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시승기
실용성 극대화한 ‘가성비 경차’ 전기차 파워로 저출력도 해결
라이프| 2023-11-01 13:24

기아 레이EV 김성우 기자
‘세이버메트릭스(Sabermetrix)’. 우리말로 ‘야구통계학’은 현대 야구판을 상징하는 용어다. 딱 한 가지 장점만 가진 ‘원툴 플레이어’라도 팀 승리에 기여만 할 수 있다면 현대 야구에서는 주인공이 된다. 선수의 모든 기록과 통계가 ‘승패’와 연관된다. 타율은 낮지만 볼넷을 잘 골라내는 리드오프, 여러 수비 포지션을 도맡는 유틸리티 플레이어까지. 주전이 될 수 없던 선수들도 이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다.

최근 완성차 업체의 ‘전동화 라인업’에서 장단점이 뚜렷한 ‘세이버메트릭스형’ 모델이 등장하는 추세다. 치솟는 물가와 치열해진 경쟁에 놓인 완성차 브랜드가 특정한 장점을 갖춘 모델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틈새시장’을 위한 전략이다.

기아의 경형 전기차 ‘레이EV’는 제조업체의 이런 고민이 고스란히 담긴 차량이다. 가성비와 실용성에 치중했다. 중국 CATL이 공급한 LFP(인산철) 배터리를 넣으면서 몸값은 2000만원대로 낮췄다. 주행가능 거리는 205㎞(복합연비 기준)다. 장거리에는 무리가 있지만 ‘장보기’, ‘출퇴근’ 용도로는 충분하다. 기존 차체를 활용하면서 공간도 넓다.

최근 레이EV를 타고 서울 양재동에서 충청도 충주시까지 왕복 230㎞를 주행하면서 고유한 매력을 살펴봤다.

첫인상은 기아의 ‘내연기관 레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굳이 꼽자면 내연기관에서 가로형이었던 전면부 그릴이 매끈해지고, 그릴 가운데 충전구를 마련한 정도다. 박스카 디자인은 여전히 깜찍했다.

실내에 들어서면 전기차의 특성이 느껴진다. 먼저 인터페이스에 변화를 주면서 계기반을 10.25인치의 컬러 LCD로 구성해 운전자의 시인성을 높였다. 기어 노브를 스티어링휠 뒤로 배치하면서 수납공간도 늘었다. 집 열쇠나 카드, 휴대전화를 넣기 충분하다.

공간 활용도 역시 우수하다. 전장 3595㎜, 전폭 1595㎜, 전고 1710㎜ 등 위아래로 넉넉하다. 심지어 전고는 싼타페(1730㎜)나 쏘렌토(1700㎜) 등 중형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수준이다. 실용적인 14인치 휠이 기본이다. 기존 레이의 장점이었던 천장 수납공간과 광활한 레그룸도 마찬가지다. 슬라이딩 방식의 뒷문으로 짐을 싣고 내리기도 쉽다.

레이EV에 탑재된 35.2㎾h의 인산철 배터리는 주행 성능을 다방면으로 개선했다. 가장 눈에 띈 부분은 와인딩 구간의 쏠림 현상 개선이다. 배터리로 차량 무게(공차 기준)가 250㎏ 늘어난 1295㎏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고속도로 나들목이나 급격한 코너 구간에서 더 빠르게 탈출할 수 있다.

경차 특유의 ‘답답함’도 사라졌다. 레이EV의 최고출력은 87마력, 최대토크는 15㎏.m이다. 객관적인 지표상으론 부족하게 느껴지지만, 실제 80㎞/h 내 가속 구간에서 아쉬움이 없다. 오히려 가속페달을 밟자마자 나오는 전기차 특유의 속도감이 경쾌하게 느껴진다.

전비도 우수한 편이다. 충주까지 가는 길에는 국도를,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는 고속도로를 이용했는데 평균 7.2㎞/㎾h의 전비가 나왔다. 공인전비인 5.1㎞/㎾h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다만 주행거리는 아쉽다. 양재에서 충주까지 국도로 약 150㎞를 주행하자 연료 게이지에 빨간불이 켜졌다.

도심형 전기차로 제작된 레이EV는 실용성 측면에서 분명한 강점이 있다. 충전시설이 많은 도시, ‘집밥’을 먹일 수 있는 환경에 적합하다. 플래그십 전기차처럼 긴 주행거리와 다양한 편의 기능은 없지만, 넉넉한 적재공간과 가성비는 다른 모델을 압도한다. 가격은 승용 기준 2775만원(라이트 기준)부터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보조금을 적용받으면 2000만원대 초반으로 진입장벽이 낮아진다. 가성비 좋은 첫차를 고민하는 도시의 20~30대 젊은 세대나, 세컨카로 추천한다.

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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