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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출산율 0.6명인데, 다문화가정 자녀 '귀화'엔 연좌제[저출산 0.7의 경고]
뉴스종합| 2024-03-07 14:11
이주배경 청소년들이 이주배경 청소년 교육지원사업인 ‘레인보우스쿨’에서 한국어 수업을 듣고 있다.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 제공]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제발 우리 엄마가 귀화시험에 합격하게 해주세요.”

한국폴리텍다솜고등학교의 조상훈 교장은 학생상담 시간 종종 학생들의 이런 ‘소원’을 듣는다고 말했다.

다문화가정 자녀에게 기술을 가르치기 위해 한국폴리텍대학이 지난 2012년 설립한 다솜고에는 한국 국적 취득이 절실한 학생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학생들 중엔 어머니가 귀화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귀화시험의 자격조차 얻지 못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귀화시험, 엄마가 합격 못하면 응시 못한다...'연좌제?'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제공]

7일 국가법령정보센터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적법 제8조 1항은 ‘외국인의 자(子)로서 대한민국의 민법 상 미성년인 사람은 부 또는 모가 귀화허가를 신청할 때 함께 국적 취득을 신청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2항은 ‘국적 취득을 신청한 사람은 부 또는 모가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때에 함께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다’고 규정한다.

다솜고 학생들이 엄마의 귀화시험 합격을 비는 것은 이런 이런 ‘폐쇄적인’ 국적 취득의 조건 때문이다. 부모를 따라 한국에 입국한 이 학생들은 한국 국적취득을 못 하면 학교를 졸업해도 취업할 수가 없다. 기업은 외국 국적자 고용에 따른 복잡한 절차를 피하기 위해 안정된 체류자격이나 한국 국적을 취업 조건으로 요구한다.

그래서 이들은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대학에 들어가 학생비자(D-2 비자)를 얻어 체류 자격을 얻는다. 그나마 동포 자녀는 자격증을 취득해 F-4(재외동포) 비자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확실한 건 역시 ‘귀화하는 것’이다. 만약 국적취득을 못한 상태에서 부모가 이혼하거나 외국 국적의 부모가 사망하면 한국 국적을 취득할 기회조차 없어지고 체류자격 연장도 힘든 상황이 된다.

실제 그런 일들이 존재한다. 조상훈 교장은 “다솜고 재학생 형제의 아버지가 건설현장에서 돌아가셔 조문을 가게 됐는데, 베트남 출신 어머니는 한국인 남편의 사망에 더해 본국으로 강제출국까지 걱정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의 어머니는 한국에서 5년 동안 아이들을 키우며 식당 일을 하면서 귀화시험을 준비했지만 면접을 통과하지 못해 국적취득 전이었고, 더 안타까운 것은 우리 학생들도 ‘15세 이상 중도 입국 다문화 청소년’이기 때문에 어머니가 귀화시험에 합격해야만 귀화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선 결혼이민자에게 자동으로 국적을 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베트남 어머니가 식당 일을 하면서 귀화시험을 통과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실제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귀화시험 연간 합격자수는 1만여명 수준에 머문다. 지난해 일반 귀화 심사에 합격한 국적 취득자는 1만895명이다. 합격률은 45% 수준에 그친다.

국적 취득의 어려움은 사회적 음지에서 생활하는 다문화가족 청소년과 이른 시기의 청년들이 늘어나는 이유 중 하나다. 3년에 한 번 여성가족부에서 실시하는 전국 다문화가족 실태조사를 보면 2018년, 2021년 연속으로 진로 상담 및 교육에 대한 요구가 높게 나타났다. 만 15~24세 자녀 중 니트 상태 비율은 10.3%에서 14.0%로 늘었다. 또한 해당 다문화 자녀 고용률은 20.9%로, 동일 연령대 청소년 고용률 27.0%보다도 낮게 나타났다.

"합계출산율 0.6명대…생산가능인구↓"

초저출생·초고령화에 따른 국가소멸 위기에 직면한 대한민국이 생존을 목표로 ‘이민국가’를 모색하고 있는 만큼 이와 같은 불합리한 국적법도 손을 봐야할 때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국내 생산가능인구 확보 차원에서도 국적법 개정은 시급하다는 것이다. 생산가능인구란 15~64세의 나이대에 속해 정상적인 노동 참여가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실제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월 말 기준 15~64세 인구 비중은 69.9%로, 전월(70.0%) 대비 0.1%포인트(p) 내려갔다. 생산가능인구 비중이 70%을 밑돈 것은 지난 1991년 이래 33년 만에 처음이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나라 성장률을 갉아먹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인구는 지난 2011~2012년 정점을 찍은 이후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인구가 12만2800명 자연감소하는 등 인구 자연감소가 4년째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4분기 출생아 수는 5만2618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6.9% 감소했다. 합계출산율은 4분기 기준 0.65명으로 집계 이후 처음 0.7명에 못 미쳤다.

지난 1월 5일 제10회 다솜고 졸업식에서 졸업생 42명과 선생님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한국폴리텍대학 제공]

이 가운데 이주배경 청소년 중에선 한국의 일꾼으로 성장한 이들도 적지 않다. 다솜고는 그동안 졸업생 417명을 배출했다. 지난 1월에도 다솜고는 10회 졸업생 42명을 배출했다. 졸업생 전원이 기계·설비·전기 등 전공 분야 국가기술자격증을 취득했다. 2개 이상 자격증을 딴 학생도 19명이나 된다. 하지만 해외에서 태어나 국내로 중도 입국한 26명 가운데 9명은 국적 취득에 실패했다.

조상훈 다솜고 교장은 “다문화 청소년은 한국 사회가 품고 함께 가야 할 구성원”이라면서 “최근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부모의 본국에서 성장하다 한국에 들어온 중도 입국 다문화 청소년에게 ‘한국 국적취득 계획이 있느냐’는 물음에 절반 정도가 잘 모르겠다거나 안하겠다고 응답했는데, 이는 중도 입국 다문화 청소년들에게 한국은 아직 따뜻한 포용의 손길을 내밀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적법 개정이 어렵다면 영주권 확대 등으로 우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림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이민 업무는 포용·개방과 출입국질서 관리 라는 두 가지 상충된 가치가 있는데, 아직까지 우리나라 국적법은 출입국 질서 쪽에 초점을 두고 있다”며 “국적은 동포에게도 잘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국적법은 다른 이민정책보다 더 조심해야하는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 경우는 영주권의 확대 등으로 우회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법무부·통계청에 따르면 1996년 이래 2022년까지 혼인 등의 이유로 귀화한 사람은 23만4233명이다. 지난 2022년 기준 귀화인이나, 한국인 배우자와 혼인한 결혼이민자 가구를 뜻하는 ‘다문화가구’는 39만9396가구, 그 구성원인 ‘다문화인구’는 115만1004명에 이른다. 이는 한국 총인구(2022년 5167만2569명)의 2.2%에 해당한다.

fact051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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