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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약 해놓고 “보증금 낮추지 않으면 퇴거” 악법이된 임대차3법
부동산| 2023-03-20 13:01
잠실의 한 아파트 단지 부동산 매물 게시판에 전·월세 임차인을 찾는 문구가 붙어 있다. [연합]

#. 집주인 A씨는 지난해 10월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갱신권)을 사용해 전세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돌연 지난달 세입자로부터 “전세 시세가 많이 떨어졌다”며 보증금 일부를 돌려줄 수 있냐는 연락을 받았다. 또 다른 임대인 B씨도 지난해 8월 전세 세입자와 재계약을 체결했는데, 6개월 만에 보증금을 깎아주지 않으면 퇴거를 하겠다는 통보를 받고 하루 하루가 고민이다.

전셋값 하락이 지속되자 ‘재계약’을 한 집주인조차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세입자와 재계약을 한 지 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전셋값을 시세대로 맞춰달라”며 재감액을 요구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개정된 임대차보호법의 맹점이 입주단지가 인접한 임대차 시장에서 또 다른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0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재계약을 하는 과정에서 감액 재계약이 이뤄진 경우에도 신규 계약분보다 금액이 높은 단지를 중심으로 세입자가 보증금 반환을 요구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이는 최근 활발한 입주장에 전세 공급이 많은 강남권 아파트에서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곳에서는 지난달 말부터 개포프레스티지자이 등의 대단지 입주가 시작되면서 이 일대 신규 전세 매물의 하락 거래가 연이어 나타나고 있다. 이 하락 거래를 보고 계약서를 쓴 갱신 세입자들이 추가 하락 계약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개포동 개포래미안포레스트 전용 59㎡은 종전 9억원 보증금에 15만원 반전세를 이달 9억원 전세로 감액 재계약했는데, 같은 평형 신규 계약분이 7억3000만원에 계약됐다. 같은 동 개포 디에이치아너힐즈 전용 59㎡도 올 1월 13억원에서 9억원으로 4억이나 낮춰 재계약이 진행됐으나, 최근 신규 전세 거래는 8억원에 계약서를 썼다.

한 강남 전세 세입자는 “지난해 하반기 재계약을 했는데 벌써 2억이나 빠졌다”며 “매달 나가는 대출이자를 생각하면 나갈 각오를 해서라도 보증금을 내려줄 수 있냐 얘기해봐야 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대부분은 계약 종료전이라면 세입자가 보증금을 낮춰달라는 제안을 집주인이 거부할 수 있다. 문제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쓴 경우다. 2009년 개정된 임대차보호법 제6조2항에서는 묵시적 갱신을 통해 계약을 갱신했을 때만 임차인이 계약을 해지 통보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20년 또다시 개정된 임대차보호법에서는 계약갱신요구권을 통해 성사된 계약도 제6조2항 조항을 준용하도록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주인과 갱신권을 써 정식 계약을 맺은 세입자는 계약기간이 남아 있어도 언제든지 이사 등의 이유로 집주인에게 보증금 반환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특약 등이 없이 임차인이 3개월 전 퇴거를 고지한 상황이라면 이후 세입자를 구하는데 필요한 중개수수료 등을 임대인이 부담해야 한다. 적법하게 종료된 계약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임대인은 “갱신계약 후 계약 기간이 아직 1년 이상 남았는데 퇴거를 이야기하면서 중개수수료도 임대인이 내라 한다”라며 “당황스럽고 억울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임대인은 “갱신권을 사용했다고 해도 계약서를 썼으면 적법한 계약인데 명시된 기간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니 임대인 입장에서는 법이 불공평하다”고 비판했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해 1월 31일 이후 이달 첫주까지 52주 연속 내리막을 보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월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율은 53.6%로 부동산원이 관련 통계집계를 시작한 2012년 1월 이후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박자연 기자

nature68@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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