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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보다 멋·개성이 우선…패션업계에 ‘실버’가 사라졌다? [유통가, 액티브 시니어 시대]
뉴스종합| 2024-03-03 09:08

[헤럴드경제=정석준 기자] “우리도 후드티 좋아해요. 가격보다 디자인이죠. 예쁘고 멋진 것이 먼저입니다.”

지난 28일 오후 기자가 방문한 서울 영등포구 현대백화점 더현대 서울. 패션 브랜드가 즐비한 매장 곳곳에서 백발의 노인들이 보였다.

골프의류 매장에서 만난 60대 남성은 바람막이 재킷을 입어보며 거울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잘파세대(Z세대+알파세대)가 즐겨 착용하는 버킷햇(벙거지 모자)을 쓴 상태로 옷을 고르기도 했다.

한 70대 남성은 등산복 브랜드가 모인 매장에서 제품을 유심히 살펴봤다. 아내 신발을 사러 나온 김에 본인이 즐겨 사용하는 패션 아이템을 확인한 것이다. 이 남성은 “젊을 때보다 여유가 있어 가격보다 디자인을 본다”면서 “온라인이나 다른 곳보다 비싸도 직접 둘러보고 좋아하는 물건을 사는 편”이라고 말했다. 해당 매장 직원은 “주 고객 연령층이 예전보다 확실히 위로 올라갔다”며 “고령층을 겨냥한 맞춤 행사도 자주 한다”고 귀띔했다.

시장조사 전문기관 마크로밀 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에 따르면 올해 ‘블랙프라이데이’ 행사에서 옷을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60대는 2명 중 1명(53.0%)에 달했다. 이는 20대(59.2%) 다음으로 가장 높은 수치다. 30대는 48.6%, 40대와 50대는 각각 46.8%, 49.4%로 절반에 못 미쳤다. 시간적 여유와 자본력을 갖춘 ‘액티브 시니어’가 패션업계에서 주목받는 이유다.

이들은 특정 브랜드를 추구하기보다 다양한 브랜드와 디자인을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크로빌 엠브레인은 패션 플랫폼 ‘무신사’ 앱의 60대 이용률이 2022년 1월 0.9%에서 2023년 8월 7.9%까지 오르며 타 연령대보다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고 밝혔다.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현대백화점 더현대 서울에서 고령층 소비자들이 패션 매장을 둘러보고 있다. 정석준 기자

액티브 시니어가 자기 관리를 바탕으로 개성 있는 스타일을 추구하기 위해 패션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액티브 시니어는 건강을 우선하고, 본인 관리를 위해 더 젊은 브랜드를 찾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소비 여력을 갖춰 브랜드보다 확고한 자신의 취향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유통가는 ‘액티브 시니어’를 블루오션의 중심으로 설정했다. 60대 이상을 대상으로 시니어 모델 선발대회 등 다양한 행사도 진행한다. 문화센터 프로그램에 고령층에 어울리는 콘텐츠를 포함해 쇼핑을 유도하기도 한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처음 (고령층 대상 이벤트를) 기획할 때 100명만 지원해도 ‘대박’이라는 내부 평가가 있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 이상으로 주목을 받았다”며 “60대 이상을 대상으로 한 문화센터 강좌도 대부분 만석이 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판매 전략에서 오히려 ‘시니어’를 강조하지 않는 것도 유행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액티브 시니어를 공략하기 위해 회사 내부적으로 TF팀을 운영했을 때 고령층이 고령층에 맞춘 제품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액티브 시니어가 오히려 ‘실버’라는 단어를 쓰는 것에 민감한 부분도 있어 제품 마케팅에 크게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시월 건국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자기 또래에 맞게 소비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트랜드에 맞게 본인을 주체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며 “예전에는 하지 못 했던 본인의 의사 표현을 자금과 여유를 바탕으로 소비에 접목하면서 역(逆)사회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mp1256@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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