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내가 오늘 배출한 온실가스량은?...탄소가계부가 온다[에코 플러스]
라이프| 2022-11-07 11:20
탄소회계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는 스타트업 ‘탄소중립연구원’의 창업자 이민 대표는 최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탄소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탄소 저감 노력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탄소중립연구원 제공]

통상 우리는 지출을 줄이기 위해 ‘내가 어디에 얼마나 썼는지’ 돌아본다. 평소보다 많이 지출한 항목이 무엇이었는지 인지하면, 다음 달엔 어디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지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계부의 효용이다.

같은 논리를 환경 보호 노력에 적용해보자. 나의 일상이 온실가스를 얼마나 배출했는지, 평소보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한 항목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면, 실제 기후 변화에 기여하기 위해 내가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일회용컵 대신 텀블러를 쓰겠다고 다짐만 하는 것과, 이번 달은 텀블러 이용으로 얼마만큼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였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건, 환경에 보탬이 됐다는 만족감이든 실제 기여도 측면에서든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탄소 가계부’의 효용이다.

지난해 설립된 스타트업 탄소중립연구원은 일반 소비자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탄소 가계부’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기업이든 일반 소비자든 모두 탄소 장부 하나씩은 갖고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창업자 이민 대표를 직접 만나 그가 그리는 미래를 엿봤다.

탄소회계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는 스타트업 ‘탄소중립연구원’의 창업자 이민 대표가 산업은행이 주최한 행사 ‘넥스트라이즈2022’에서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시연하고 있다.

-간단히 회사를 소개한다면.

▶우리는 ‘CIET(사이어트)’라는 이름의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를 개발하고 있다. 탄소(Carbon)와 다이어트(Diet)를 합쳤다. 탄소배출량과 감축량을 재무제표 작성하듯 구체적이고 과학적으로 관리하려는 기업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이 업무를 자동화해주는 게 핵심이다. 자동화된 ‘탄소 회계’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사내 담당자가 직접 엑셀 파일에 데이터를 기입해 산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소프트웨어가 알아서 고객의 데이터를 긁어와 탄소배출량까지 계산하는 개념으로 보면 된다.“

-기업 입장에서 탄소회계가 왜 중요한가?

▶2025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여기에는 기업이 제품을 생산할 때 배출한 온실가스량(Scope1)과 앞서 전력 생산 과정에서 배출한 온실가스량(Scope2)이 포함돼야 하고, 더 나아가 밸류체인 전반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Scope3)까지 의무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규제 상황을 고려하면, 기업들은 투자자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든 고객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든 탄소 정보를 최대한 투명하게 공개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탄소회계 서비스를 개발하게 된 계기는?

▶우리 탄소중립연구원 구성원들은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와 함께 자동차 및 수소와 관련한 환경전과정평가(Life Cycle Assessment, LCA) 연구를 했었다. 단순히 도로 위에 달릴 때만 생각하면 수소 자동차는 충분히 친환경적이지만, 그 연료를 얻는 과정이나 자동차라는 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함께 고려하면 탄소중립은 아니다. 이 문제를 개선할 정책 개발에 참여했다.

근데, 이런 탄소 분석 연구를 하려다 보니 기본 토대인 데이터가 턱없이 부족하더라. 예컨대, 특정 화학 공정에서 탄소가 얼마나 배출되는지 공식은 정해져 있지만, 공장에서 어떤 물질을 얼마나 썼는지 인풋 데이터를 찾기 힘드니 결과값 산출도 포기하게 된다. 데이터를 체계적이고 자동화해 관리하는 게 탄소 회계 시장을 성숙시키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했다.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탄소배출량을 측정하면, 그 데이터가 의미가 없을 것 같기도 한데.

▶기업들의 탄소 배출량을 과학적으로 검증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데, 이 모든 노력들이 표본으로 삼고 있는 게 있다. 세계자원기구(WRI)와 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WBCSD)가 20여년 전부터 글로벌표준을 제정하기 위해 개발한 ‘온실가스 프로토콜’이다. 우리가 배출량을 측정하고 보고하고 검증할 땐 이 프로토콜을 따른다. 범용성 측면에선 문제가 없다고 봐주면 좋을 것 같다.

탄소중립연구원이 개발한 탄소회계 서비스 구동 화면[탄소중립연구원 제공]

-현재 서비스 개발 단계가 궁금하다.

▶국내 대기업 한 곳과 곧 사업검증(PoC)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내년부턴 해당 그룹 계열사와 많은 일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또, 친환경 분야에 과감히 투자하고 있는 유명 스타트업 다섯 곳과도 사업검증을 시작할 계획이다.

-탄소회계 분야에서 앞서나가고 있는 기업이 있다면? 탄소중립연구원이 선두 기업과 차별화되는 부분은?

▶미국 스타트업 ‘워터셰드(watershed)’가 탄소회계 분야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기업)이 됐다. 탄소중립을 고민하는 기업들의 고민 포인트는 크게 세 가지다. 탄소배출량을 정확히 측정하는 탄소 회계, 그리고 이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에 대한 전략 수립, 마지막으로 실제 실행이다. 워터셰드는 이 세 가지 수요에 모두 대응하고 있다. 우리는 아직 탄소회계에만 집중하고 있는 단계다.

하지만, 우리는 여러 새로운 시도를 모색하고 있다. 우선, 비교적 제조 공정이 단순한 소비재만이라도 그 제품을 디자인하는 단계부터 탄소배출량을 계산해보자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는, 본인이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많은 탄소를 배출했는지 가계부처럼 기록할 수 있는 앱 개발도 고민하고 있다.

-탄소 가계부를 열심히 쓸 시민들이 많을까?

▶이미 독일에선 적지 않은 일반 소비자들이 탄소 가계부 앱을 사용하고 있다. 단순히 자기의 배출량을 기록하는 것뿐만 아니라, 배출량 상쇄를 목적으로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것까지 가능하다. 투자했던 내역을 일종의 자산처럼 디지털 지갑에 넣고 관리할 수도 있고, 정부 인증을 받은 탄소배출권에 투자했다면 돈 받고 팔 수도 있다. 환경 보호 노력을 자산으로 바꿀 수 있다는 걸 우리나라에서도 보여주고 싶다.

-경영가로서의 포부가 있다면?

▶통상 우리가 생존에 필요한 요소를 얘기할 때 ‘의식주’를 얘기하지 않나. 그 세 가지 뒤에 ‘기후’가 붙는 인식 전환이 곧 일어날 것 같다. 파키스탄 대홍수와 같은 비극이 우리나라에 세 번만 찾아와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그런 비극을 실제 겪기 전에, 미리 인식을 바꾸면 된다. 그 과정에 기여한 사업가로 평가받고 싶다.

최준선 기자

hum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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