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인터;뷰] 배우 정소민 "나는 욕망 큰 사람"
뉴스| 2017-12-14 10:52
이미지중앙

정소민(사진=헤럴드경제DB)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이소희 기자] 배우도, 기자도 사람인지라 유난히 공감가는 이들이 있다.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내 이야기 같고, 다소 애매한 표현을 섞어 써도 뭘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지 ‘느낌적인 느낌’이 온다. 결국에는 나와 성향이 매우 비슷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배우에서 더 나아가 한 사람으로서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배우 정소민이 그렇다. 정소민은 “너무 진지하다”고 말했지만, 그가 내뱉는 말들은 평소 생각을 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것들이다. 가치관과 지향점, 성격 등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덕분에 정소민의 진지함은 오히려 차분한 인상을 준다. 내면을 쉽사리 꺼내놓지 않으면서도 때로는 자신을 투명하게 내비칠 수 있는 사람이다. tvN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 속 윤지호 역시 정소민이 투영된 솔직한 인물이었다.

■ 정소민과 윤지호의 공통점

“내 분량이 아닌 부분들까지 공감할 수 있었어요. 이 작품을 하면서 위로를 받았고요. 특히 ‘꿈’이라는 외로운 길을 가다가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해요. 아버지 반대를 무릅쓰고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한 케이스거든요. 게다가 오히려 데뷔 후에 더 슬럼프가 왔어요. 그래서 제일 공감 갔던 대사는 내레이션 중 ‘꿈을 먹고 살겠다고 결정했을 때 깜깜한 터널을 걷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깜깜할 줄 몰랐다’고 한 부분이에요. 터널의 시기가 아니어도 맞다고 생각한 길을 가는 건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그러면서도 내가 생각하는 길을 가는 게 맞구나,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지게 됐어요”

정소민과 윤지호는 비슷한 부분이 많다. 자신의 감정을 꽁꽁 숨겨놓으면서도 엄마에게 그 모든 것을 완전히 끈을 풀어버리는 장면도 그랬다. 정소민 역시 윤지호처럼 첫째 딸에 남동생이 있다. 엄마와는 친구처럼 의지하는 가까운 사이다. 사실 모든 딸들은 엄마와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지호가 감정을 격하게 드러내는 인물이 엄마인데 내가 그래요. 밖에서는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데 유일하게 밑바닥을 보여주는 인물이 엄마죠. 서로 애정표현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극중 결혼식에서 엄마 편지를 읽는 신이 기억에 남아요. 카메라가 안 돌 때도 엄청 울었어요. 첫째 딸만의 그런 게 있어요. 지금은 살갑게 하려고 하죠. 원래 그렇진 않은데, 나이가 들면서 나름대로 여유가 생긴 것도 있고 일부러 노력하는 부분도 있고요. 살가운 면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부모님일 텐데, 왜 밖에서만 잘 하게 될까요. (웃음)

이미지중앙

정소민(사진=헤럴드경제DB)


■ 정소민이 19호실로 들어가는 법

윤지호는 공격보다 수비에 강한 인물이다. 소심한 성격이라는 뜻은 아니다. 윤지호는 할 말은 또박또박 할 줄 안다. 상대방을 존중하면서도 의견을 확실히 전달하는 강단이 있다. 극중 주변 인물이 윤지호에게 “너는 결정하기까지 오래 걸리고 힘들어하지, 한 번 결정하면 안 바꾸잖아”라고 하는 대사도 반복됐다.

“지호가 수비를 잘 하는 이유는 그때그때 공격을 할 줄 알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선제공격을 날리는 스타일이 아니라 내가 위협을 받았을 때 보호하기 위해 공격할 줄 아는 사람인 거죠. ‘최고의 공격은 수비’라고 하듯 나를 지키기 위한 공격을 똑 부러지게 할 줄 아는 사람이라 본받고 싶었어요. 실제로도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원래 끙끙 앓다가 뒤늦게 폭발하거나 그냥 묻어두는 스타일이거든요. 사실 후자의 경우가 더 많고요. 작품을 하면서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있구나 싶었어요. 그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에요.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나를 지킬 거라는 전제가 필요한 거고 미움 받을 용기를 내는 거니까요. 지호한테 많이 배웠어요”

실제로 정소민은 윤지호에게 배운 수비와 공격을 실천한 적이 있다. 상처가 될 법한 이야기를 듣고 처음으로 그 자리에서 심경을 말해봤다. 다만 화를 내지 않고 ‘이렇게 네가 말해서 나는 상처를 받았다’고 투명하게 오픈했다. 그 결과는 “후련하다”. 이 일을 계기로 오히려 상대방과 관계가 더 좋아졌다. 응어리도 없고 서로 조심하게 되니 말이다.

