “원정 하루전에 동갑내기인 김 대장을 만났는데 가슴이 먹먹하다” 며 “‘산이 있어 거기 올랐다’는 김 대장의 마지막 메시지는 도전정신과 감동을 국민 모두에게 선물해 줬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정선 광주시교육감은 “출국을 보름 앞두고 같이 유튜브 촬영을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마음이 참 무겁다” 며 “‘자유로운 영혼’, 김홍빈을 교육가족을 대표해 진심으로 위로한다. 그의 정신을 기릴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 이라고 말했다.

정원주 중흥그룹 부회장은 지난 2018년 안나푸르나 등반에 나선 김홍빈대장을 후원했다. 히말라야 설산을 배경으로 원정대가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서인주 기자

추념식에서는 김 대장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 건립 계획도 나왔다.

지난해 10월 산악인이 주축이 돼 꾸려진 ‘김홍빈 대장 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는 이날 광주 남구 송암공원을 건립 부지로 하고 2020년 5월 개장한 산악문화체험센터와 유사한 형태로 기념관을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산악문화체험센터는 2011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등반 도중 실종된 산악인 박영석 대장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다목적 공간으로 실내외 클라이밍 장, 산악캠퍼스, 전시장 등으로 구성됐다.

추념식은 산악인들의 ‘산 노래’로 마무리됐다.

검게 탄 산악인들의 구릿빛 얼굴에는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배우자 방영은씨가 유족을 대표해 감사인사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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