무언가 깨달았을 때 반짝하고 빛나는 눈빛이 정소민에게서 느껴졌다. ‘19호실’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극중 나온 책 ‘19호실로 가다’는 누구나 혼자 있을 공간이 필요하고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은 중요하다는 내용이다.

“혼자 있고 싶은 순간이 많은 편이에요. 예전에는 집에 들어가기 전에 차에 혼자 한두 시간 씩 있다가 들어가기도 했어요. 그럴 때 자유롭다고 느껴요. 가만 보면 온전히 혼자 있으려고 외향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요. 기본적인 성향의 베이스는 내성적인데 그걸 지킬 수 있도록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내요. 관계를 유지하는데 에너지를 많이 써야 나중에 얽매이거나 마음 쓰지 않고 오롯한 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거죠. 예전에는 그 과정에서 나를 놓치기도 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지키면서 에너지를 조절할 수 있는 노하우가 생겼어요”

이미지중앙

정소민(사진=헤럴드경제DB)


■ 부드러움 속 강단, 정소민의 가치관

어떻게 해야 안정감과 자유를 느낄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보며 소신을 쌓아가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정소민은 때로 자신을 놓칠 때도 있다고 했지만, 그 시선만큼은 늘 유지하고 있었음이 느껴졌다.

“배우 한다고 했을 때가 가장 큰 반항이었어요. 부모님이 반대하셨는데 설득하지 않았어요. 몰래 시험을 봤죠. (웃음) 하지 말라고 하는 건 안하면서 자랐는데 하고 싶은 건 굽히지 못하겠더라고요. 소질이 없으니 준비라도 철저히 하자는 스타일이라 캐릭터 분석도 나한테 도움 되는지 생각하지 않고 그냥 했어요. 해야지 마음이 편하니까. 그때는 이런 노력이 당장의 결과로 나오지 않아 조급해지기도 했어요. 데뷔했을 때부터 한 4~5년간이 제 터널이었죠. 그런데 이번 작품 끝나고 엄마가 ‘네가 어떤 걸 하고 싶어 하는지, 배우로서 어떤 길을 가고 싶어 하는지 이제 보인다’고 말씀하셨어요. 엄청난 위로가 됐어요”

정소민에게 ‘대박’의 의미는 남달랐다. 이번 작품이 인기를 얻었다고 해서, 자신과 비슷한 캐릭터를 만났다고 해서 유난히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게 “노력해온 것들이 왜 이 타이밍에 터진 것 같냐”고 물었다. “노력은 항상 했고 분명 언제나 아쉬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이 ‘터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현답이 돌아왔다.

“작품 끝나고 복기를 많이 하는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아주 조금이어도 좋으니 계속 나아지면 좋겠다는 욕망이 큰 사람이에요. 지난 작품보다 나아진 점은 연기뿐만 아니라 사람으로서도 성장했다는 거예요. 예전에는 좋은 배우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계속 연기를 하다 보니 좋은 사람이 곧 좋은 배우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좋은 사람이 되지 않고서는 좋은 배우가 될 수 없어요”

정소민에게 ‘좋은 사람’이란 ‘더 나은 사람’이다. 그래서 자신의 가치관을 어디에 둬야 성장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는 “많은 걸 받는 사람이다 보니 항상 줄 수 있는 만큼 주는 사람이 되겠다”는 기준을 세웠다.

“고마운 일도, 사람도 많은데 그게 부담은 아니에요. 갚을 게 많다는 건 좋은 것 같아요. 원래 걱정을 사서 하는 타입인데, 지금은 걱정도 없어요. 이런 적이 거의 없는데. (웃음) 이맘때 작품이 끝나고 연말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좋고, 작품이 잘 마무리된 것도 좋고요. 내년, 서른은 어떨까 설레요”
culture@heraldcorp.com
랭킹뉴스